특집3) 기획탐방 · 질문과 생각 키우는 학생 맞춤형 과학교육을 모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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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열쇠
배움의 열정 끌어올릴 때 진정한 과학의 재미 발견
학생은 모두 다르다. 배우는 속도도, 이해 방식도, 흥미를 느끼는 지점도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학교 교육은 오랫동안 교사 중심의 일방향 수업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문제 해결력과 창의성이 중요한 미래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똑같이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별 차이를 반영한 수업’이다. 학생 맞춤형 과학수업은 학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동기를 끌어올리는 교육 방식이다. 특히 과학처럼 탐구와 사고가 중요한 교과에서는, 각자의 관심과 수준에 맞는 학습 경험이 곧 사고의 깊이가 된다. 그렇기에 교실에는 ‘한 사람을 위한 수업’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모두를 위한 교육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의 학교 제도는 산업화 시대에 설계된 대량 교육 체제의 산물이다. 모든 시민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지만, 그 과정에서 ‘개별 맞춤형 교육’이라는 중요한 가치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한 명의 교사가 여러 명의 학생을 가르치는 구조는 교육과정과 평가를 공급자 중심으로 고정시켰고, 학생 개개인의 흥미와 수준, 속도, 배경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는 점차 다양성과 포용을 중시하게 되었고, 학생 개개인의 특성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학습 지원이 필요한 학생도 꾸준히 증가하면서, 이제 공교육에서도 ‘학생 맞춤형 수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학생 맞춤형 학습’을 핵심 가치로 삼고,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과 수준을 반영한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그 방법의 하나로 디벗, 디지털 교과서 등 에듀테크를 활용한 맞춤형 학습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어떤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학생 맞춤형 과학수업을 위해 힘쓰는 교육 현장 두 곳을 찾아갔다.
에듀테크, 맞춤형 학습에 효과 김빈 서울강신초등학교 교사
서울강신초등학교 과학실. 학생들은 모둠별로 모여 앉아 디벗(교육용 태블릿)에 ‘물을 모으는 방법’에 대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린다. 이 수업은 4학년 과학 교과에 실린 ‘물의 상태 변화’ 단원의 일부다. 완성된 그림은 노션(notion)에 업로드해, 학생들의 작업물이 실시간으로 교실 전면 모니터와 개인 태블릿에 공유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기도 하고, 다른 친구의 아이디어를 확인하면서 댓글로 자신의 의견을 남긴다.
이처럼 강신초등학교에서 과학 과목을 맡은 김빈 교사는 수업에서 디벗, 노션, 구글, 패들릿 같은 디지털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학생들에게는 표현의 기회를 넓혀주고, 교사에게는 학습 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피드백하는 데 유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맞춤형 수업은 말 그대로 아이들 하나하나의 상태를 살펴야 하는데, 교사가 혼자 모든 걸 감당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그런데 에듀테크를 활용하면 그 시간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죠. 오늘 수업만 해도 노션 덕분에 발표하지 못한 아이들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고, 수업 시간 내에 그림을 완성하고 공유, 감상까지 모두 가능했어요.”
실제로 학생들은 이러한 수업 방식에 높은 만족감을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 피드백을 활용한 과학 글쓰기 활동이 끝난 뒤, 한 학생은 상기된 얼굴로 “집에 가서도 더 해도 되냐”고 묻기도 했다. 2024년에는 김빈 교사가 가르친 학생이 서울특별시교육청의 ‘학생 스마트기기 활용 학습 사례’ 공모전 수기 분야에서 금상을 받았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서 더 질 높은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수업의 참여도가 올라갔다는 내용이다.
학습자 주도성을 키우는
수업 환경 조성이 중요
김빈 교사가 강조하는 맞춤형 수업의 핵심은 학생 개개인의 흥미와 수준을 고려한 개별화된 학습 계획과, 학생 스스로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유연한 학습환경 조성이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탐구하고 친구와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듯, 교실에서도 아이들이 자기 학습의 주체가 되어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 결정’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할 때, 학생들의 흥미, 수준이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학생 맞춤형 수업의 기반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맞춤형 수업을 실행하는 데 디지털 도구는 학생들의 표현 기회를 넓히는 데 그치지 않고, 교사가 개별 학습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는 데도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기반 글쓰기 평가를 활용하면 교사가 미리 설정한 평가 기준에 따라 인공지능이 학습자의 글을 분석하고 채점할 수 있다. 물론 교사의 관찰과 최종 검토는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기술 덕분에 과거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평가가 이루어지고, 그만큼 사고력 중심의 서·논술형 평가에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된다.
