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과학교사의 역량 확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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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모두를 위한 포용적 과학교육 실현
소통하는 과학자 육성 위한
새로운 교육적 패러다임 전환 필요
과학교사라면 한 번쯤 내가 가르친 제자가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으면서 “나에게 과학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신 스승”으로 나를 지목해 주는 꿈을 꾸어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보다 훨씬 뛰어난 과학교사 선배들도 못했던 일을 내가 할 수 있으리라는 언감생심을 가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과학 선생님은 나에게 과학교사로서의 길을 알려주신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과학자 대신 과학교사로서의 꿈을 기르도록 잘 안내해 주었다는 것은 틀리지 않은 가정일 것이다.
과학자와 과학교사의 차이
다양한 네트워크 통해 보완해가야
과학자와 과학교사의 차이는 무엇일까? 반도체 물질이면서 입자의 크기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양자점 연구로 2023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3명 중 한 명인 바웬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62)는 공동 수상을 한 루이스 브루스(80) 미국 컬럼비아대 명예교수의 제자이다. 스승인 루이스 브루스 교수는 미국 벨 연구소에서 유체(물)을 이용해 자유롭게 떠다니는 입자의 양자 효과를 증명했다. 그리고 브루스 교수의 제자인 바웬디 교수는 끓는 기름에서 양자점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 결함이 없는 양자점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바웬디 교수는 학생 및 박사후연구원들과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즐기고, 학생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스승이라고 한다. 그는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은 후, 인터뷰에서 지도교수였던 브루스 교수의 헌신적인 멘토링에 감사를 전했으며, 제자였던 머레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노리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교수에게 공을 돌렸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은 날에도 아침 9시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과 함께 축하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바웬디 교수나 브루스 교수는 과학자이기 전에 매우 훌륭한 과학교육자였다고 생각한다.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노벨상을 수상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만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교사의 헌신적인 멘토링이 필요하다. 따라서 훌륭한 과학자를 기르기 위해 과학교사는 과학자의 역할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과학의 길을 안내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육 전문성과 과학 전문성을 동시에 가지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과학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다양한 공동체가 함께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과학교사의 역량을 벗어나는 복잡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협력하게 되면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초연결 사회에서는 협업을 유지하기 위해 의사소통 역량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집단으로 진행되는 오늘날의 과학기술 연구
‘소통하는 과학 구성원’ 육성 중요
우리는 ‘똑똑한 개인’을 기르는 과거의 과학 교육에서 ‘협력적이고 역동적으로 소통하는 과학 구성원’을 기르는 새로운 교육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기술 연구는 개인이 아닌 집단의 형태로 진행되며, 연구자 간 의사소통과 협업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과학자끼리 혹은 과학교사끼리의 소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학문 영역의 전문가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아마도 의사소통을 잘하는 전문가를 꼽으라고 하면 시인일 것이다. 간결한 말 속에 깊은 함축을 통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동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학자와 시인은 전혀 다른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20세기 과학혁명을 촉발시킨 ‘열역학의 시인’이라고 불리우는 일리야 프리고진은 비평형 통계역학자로서 1977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 중 ‘혼돈으로부터의 질서(Order Out of Chaos)’는 그가 생각한 질서와 무질서, 평형과 비평형, 우연과 필연, 가역성과 비가역성의 관계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그는 비평형과 비가역성으로부터 질서의 근원과 시간의 화살을 찾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과학자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에서 항공기사인 아버지와 음악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프리고진은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했다. 그런데 중학교에서 고전과 고고학, 문학, 철학 등을 배우면서 ‘흐름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앙리 베르그송의 철학을 만났다. 그 후 그는 법률가의 길을 가기 위해 범죄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우연히 화학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화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인문학과의 접목
