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 K-STEM 교육의 필요성과 새로운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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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아닌 사고력 키우는 교육…
대한민국 자연과학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요즘 학부모들의 큰 고민은 우리 아이의 공부가 ‘의미 없는 암기’로 끝나버린다는 점이다. 문제집을 풀고 단어를 외워도 흥미는 점점 사라지고, 배움의 즐거움은 느끼지 못한 채 피로만 쌓인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접근이다. 정답을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며 배우는 과정이 중심이 되는 교육. 그것이 바로 스팀교육이다.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예술(Art), 수학(Math)의 융합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사고하는 힘을 기르게 하는 것이다. 이 교육 방식에서는 ‘정답’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 즉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수능에서 과학탐구 선택자가 급감하며 과학교육의 위기가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섰다. 과학 기초학력 저하와 이공계 진학자 질적 약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단순히 입시 과목의 인기가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사고력과 탐구 역량이 점차 약화되는 사회적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과학은 여전히 산업과 기술 발전의 근간이지만, 학생들은 과학을 ‘어려운 암기 과목’으로 인식한다.
지금이 바로, 배움의 방향을 바꿀 시간
한국 학생들은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TIMSS)에서 수학·과학 분야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지만, 과목 흥미도는 OECD 평균보다 낮다(OECD, 2016). 이른바 ‘고성과-저흥미(high achievement–low interest)’의 역설은 언제나 우리 교육 혁신의 출발점이었다. 2011년 정부는 창의적 융합인재 양성을 목표로 STEAM 교육을 도입했다. 이는 과학·수학 중심의 교과에 예술과 인문요소를 결합해 학생의 흥미와 창의성을 동시에 높이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초기 STEAM은 ‘융합’의 이상과 달리 교과 간 경계가 유지된 채 형식적 통합에 머물렀고, 프로그램 개발과 평가의 일관성 부족으로 현장 확산에 한계를 드러냈다.
2020년대에 접어들며 AI, IoT, 데이터 과학의 급속한 발전은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했다. 사회 전반이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단순한 교과 통합을 넘어 과학기술을 활용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역량이 필수로 부상한 것이다. 과학기술 사회의 웰빙을 누릴 수 있는 시민 및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AI·데이터·IoT 등 첨단도구 활용으로
창의적 문제 해결을 유도하는 K-STEM
인공지능이나 융합이 강조되는 시대와 우리나라의 이공계 위기 상황이 맞물리면서 우리나라 교육의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한 이공계 교육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K-STEM은 기존의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교육을 한국의 교육 현실과 사회적 요구에 맞게 재정의한 새로운 모델이다. K-STEM은 과학적 사고를 중심으로 AI·데이터·IoT 등 첨단 도구를 활용해 실생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융합형 교육체계이다. 이는 한국의 사회·문화·교육적 특수성을 반영하면서도 창의 융합교육이 가진 정체성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과학·기술 중심의 문제 해결형 교육체계로 볼 수 있다. K-STEM은 기술을 ‘도구’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데이터·센서 등의 첨단 탐구 도구를 교육과정의 본질적 구성요소로 통합한다는 점에서 기존 STEAM과 구별된다.
K-STEM 교육의 세 가지 핵심 개념
과학 중심의 융합 구조
K-STEM의 출발점은 기초과학 교육의 회복이다. K-STEM에서 ‘S’(Science)는 단순한 한 교과가 아니라, 문제 인식과 탐구 설계의 출발점이다. K-STEM은 수학 과학과 같은 형이상학적 교과의 어려움을 디지털 탐구 기반의 시각화 교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 AI 시뮬레이션이나 데이터 분석 도구를 활용하면, 분자 구조나 반응 속도 같은 개념을 직관적으로 탐구할 수 있으며, 사회문제와 연계한 프로젝트를 통해 ‘삶 속의 과학’으로 경험할 수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일부 이를 실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융합과학탐구’ 과목에서는 학생이 대기오염, 에너지 효율, 기후변화 등 주제를 설정하고, 센서·IoT·AI 기반 도구를 활용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석한다. 이는 과학·수학·공학적 지식이 실제 탐구 맥락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교육 구조를 구현한다. 이뿐 아니라, 환경오염, 에너지 위기, 식량안보 등 사회문제를 다룰 때, 인문학적 공감 이전에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사고하고, 데이터에 기반해 판단하는 훈련을 강조한다. 이러한 접근은 과학탐구의 기초를 강화하면서도, 기술적 실천을 병행할 수 있는 ‘문제 해결형 과학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 과학적 탐구 맥락에서 학생들은 데이터를 수집·분석·시각화하며 자신의 탐구 결과를 공유·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비판적 데이터 해석 역량을 함양할 수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와 시민성의 결합
K-STEM은 단지 기술을 배우는 교육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과학기술 문해력을 갖추는 포용적 교육 모델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 데이터 리터러시, AI 리터러시는 시민으로서의 사고와 행동 능력과 결합되어야 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디지털 리터러시를 국어·수학과 동등한 기초소양으로 제시했으며, 데이터 리터러시와 AI 리터러시를 핵심 역량으로 포함했다(KMOE, 2022a). 이러한 리터러시는 단순히 기술 활용 능력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윤리적 판단·사회적 참여 역량을 포함하는 ‘확장된 문해력’이다. 예를 들어 과학수업에서는 학생이 공공 데이터나 환경 데이터를 분석하여 사회적 문제를 탐구한다.