다만, 학생 맞춤형 수업은 단지 개별 속도나 관심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완급 조절’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인공지능과 에듀테크 기술을 활용한 수업을 기획할 때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AI 기술 사용 및 데이터 수집에 대해 충분히 안내하고 동의를 받는 것이 필수다. 또한, 수집된 데이터가 개인정보보호법을 철저히 준수하며 안전하게 처리되고 있는지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부터 도입되는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AIDT)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편이다. “디지털 교과서의 내용 자체는 기존 전자교과서 콘텐츠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학생이 자신의 수준과 관심에 맞게 학습을 조절하고 성장 이력을 직접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수업 시간에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함께 모색해 가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빈 교사는 “지금까지 인공지능과 에듀테크를 활용한 맞춤형 수업에 집중해왔다면, 앞으로는 학생들과 함께 탐구 질문을 만들고, 여러 교과를 융합한 참여형 수업으로 조금씩 확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질문을 함께 던지고 해결해 가는 프로젝트가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이해중심, 학생 중심 수업 최혜원 휘경중학교 교사
휘경중학교 최혜원 교사가 생각하는 학습자 맞춤 중심 수업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수업 자료와 학습 방법을 활용해 과학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도록 돕는 것”이다.
“새로운 단원을 시작하기 전, 저는 먼저 성취기준과 평가기준을 여러 차례 꼼꼼히 읽어보며 학생들이 꼭 익혀야 할 핵심 개념을 선별합니다. 이후 평가기준에 맞추어 학습 내용을 체계적으로 구분하고, 기본 개념부터 차근차근 익힐 수 있도록 학습지를 구성하며 관련 실험도 함께 준비합니다. 지필평가에 들어갈 문항도 수업 설계 초기 단계에서부터 미리 구상해, 수업과 평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수업 설계는 먼저 학생이 수업을 통해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했는지를 평가하는 방법을 고민한 뒤, 최종적으로 그 목표에 이르는 다양한 학습 활동을 계획하는 것이다. 이 같은 수업 방식은 목표와 평가, 학습 활동이 긴밀히 연결되기 때문에 학생의 현재 ‘이해 수준과 성취도’를 중심에 두게 되며, 이는 자연스럽게 학습자 중심 수업으로 이어진다.
학생 개개인의 이해 수준을 고려한 수업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최 교사는 다양한 교수 전략을 병행한다. 단원 도입 단계에서는 하브루타식 질문 수업을 활용하는데, 이는 학생들이 2인 1조로 짝을 이루어 서로 질문하고 답하며 개념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대화 중심 학습 방식이다. 최근에는 ‘디벗’ 같은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시각화 활동과 퀴즈를 더해 수업의 흥미와 몰입도를 높인다. 최 교사가 자주 활용하는 방법은 ‘3급 정교사’ 활동이다. 수업 내용을 빠르게 이해하고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이 먼저 활동을 마친 뒤, 친구들을 도와주는 방식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학생 간 협력 학습을 촉진하고, 서로의 이해를 돕는 과정에서 배움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
학습자 맞춤 중심 수업,
교사의 설계 역량이 중요!
최혜원 교사는 최근 도입된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AIDT)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면서도 신중한 입장이다. 학생 개인의 능력과 수준에 맞춘 맞춤형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실제 수업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효과를 낼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 교사는 “비용 문제와 학부모의 우려, 학생들의 독서력 저하 등을 고려할 때 디지털 교과서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앞으로의 변화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은 실제 수업 현장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작년에 학교 교육력 제고와 관련하여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에듀테크를 활용한 수업을 진행했고, 아두이노 코딩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실험 도구를 만들어 수업에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연구 보고서를 통해 확인한 결과 학생들은 과학적 사고력과 참여도, 평생학습 역량에서는 유의미한 성장을 보였지만, 문제 해결력과 탐구 능력 향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과학과 연계된 독서와 글쓰기 활동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또한 최근 교육계에서 강조되는 디지털 문해력 함양을 위해 수업을 더욱 체계적으로 구상 중이다. 앞으로는 ChatGPT 등 다양한 에듀테크 도구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학생들의 문해력과 사고력, 표현력을 함께 키우는 과학수업을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학습자 중심 수업이란 학생 한 명, 한 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맞춰 수업을 설계하는 것일 것이다. 말은 쉬워 보여도, 현실의 교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학생마다 관심과 이해 수준이 다른 데다, 수업 시간은 늘 빠듯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혜원 교사는 “어떻게 하면 더 잘 맞춰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교사의 몫이라 믿는다.
“예전엔 선생님만이 지식을 전하는 유일한 존재였지만, 요즘은 인터넷 강의도 있고 유명 강사들도 많잖아요. 그래서 교사에게 중요한 건, 아이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수업을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최 교사는 실험과 활동, 대화를 통해 학생들이 과학을 ‘어렵고 낯선 학문’이 아니라, ‘삶 속에서 꼭 배워볼 만한 가치 있는 지식’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학생의 반응에 귀 기울이고, 그 속에서 새로운 수업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 그것이 오늘도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