과학을 더욱 풍요롭게 해
이러한 점을 볼 때, 우리가 중고등학생들에게 진로를 빨리 결정하라고 요구하고 그 진로로 공부를 매진하게 하여 대학 입학을 시키는 것은 훗날 좋은 성과로 이어지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학문을 접하게 하고 성장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아무리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이라 해도,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문학적 소양은 단순히 학습한 지식을 적용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내면화된 지식을 토대로 당면한 상황의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자유, 자율성, 비판적 사고 등과 같은 본질적 가치들을 획득하면서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하여 경험을 축적하고 꾸준히 개인의 능력을 넓혀 나가는 자질을 의미한다. 특히, 다양한 인문학 지식, 즉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에 대한 학습과 이해를 통해 자연 현상을 파악하고, 실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지식 수준으로 체화되도록 가르치는 것은 과학자의 길을 가려는 학생들뿐 아니라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학생들에게도 인격적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과학교사들은 과학자와의 협력뿐 아니라 다양한 다른 분야의 교사들과 전문가들과 협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프리고진은 노벨상을 받은 후에도 과학자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곤충학에서부터 문학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논쟁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과학과 문화를 만들었다. 그는 오늘날 사회적 변화의 특징을 설명할 수 있는 무질서, 불안정성, 다양성, 비평형성, 비선형성과 같은 실재적 현상들에 주의를 돌리면서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개의 문화를 접목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그의 왕성한 활동을 보았을 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력하는 활동은 과학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수학자로서 노벨상에 버금가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도 중학생 시절에 시인이 되려고 했다가 수학자의 길을 가게 되었는데, 그 계기는 역시 필즈상을 받은 일본인 수학자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그는 중학교 때 글쓰기를 좋아하는 단짝 친구를 만나 책 읽기와 시 쓰기에 푹 빠져서 시인이 되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러나 혼자 글을 쓰다 보니 능력의 한계를 느껴서 좋아하는 과목인 과학을 공부해서 과학 기자가 되기 위해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물리학 공부에 적응을 못하고 방황하다가 학부 마지막 학기에 서울대 석좌교수로 초빙된 일본의 세계적인 수학자이면서 1970년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수업을 듣고 수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수학자로 배우는 것이 느렸지만, 동료와 함께 연구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2018년에 자신의 논문을 보고 연락해 온 2명의 수학자와 함께 ‘로타 추측’을 해결하여 필즈상을 받게 되었다. 허준이 교수는 연구를 함께 해준 동료들에게 큰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은 연구의 생명과도 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은 과학이나 수학만 잘해서는 쉽지 않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을 때 가능하다.
허준이 교수는 “수학은 글쓰기나 음악 같은 예술의 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언어의 종류가 다를 뿐 모두 표현하기 어려운 대상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같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점에서 과학, 수학뿐 아니라 문학, 예술, 음악 등은 모두 같은 공통점을 가진다는 의미를 이해하고, 보다 풍요로운 과학교육을 위해 다양한 다른 학문과 소통하고 연결지으려는 시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소개한 일리야 프리고진도 “과학자가 하는 일이나 작가가 하는 일은 동일하다. 만약 과학은 반박될 수 없는 명제로만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마술이나 신비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학위수여식에 참석한 허준이 교수는 졸업 축사로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중략) 자신에게 친절하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과학교사들도 과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전달해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가 학문을 배운다는 것은 이러한 성숙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누구나, 모두를 위한’ 포용적 과학교육의 글을 요청받고, 과학교육에서 다양한 공동체가 함께 협력하여 진행해야 한다는 내용에 맞는 글을 찾기 위해 많은 고민 끝에 이렇게 글을 마친다.
백성혜 교수는 한국교원대학교 화학교육과 교수로 30년 가까이 재직하면서 약 10년 전부터 대학원 융합교육전공을 만들어 현재 전공 주임을 맡고 있다. 2024년부터 융합교육전공 박사과정이 신설되어 가장 경쟁률이 높고 입학생 비율이 높은 전공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연구소 지원사업을 받아 5년간 소장으로 융합교육연구소를 운영하면서 4명의 연구교수 및 6명의 공동연구교수, 그리고 2명의 연구원들과 활발하게 융합교육연구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