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 ‘참여와 실천’을 이끄는 과학기술관련 사회쟁점(SSI)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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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소양의 핵심은 ‘참여와 실천’
기술 발전으로 복잡해져 가는 사회 다각적 관점의 과학 교육 필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가습기 살균제 등 위험한 화학물질에의 노출, AI·딥페이크로 인한 범죄 등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건들을 보면,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1992)이 말한 대로 우리가 ‘위험사회(risk society)’에 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찰스 페로(1984)는 그의 책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에서 첨단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더 많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사고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우연히 발생한 작은 사고가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예측이 불가능해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주목받는 키워드가 바로 ‘참여와 실천’이다. 그리고 ‘참여와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과학교수학습 방법 중 하나가 ‘과학기술 관련 사회쟁점(SocioScientific Issues, SSI)’ 교육이다.
‘참여와 실천’의 의미와 과학적 소양
‘참여와 실천’은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로, 어떤 일이나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이론이나 계획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2019년에 발표한 『미래세대 과학교육표준』에서는 ‘참여와 실천’을 과학적 소양의 핵심 요소로 제시하며, 과학 탐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일상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및 개인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행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참여와 실천’은 넓게 정의되고 있으나, 이 글에서는 최근 강조되고 있는 ‘과학적 소양 Vision III’의 관점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과학적 소양 Vision III’는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다. 과학적 소양을 Vision으로 처음 개념화한 학자는 더글라스 로버츠로, 그는 오랜 기간 논의되어 온 과학적 소양을 Vision I과 Vision II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참조). Vision I은 학교 과학교육의 목적을 잠재적 과학자를 양성하는 데 두며, 기본적인 과학 지식과 탐구 기능 습득을 강조한다. 반면, Vision II는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이나 기술을 일상생활에 적용하고,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쟁점들에 대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역량 함양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기후 위기와 급속한 환경 파괴와 같은 복잡한 사회문제들을 마주하는 오늘날, 단순히 과학 지식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민들은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쟁점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과 논의하고 숙고하며,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 전체의 안녕을 위해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스웨덴의 예스퍼 스조스트롬은 이러한 책임의식을 포함한 과학적 소양의 개념을 Vision III으로 이름지었다. 즉, Vision III는 사회 변화를 위한 과학 학습(transformative learning)과 참여·실천을 강조한다. 여기서 ‘참여와 실천’은 ‘practice’, ‘participation’, ‘engagement’, ‘action-taking’ 등의 의미보다 ‘praxis’에 더 가깝다. ‘Praxis’는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불확실한 문제를 실질적인 숙고를 통해 해결하려는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목적을 가진 행동으로, 이론적 사고에 기반한 의도적이고 변혁적인 행동이며, 그에 대한 책임의식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제는 이러한 의미의 ‘참여와 실천’을 할 수 있는 과학적 소양인을 길러내야 할 때이다.
‘참여와 실천’을 위한 과학교육의 방향
‘참여와 실천’의 중요성은 우리 모두 인지하고 있지만, 이것을 실제 과학교육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논의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문서 중 하나가 2022 개정 과학과 교육과정의 기초가 된 『OECD 학습나침반 2030』(OECD, 2019)이다. ‘학습나침반’은 학생들이 교사가 제시한 방향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낯선 상황 속에서 스스로 의미 있고 책임감 있게 방향을 찾아가는 능력을 강조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우리는 의 학습나침반을 보면서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과학기술로 인해 사회적·환경적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나침반을 들고 향해야 할 목표 지점은 어디인가?
