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4) 특별좌담 · 과학과 일상의 거리 좁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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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저변 확대와 실천 방향 모색
과학 대중화의 첫걸음 일상 속에서 과학 발견하기부터
일 시┃2024년 10월 9일 수요일 오후 2시
장 소┃서울특별시교육청융합과학교육원 회의실
사 회┃이인순 편집위원장(도봉중학교 교감)
참석자┃ 심규철(한국과학교육학회 학회장, 국립공주대학교 교수), 이지유(과학 교양서 저술가), 이소리(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사), 이지아(세종과학고등학교 교사), 박소영(가락중학교 수석교사)
오랫동안 과학은 ‘연구와 기술 개발’의 영역에서 소수의 전문 과학집단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급격한 과학기술 발달은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변화와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회적 주요 이슈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제 과학기술은 더 이상 과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는 당사자로서 대중의 이해와 참여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좋은 과학기술이라도 사회의 신뢰와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효과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서울과학교육에서는 ‘과학과 일상의 거리 좁히기–과학의 저변 확대와 실천 방향 모색’이라는 주제로 과학과 사회가 연결된다는 것의 의미, 이를 위해 필요한 노력, 특별히 과학교육의 실천 방향 등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과학은 인문학이자
인식의 한계를 넓히는 학문
사회자 누구나 현대 사회와 과학은 떼려야 뗄 수 없이 밀접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과학 또는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과학과 사회의 관계적 중요성, 예를 들면, 사회에 영향을 끼친 과학적 발견, 사회의 영향으로 발전된 과학기술 등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오늘 좌담회를 풀어가 볼까요?
심규철 과학이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산업혁명을 일으킨 증기기관의 발명부터 전기·전자 산업 발달, 인공지능까지 과학기술은 인류의 삶을 크게 바꿨죠. 반면 사회적 변화가 과학에 영향을 주는 사례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보통 백신 하나 만드는 데 1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코로나 백신은 불과 1년여 만에 개발됐어요. 사실 이건 기술적으로 굉장한 사건이거든요. 이게 가능했던 건 코로나 팬데믹을 빨리 극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전 세계적으로 형성되면서 글로벌 단체, 정부, 시민이 백신 개발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사회의 요구로 과학기술 발달을 촉발한 가장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소리 코로나19는 백신뿐만 아니라 학교 현장도 바꿨어요. 지난 20~30년간 원격수업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해도 쉽지 않았던 것이, 코로나19를 거치면서 1~2년 사이에 완전히 구축됐어요. 비단 학교 현장뿐만 아니라 비대면 사회가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화상 회의나 온라인 배송 등 네트워크 기술이 크게 발전한 것도 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지아 과학에서의 발견이 ‘내가 사회에 영향을 미쳐야지’ 이렇게 의지를 갖고 이루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플레밍의 푸른곰팡이도 우연히 특이한 현상을 발견하고 ‘왜 이렇지?’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제4세대 항생제까지 발전한 것이고요. 다만, 교수님이 예를 든 mRNA 백신 사례처럼 각자의 분야에서 여러 연구가 다양하게 이뤄지다가 사회적, 시대적 요구로 특정 연구 분야에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가 이뤄지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 같아요. 과거 냉전 시대 때 미국과 소련이 우주 경쟁을 하면서 엄청난 연구비를 투자하고, 그 유산이 현재 재활용 로켓 기술까지 이어진 것처럼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이인순│편집위원장(도봉중학교 교감) 과학대중화를 위해 과학 교육이 해야 할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우리 사회가 무엇을 기대하고 어떻게 배양토를 만들어줘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이인순 편집위원장 | 심규철│한국과학교육학회 학회장, 국립공주대학교 교수 국민 대다수가 과학을 접하는 유일한 장소가 학교인 만큼 학교 교육에서 과학적 경험을 다양하게 접할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심규철 국립공주대학교 교수 | 이지유│과학 교양서 저술가 과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강연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이야기하려는 주제와 대중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전하는 이지유 작가 |
이지유