이 과정은 과학 지식을 ‘암기’에서 ‘사회적 실천’으로 확장시키며, 과학적 소양(scientific literacy)을 시민의 디지털 시민성으로 연결한다. 즉, 데이터를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판단하며, 윤리적 관점을 가지고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과학적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K-STEM의 리터러시 개념은 ‘모든 시민을 위한 과학기술 문해력(literacy for all)’을 의미하며, 과학기술을 일부 전공자만의 영역이 아닌 민주사회 구성원의 기본 역량으로 확장한다. 결국 K-STEM은 “미래 사회의 모든 시민이 데이터를 해석하고 과학적으로 의사결정 할 수 있도록 돕는 보편적 교육”을 지향한다. 이는 단순히 엘리트형 이공계 교육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의 과학적 소양 함양을 위한 STEM 시민교육이라 할 수 있다.
첨단 탐구 도구의 학습화
K-STEM은 첨단 기술을 ‘배움의 도구’로 재구성한다. K-STEM은 AI, IoT, 빅데이터, 센서 기술을 교육도구로 활용하여 데이터 기반 문제해결형 탐구(data-driven inquiry)’를 구현할 수 있다. AI 분석 도구, IoT 센서, 빅데이터 시각화 툴 등이 단순한 실험 장비가 아니라, 탐구를 설계하고 질문을 만들어내는 사고의 매개체가 될 수 있으며, 학생들은 이러한 도구를 활용하여 실세계 문제를 발견하고 가설을 세우고 디지털 탐구 도구로 데이터를 수집·분석·시각화하는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수업 방법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IoT 기반 데이터로부터 가설을 세우고 AI 분석으로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은, 과학이 ‘정답 찾기’에서 ‘문제 정의와 탐색’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학생이 미세먼지 농도를 직접 측정하고, AI를 활용해 데이터 패턴을 분석하며, 환경정책 개선안을 제시하는 수업은 전형적인 K-STEM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은 학생이 데이터의 생산자이자 문제해결자로 성장하게 하며, 과학적 탐구와 사회적 실천이 연결된 학습 경험을 제공한다.
K-STEM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우리나라 전체 교육 기관이 한동안 디지털 열풍에 몸살을 앓았다. 교사와 학생의 AI·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을 강화하도록 지원하며, 교사들이 기술 활용 수업을 공동 설계하는 기반을 제공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노력이 학생의 성장이라는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그동안 닦아놓은 기초를 발판으로 교과 맥락 안에서 응용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교사 연수는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 ‘AI·디지털 리터러시 기반 교수설계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K-STEM 교육의 성패는 교사 교육과 교사의 동기부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K-STEM이 지향하는 ‘모든 시민을 위한 과학기술 교육’은 교육격차 해소를 전제로 한다. 디지털 인프라가 풍부한 서울에서도 여전히 학교 간·지역 간 격차가 크며, 여학생의 STEM 자기효능감은 낮은 편이다. 따라서 K-STEM은 누구나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탐구에 참여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기술 접근성, 교사 지원, 평가 유연성 모두가 포용적 관점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 시내 데이터 공유 플랫폼을 통해 학교 간 탐구결과를 교류하고, AI가 학생의 탐구 단계를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더불어, 기술 활용의 편리함 이면에는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 편향 등의 문제도 존재하므로 기술적 능력뿐 아니라 과학기술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가르치는 인문 사회학적 시민교육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K-STEM은 단순한 약어가 아니라, 대한민국 자연과학 분야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징한다. 그것은 STEAM의 한계를 넘어, 과학·수학·기술·공학의 지식을 디지털 탐구 도구와 결합하여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교육, 즉 ‘디지털 전환 시대의 실천적 STEM 교육’이다. K-STEM은 ‘학생이 문제를 정의하고, 과학으로 탐구하며, 기술로 해결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교육’으로서, 서울교육 전체가 함께 실현해 나가야 할 교육 혁신의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손미현 교수는 서울시 교육청 소속의 교사로 20년 넘게 재직하며 올해의 과학교사상, STEAM 교육 장관상, 핀란드 LUMA center 융합교육대회 대상 등 융합교육에 대한 현장 경험을 다수 쌓아온 바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25년부터 경상국립대 화학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예비 화학교사 교육 및 AI 기반 과학교육, 융합교육,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