둘째,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방법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첫 번째 질문에서, 나침반이 가리키는 목표 지점을 먼저 생각해 보자. 우리 사회는 점점 예측 불가능해지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우리가 공유해야 할 지향점은 무엇일까? 학습나침반은 ‘웰빙(well-being)’을 목표 지점으로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웰빙의 당연한 출발점으로 여긴다면, 이는 매우 인간중심적인 사고일 수 있다. 사실, 인간중심주의는 인류와 지구가 직면한 생태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 지구 생명공동체와의 긴밀한 연결 속에서 웰빙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두 번째 질문은 웰빙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학습자가 갖추어야 할 역량에 관한 것이다. 학습나침반은 지식과 기술, 가치와 태도를 기본 역량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커지는 사회에서 전 지구적 웰빙과 지속 가능한 사회를 실현하는 데 더욱 중요한 것은 ‘변혁적 역량(transformative competencies)’이다. 이 변혁적 역량은 앞서 논의한 ‘praxis’와 연결되는 개념이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학습자는 목표를 설정하고 지속적으로 성찰하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책임감 있게 주도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 인간과 자연, 그리고 비자연적 존재들 간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 나가야 한다. 또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 간의 갈등과 딜레마를 조정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변혁적 역량’이다. 기후 위기나 생태·환경 파괴와 같은 복잡한 문제들은 개인이 아니라 부모, 교사, 또래, 그리고 지역 사회와 협력하여 집단적으로 대응해야 하며, 차이와 갈등을 넘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한다.
‘참여와 실천’을 이끄는 SSI 교육
과학기술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쟁점(SSI)은 ‘참여와 실천’을 이끌어내는 데 적절한 교육적 맥락을 제공한다. 이러한 쟁점들은 개인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이 인간,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하며, 지나친 개발과 이윤 창출 위주의 패러다임으로 인해 소외된 인간과 자연의 근본적인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자들과 그들의 관점 간 대립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문제 해결에 대한 동기를 자극한다.
이러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SSI 교육이 도입된 초기에는 주로 Vision II의 관점에서 SSI 교육이 진행되었다. 다양한 입장을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토의·토론 수업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Vision III의 관점에서 ‘참여와 실천’을 강조하는 SSI 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유럽연합의 PARRISE 프로젝트와 캐나다의 STEPWISE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내에서도 SSI-COMM과 ENACT 프로젝트가 ‘참여와 실천’을 강조한다. 이러한 SSI 교육 프로그램의 공통적인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교육의 맥락을 학교에서 지역사회로 확장하고 있으며, 둘째, 학생들의 주도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하면 ‘참여와 실천’을 이끄는 SSI 수업을 구성해볼 수 있다.
◆ 교육의 맥락을 학교에서 지역사회로 확장하기 :
SSI-COMM 프로그램
‘참여와 실천’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습의 장이 확대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지역사회의 문제로부터 학습을 시작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넘어 지역사회의 물적·인적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자신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임을 자각할 수 있다. 의미 있는 장소에서 직접적인 학습 경험을 쌓으면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장소에 대한 애착을 형성하게 되며, 이러한 장소 애착은 학생들이 더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지역사회와의 연계는 학생들을 실천하는 시민으로 성장시키며, 세상과 연결되어 타인을 위한 가치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지역사회와 연계한 SSI 교육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사례는 ‘SSI-COMM(Socioscientific Issues with Community)’이다. SSI-COMM은 중학교 1학년 자유학년제 프로그램으로, 8주간 주 1회 2시간씩 운영되었다. 예를 들어, 반려동물의 무책임한 유기 문제를 다룬 ‘유기동물 보호대!’ 프로그램( 참조)에서 학생들은 교실에서 동물의 생태나 구조에 대해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 내 동물병원과 유기동물 보호소 등을 방문하며 유기동물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 동물병원에서는 중성화 수술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을 듣고, 유기동물 보호소에서는 직접 유기된 동물들을 보며 유기동물 안락사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학교에서는 유기동물을 줄이기 위한 동물 의무 등록제에 대해 토의하고, 유기동물 보호를 위한 정책도 마련해 보았다. 또한, 학생들은 공원에 나가 지역 주민들과 유기동물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포스터를 제작해 학교, 동물병원, 지역 기관에 게시하였다.