제가 첫 번째 질문을 받자마자 떠오른 단어는 ‘시각’입니다. 보통 인간은 자신의 생물학적인 시각으로만 보고, 그것을 믿잖아요. 볼 수 있는 능력만큼 보는 게 우리 인식의 한계인 거예요. 현미경이 있기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작은 것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의식의 세계가 확장될 수 있었던 거예요. 반대로 망원경을 통해서 태양계 너머 은하계, 그리고 그보다 더 멀리 있는 다른 세상을 인식할 수 있게 된 거죠. 만약 현미경과 망원경 없이 생물학적인 시각으로만 봤다면 우리의 인식 세계는 원시인들의 인식 세계와 똑같겠죠. 이처럼 과학기술과 사회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변하는 거죠. 그러다가 코로나 같은 큰 사건이 터졌을 때 그동안 쌓였던 에너지가 새로운 뭔가로 발견되거나 진화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 사회와 과학 사이에 아주 작게 변하는 미세한 변화들을 좀 더 의미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규철 사이언스(Science)의 어원을 보면 ‘알고 있는 사실, 학습을 통해 얻은 어떤 것’이란 뜻이에요. 즉, 우주나 자연에 존재하는 어떤 지식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한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과학이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하고, 그것을 사람의 언어로 정리한 거예요. 그렇기에 과학은 그 배경을 이해하지 않아도 누구나 의사소통이 되는 거죠. 즉, 과학을 배운다는 것은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배우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사는 곳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과학의 개념이 예전에는 ‘교과’의 의미였다가 철학의 영역까지 넘어가고, 이제는 다시 좁은 의미의 과학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우리가 ‘과학’이라는 개념을 너무 제한적으로 생각하지 않나 싶어요. 인문과학, 사회과학처럼 여기서 쓰이는 과학의 개념이 자연과학과 다른 과학이 아니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과학’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의 언어를 대중의 언어로
번역하는 중간자의 역할이 중요
사회자 우리 사회에서 과학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과학을 어려워 하고 접하기를 두려워 합니다. 사람들은 왜 과학을 어려워할까요? 대중이 보다 쉽게 과학에 접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지유 사람들이 과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진짜 어렵기 때문이에요. 우주와 관련된 주제로 강연할 때 간혹 ‘초등학교 3~4학년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는데요. 저는 그렇게는 안 된다고 말씀드려요. 왜냐면 초등 3~4학년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인 어떤 결과물이 우주까지 가서 멀쩡하게 작동하는 것은 없거든요. 보통 과학을 모르는 사람에게 강연하려면 눈높이를 낮춰서 이야기해 달라고 해요. 그런데 전 반대에요. 내가 내려가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나만큼 올라오게 하는 거죠. 그래야 대등하게 얘기를 할 수 있어요. 과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강연하기 위해서 제가 취하는 태도는 상대방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제가 이야기하려는 주제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예를 들어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면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과학 이야기를 어떻게 음악과 접목할지 혹은 어떤 예를 들면 좋을지를 고민하는 거죠. 그래야 상대방도 호기심이 생기고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테니까요.
심규철 사실 과학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어요. 여기 테이블 위에 있는 페트병도, 우리가 입고 있는 옷도 그렇고 다 과학이거든요. 과학은 접하기 쉬운데 설명하기가 어려운 거죠. 그런데 과학자들은 자꾸 설명하려 들거든요. 조금 전 작가님께서 말한 ‘상대방의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이야기가 뭐냐면 ‘네가 접한 과학이 너의 일상과 관련 있어’라는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고, 그렇게 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이 좀 덜 어려워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 저도 과학은 어렵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원래 어려우니까 어렵게 가르쳐야 한다?’라는 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같아요.
이소리 저는 초등교사 출신이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과학 활동이 정말 즐거웠어요. 과학을 학문으로 접근하면 너무 어려운데, 초등학교에서 다루는 과학 활동은 그냥 일상이잖아요. 일상의 주제로 이야기하고, 탐구 활동을 하면 아이들은 정말 쉽게 탐구에 빠져요. 그런데 과학을 즐기는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성인이 되면서 과학을 어려워하더라고요. 저도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요. 여기 중학교 선생님이 계시니까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고 싶어요.
이소리│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사 일상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일상에서 발견하는 내용으로 탐구 활동을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과학에 빠져들게 된다고 말하는 이소리 장학사 | 이지아│세종과학고등학교 교사 사람들이 과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와 과학을 설명하는 언어 자체의 교집합이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지아 세종과학고등학교 교사 | 박소영│가락중학교 수석교사 아이들이 성취동기로 삼을만한 롤 모델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과학자로서 사회적 성공을 보여주는 사례나 본보기가 많이 알려져서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박소영 가락중학교 수석교사 |
박소영 초등학교 때는 재밌는 실험을 하면 대부분 호기심을 가져요. 그런데 개념을 배우고 원리를 이해해야 하는 단계가 되면 흥미를 잃죠. 물론 학생 수준에서 무조건 즐거워야 시작이라도 하려는 의욕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한 수업 시간에 실생활과 연결해서 수업하는 것이 필요해요. 문제는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생활 속에서 연결하지 못하더라고요. 학생들이 흥미를 유지하도록 하는 데 교사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한편으로 이공계 아이들이 대거 의대로 진학하잖아요. 그런데 의학 공부는 안 어려운가요? 어렵거든요. 그런데도 과학자의 자질을 갖춘 아이들이 의대를 선택해요. 이 문제는 사회적 배경, 개인화된 가치관, 개인적 이익 등 여러 요소가 얽혀 있지만, 과학이 어려워서 안 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어렵지만 끝까지 할 동기나 요소가 없다는 게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지아 인간의 이해 지평은 자기가 어느 정도의 언어를 가졌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사람들이 과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와 과학을 설명하는 언어 자체의 교집합이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 베트남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만든 재밌는 동영상이 있다고 했을 때, 한글로 번역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그 영상이 재밌는지 알 수 없어요. 그런데 영어나 한국어 자막이 생기면 조회 수가 폭발적으로 늘겠죠. 결국, 번역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학교는 과학적 언어에 호기심이 많은 아이가 오는 곳이에요. 그런데도 어떤 계기로 좌절을 겪거나 자신과 안 맞는 선생님을 만나서 급속도로 흥미를 잃는 경우가 많아요. 반대로 선생님을 잘 만나서 과학 과목이 좋아졌다는 아이도 있어요. 후자의 경우 그 선생님이 번역가의 역할을 잘한 거죠. 결국, 대중이 과학을 쉽게 접근하려면 작가님이나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언어를 넓혀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역할을 하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단 생각입니다.
박소영 예전에 과학고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과학자는 돈을 많이 못 번다. 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과학자는 포기했다는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아이들이 성취동기로 삼을만한 본보기가 없어요. 재미로만 즐거움으로만 먹고 살 수 없잖아요. 그러니 과학자가 꿈이었던 아이들도 대학을 진학할 때면 의대로 가는 거예요. 그런 사회적 인식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과학자로서 사회적 성공을 보여주는 사례나 본보기를 많이 알려서 인식을 전환해야 해요.
이지유 제가 도서관에서 성인 대상으로 강연한 적이 있어요. 제임스웹 망원경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어떤 분이 연료를 어떻게 쓰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태양열이나 핵연료 이야기를 하다가 2차전지 얘기가 나온 거예요. 강연을 다니면서 그렇게 집중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이유를 보니 주식 투자를 하는 분들이 많았던 거에요. 이렇게 쉽게 전지를 이해하는 건 처음이었어요. 그거 쉽지 않거든요. 아까 똑똑한 애들이 다 의대 간다고 했잖아요. 그 이유는 경제적인 것 때문이고.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국 돈이거든요. 그걸 상쇄할 만큼의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합니다.
심규철 문제는 우리 사회나 정책이 과학 친화적이지 않다는 점이에요. 아이들이 모두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어요. 다만, 과학 친화적인 사람으로 성장해서 자기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르치는 영재를 대상으로 장래 희망을 조사한 적이 있어요. 1순위가 의사, 그다음이 과학자였어요. 그다음 법조인, 사업가, 연예인 등 굉장히 다양해요. 전 이런 현상이 반갑습니다. 외국에선 연예인들이 과학계에 기부하는 경우가 많아요. 과학을 좋아하는 똘똘한 아이들이 커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면 과학 친화적인 정책을 만들고, 문화가 형성되겠죠. 그러면 하루아침에 연구비가 끊기거나 과학자가 일자리를 잃지 않겠죠.