학생들이 SSI-COMM을 통해 직접 학교 밖 관련 기관을 직접 방문하고 지역 전문가와 만나 소통해본 경험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실천 사이의 간격을 줄일 수 있다. 지역사회 문제를 통해 그들의 일상생활과 연결 짓는 활동들 속에서, 학업 성취가 낮은 학생이라도 자신들의 일상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참여할 수 있다. 학생들이 유기 동물을 보면서 느꼈던 안쓰러움, 인간의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한 인식은 이 학생들로 하여금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 학생들의 협력적 주도성 이끌어 내기:
ENACT 프로젝트
ENACT 프로젝트는 첨단 과학기술과 관련된 쟁점을 찾아 이를 해결하고 실천해봄으로써 사회적 책임감을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모둠별로 관심 있는 SSI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며, 일련의 단계를 통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와 같이, ENACT 프로젝트는 두 개의 사이클로 나뉜다. Cycle I(1-3단계)은 SSI에 대한 탐색을 통해 과학기술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Cycle II(4-5단계)는 쟁점 해결의 실행과 사회적 실천을 강조한다. 즉, 이해와 실천이 함께 수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ENACT 프로젝트는 5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 ‘쟁점 발견(E)’ 단계에서는 학생이 관심 있는 과학기술이 어떤 쟁점을 야기하고 있는지 전반적으로 살펴본다. 두 번째 단계인 ‘쟁점 탐색(N)’에서는 선택한 쟁점을 다양한 각도에서 탐구한다. 특히, 쟁점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를 나열하고 그들의 관계를 표시하는 이해관계자 지도를 작성하면서, 이들이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세 번째 ‘미래 상황 예측(A)’ 단계에서는 과학기술이 미래에 미칠 수 있는 영향과 잠재적인 위험을 검토하고, 다가올 미래를 예측해 본다. 네 번째 ‘과학·기술·공학적 쟁점 해결(C)’ 단계에서는 여러 과학적 탐구 방법이나 공학적 설계를 활용하여 쟁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실천(T)’ 단계에서는 앞서 도출한 해결 방안을 동료 및 지역사회와 공유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에 옮겨 본다.
는 ENACT 프로젝트를 운영했던 사례이다. 이 학생들은 외래 식물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의 관심과 우려가 높지 않다는 문제의식(E)으로부터 시작했다. 이들은 외래 식물 유입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을 탐색하면서 왜 이 문제가 해결되기가 쉽지 않은지 생각해보고(N), 미래의 생태환경에 미칠 영향도 다각도로 예측해 보았다(A). 이 학생들은 비전문가가 외래종과 국내종을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인공지능 기반 앱(Teachable Machine)을 활용하여 외래종과 유사한 국내종의 사진을 학습시키고, 이를 분류하는 모델을 만들었다(C). 외래 식물 유입의 심각성을 더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주변 친구들과 분류 모델을 공유하고 함께 외래 식물을 찾아보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리고 함께 찾은 사진을 활용하여 외래종 생태지도를 작성했다(T). 이들은 친구들의 작은 참여 경험이 외래 식물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참여와 실천’을 강조하는 SSI 교육
적극적인 변화 이끌어내다
수년간 SSI-COMM과 ENACT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참여와 실천’을 강조하는 SSI 교육이 학생들을 변화시키는 것을 관찰해 왔다. 학생들이 ‘유기동물 보호대!’에 참여하면서 그린 포스터([그림3])를 보면, 우리 모두의 인식과 태도가 변화해야 한다는 그들의 강력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NACT 프로젝트에서 학생들이 만든 외래종 분류 모델은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참여한 학생 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까지도 외래종 문제에 관심을 갖고 생태지도를 만드는데 함께 참여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SSI 교육은 학생 개개인의 변화를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작은 변화를 통해 주변 사람들의 참여와 실천까지도 이끌어내었다. 이것이 바로 ‘참여와 실천’을 강조하는 SSI 교육의 목표일 것이다.
이현주 교수는 서울 숭인중학교 과학교사를 거쳐,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과학기술관련 사회쟁점(SSI) 교육과 관련하여 SSI-COMM, ENACT 프로젝트 등 다양한 SSI 프로그램을 개발해왔으며, SSI 교육의 확산을 위해 교사연수도 운영해왔다. 저서 『SSI 교육이란 무엇인가』(박영스토리)를 비롯해, 수십 편의 SSI 교육관련 논문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