과학문화 저변 확대를 위한 활동,
분야의 다양성, 수준의 다양성 확보돼야
사회자 최근 파워 ‘과학 유튜버’가 등장하고, 과학기술과 예술을 합친 공연이나 전시, 과학토크쇼 등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데요, 이와 같은 과학의 저변 확대를 위한 다양한 문화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박소영 최근 과학기술에 기반한 문화예술 공연이 많이 등장하고 있어요. 사실 전시관이나 공연장에 찾아가지 않아도 거리에서 선보이는 예술공연도 과학과 관련된 것들이 많거든요. 저는 교실 안에서만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삶이나 사회와 연결하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면 빛과 파동을 가르칠 때 ‘쉐도우 아트’라는 장르를 소개하고 보여줘요. 쉐도우 아트라는 게 사물의 그림자를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드는 건데 그 기반이 빛이 직진하는 성질을 이용하는 거죠. 사실 이런 활동은 학교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단 말이죠. 아이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직접 그림자를 이용한 공연이나 작품을 준비해요. 잘 된 작품들은 영상으로 찍고, 학교에 QR코드를 붙이면 학교가 곧 전시장이 되는 거예요. 아이들의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이지아 최근에 교보문고에 갔는데 거기에 과학 유튜버 궤도의 사인이 있었는데, 어떤 젊은 커플이 사인을 보더니 남자분이 ‘궤도다!’하고 알아보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옆에 여자분이 ‘괴도 루팡할 때 그 괴도?’하더라는 거죠. 과학 유투버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관심 있는 사람만 찾아가 보는 그런 정도의 단계인 것 같고. 하나 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우리 학교 물리 선생님이 잉크가 바짝 마른 만년필을 다시 살리고 싶어 했어요. 음압을 걸고 별짓을 해도 안 되는 걸, 교무실 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대면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거든요. 그러다가 만년필 잉크가 산성이라는 것을 알아내서 오랫동안 굳었던 잉크를 녹인 거죠. 그런데 머리를 맞대며 함께 해결책을 고민하던 국어 선생님께서 그 과정을 너무 재밌어하는 거예요. 결론만 말하자면 과학적 관심은 일상에서부터 출발해야 하고, 대중이 그런 기회를 많이 만나는 게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교보문고에서 만난 그 여자분이 이런 만년필 에피소드 같은 경험을 한다면, 또는 길에서, 예술작품에서, 박물관에서, 유퀴즈 같은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 그런 호기심이 생긴다면 과학에 관심을 두게 될 것입니다.
이소리 제가 서울형 메이커 교육을 2년간 열심히 했는데, 어떻게 하면 선생님들을 메이커의 세계에 빠져들게 할까가 저의 고민이었어요. 그러다가 과학 유튜버 긱블의 메이커 스페이스를 방문하는 연수를 진행했어요. 그때 선생님들의 높은 참석률과 관심에 놀랐고, 그 경험으로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메이커 활동을 하는 걸 보면서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거든요. 과학 유튜버들의 활동이 활성화되고, 이를 통해 아이들이 과학을 즐기는 문화가 확대되면 좋겠어요.
심규철 과학 대중화를 생각했을 때 학생들, 일반 성인, 특정 전문가 집단 등 대상이 다양할 텐데 대상의 특성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교육 관련 학술대회에서 과학문화 프로그램으로 커피, 위스키, 앰프를 주제로 계획하고 있는데 반응이 뜨겁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익히 접하는 소재로 과학을 다루다 보니 일반인뿐 아니라 연구원이나 교수들도 큰 관심을 나타낸 거죠. 학생의 경우 그들의 문화를 수업 시간이나 평가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거든요. 그래서 했던 것 중 하나가 랩을 활용해 문제를 내는 거였어요. 또 1968년에 나왔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이정문 화백이 1965년에 미래 생활을 상상한 삽화를 보면 태블릿PC, 화상 진료, 전기자동차 같은 것들이 나와요. 그리고 그 기술들이 지금은 상당 부분 구현됐죠. 이런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만화·문학 같은 작품들도 아이들에게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흥미를 줄 수 있어요. 요즘 유튜버가 영향력이 크다고는 하지만 조회 수나 구독자 수에 얽매이게 되면 한계가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유튜브뿐만 아니라 지면으로든 영상으로든 공연장에서든 다양한 분야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지유 방금 교수님께서 다양성을 이야기하셨는데, 분야도 다양해야 하지만 각 분야의 난이도 즉, 수준의 다양성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이든 무조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분야에서 정점이 되는 최고 수준의 것을 경험하면 사람들이 그보다 낮은 수준으로 내려가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과학에 대한 감수성과 그런 것이 높아지려면 그 분야의 최고를 봐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걸 뛰어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저는 과학 유튜버는 많을수록 좋고, 그 수준도 다양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과학 공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생각보다 대중은 과학과 예술을 합친 공연에 관심이 엄청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회성 공연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해요. 한 번, 두 번 공연하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 돈이 모이고 기회가 생깁니다. 그게 중요해요. 그리고 NASA 이야기를 꼭 하고 싶은데요. NASA에서 홈페이지, SNS도 만들거든요. 그런데 항상 방문객 수, 클릭 수를 기록해요. 그걸로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알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정부나 재단의 정책 지원의 근거로 삼거든요. 우리도 이런 건 접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는 처음 과학을 접하는 곳,
다양한 경험을 쌓는 기회 제공해야
사회자 과학교육은 과학기술 인재 양성은 물론 과학의 대중화, 즉 과학문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학교 현장에서의 과학교육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이번 주제는 정책을 담당하시는 장학사님부터 풀어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소리 저희도 학교에서의 과학 교육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고민을 많이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즐겁게 즐기면서 과학을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들이 먼저 즐겨야 하잖아요. 저희가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게 얼마나 학교 현장에서 도움이 될까에 대한 확신은 늘 부족한 것 같아요. 저도 학교 현장에서 나온 지 오래여서 선생님들이 원하시는 게 뭔지 늘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거든요. 오늘 이렇게 학교 선생님 두 분이 오셨으니까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면 저희가 정책 방향을 잡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지아 제가 속한 학교는 과학자가 되고 싶은 아이들의 비율이 아주 많은 학교잖아요. 그런데 에피소드 하나를 말씀드리면 과제 연구를 하는데 학생들이 하나는 용매가 물이고 다른 하나는 에탄올과 물이 반씩 섞인 샘플을 2개 준비했어요. 그런데 라벨링을 하지 않은 거예요. 샘플이 구분되지 않으니까 저한테 알아낼 방법이 있는지 묻는 거예요. 그래서 일회용 스포이트로 각각 샘플 용액 한 방울씩 똑 떨어뜨렸어요. 물은 볼록하고 에탄올이 섞은 용액은 납작하잖아요. 납작한 용액이 에탄올이 섞인 것이라고 알려주니까 학생들이 ‘소름이 돋는다’라면서 너무 놀라워하고 즐거워하는 거죠. 그걸 보고 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학은 과연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이렇게 과학을 그래도 많이 접했던 학생들조차도 그런 것들을 접할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구나. 그리고 과학을 잘하고 좋아한다는 자기 인식이 ‘내가 점수를 잘 받는다. 또는 남들보다 내가 많이 맞춘다.’ 이 정도 수준에서 그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저는 인간 즉, 호모사피엔스라는 종 자체에 호기심이 코딩돼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타고난 그 호기심을 죽이지 않으면 누구나 과학을 좋아하고 잘하리라 생각해요.
이지유 제가 이 질문을 받고 허 박사라는 분이 생각 났어요. 작년 1월에 칠레에 갔는데, 그분이 18년 전에 저한테 편지를 보냈다는 거예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천문학자가 되고 싶은데 주위에서 모두 ‘그 성적이면 다른 걸 하지 왜 하필이면 천문학자냐’라면서 말린다는 거예요. 제가 장문의 편지로 ‘남이 너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천문학자의 장래는 매우 밝다.’라고 하면서 ‘천문학과가 있는 학교, 천문학과를 나오면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유학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등을 써서 보내준 거죠. 그걸 저는 잊고 있었는데, 그 학생은 제 편지를 보고 천문학과에 가고,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일하고, 마침내 스페셜리스트 과학자가 된 거예요. 그 이야길 듣고 제가 소름이 쫙 끼쳤는데요. 그러면서 학생들이 실제로 과학자나 과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중요하겠구나 생각했어요. 동물학자가 꿈인 학생에게 최재천 교수님 같은 분이 학교에 와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한 30분 얘기해 주고 가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거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자면 공부든 뭐든 뭔가를 열심히 하고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려면 얼마간 뇌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 판화 작업을 할 때 너무 힘들어서 정말 육체적인 힘을 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공부나 연구를 오랫동안 하는 학생이나 연구원 같은 데서 이런 작업을 해보면 생각지 못한 인사이트가 나오지 않겠냐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소리 결국, 아이들이 직접 삶과 연계된 과학의 참맛을 느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그것이 진로까지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겠네요.
심규철 훌륭한 과학자로 양성하기 위한 과학교육이라고 한다면 성적이 아니라 꿈이나 목표를 이끄는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과학을 경험하는 곳의 90% 이상이 학교입니다. 과학관이나 체험관 같은 곳은 10%도 안 돼요. 그만큼 학교 교육에서 과학적 경험을 다양하게 접할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물론 이게 학교나 교사만의 노력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와 정부의 노력과 함께 다각적인 방향에서 정책적인 지원이 이뤄진다면 여러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사회자 지금까지 ‘과학과 일상의 거리 좁히기’라는 주제로 ‘과학의 저변 확대와 실천 방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기대하고 배양토를 만들어줘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교수님 말씀처럼 절대 다수의 국민이 과학을 접하는 거의 유일한 장소가 학교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 교육이 해야 할 일이 막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참석하셔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주신 여러분께도 감사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