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의 뇌과학과 GL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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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뇌과학으로 보는 식욕의 진실
음식은 어떻게 우리 몸을 변화시키는가?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이다. 많은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라고 대답한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정말 큰 기쁨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기도 하지만, 요즘은 ‘먹는 즐거움’ 그 자체가 더 중요해졌다. 예전에는 그저 굶지 않기 위해 먹었다면, 이제는 ‘무엇을 먹을까?’, ‘어떤 게 더 맛있을까?’를 고민하고, 그 경험을 즐기는 시대가 되었다. 맛있는 음식에 푹 빠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행복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비밀이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지갑을 열게 하려는 치밀한 계획들이다. 우리가 사냥이나 채집을 하던 시대는 아득한 옛날이야기이다. 지금은 거대 기업들이나 식품 산업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우리 제품을 더 많이 사게 만들까?’를 연구한다. 이때 행동경제학이나 심리학 같은 학문이 동원된다. 사실 이런 일은 드물지 않다. 담배나 도박 같은 산업이 사람들의 약한 마음을 파고들어 이익을 얻고 중독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수많은 중독 중에서, ‘음식 중독’은 우리 일상에 가장 넓고 깊게 퍼져 있다.
‘음식 중독’을 연구하는 이유
필자는 대학 병원에서 오랫동안 의사로 일했다. (주로 당뇨병이나 호르몬 문제를 다루는 내분비내과였다.) 그곳에서 잘못된 식습관 때문에 병을 얻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환자들을 수없이 만났다. 당뇨병이나 심근경색(심장마비)으로 중환자실에 실려 와 겨우 목숨을 건진 환자분들조차, 병실에서 몰래 간식을 드시다가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몸에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전형적인 ‘중독’ 증상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당뇨병, 고혈압, 심장병 같은 무서운 병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먼저 ‘음식 중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메커니즘)부터 알아내야 한다는 것을. 결국 2015년에 병원 진료를 그만두고, 이 문제에만 집중하는 연구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의 연구를 통해, 이 ‘음식 중독의 덫’이 우리 사회와 삶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지 절감하게 되었다.
뇌과학자들의 오래된 고민…
우리는 왜 배고프지 않아도 먹을까?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동물(그리고 인간)은 도대체 왜 저런 행동을 할까?’에 대한 과거의 이론들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물은 생존(예: 밥 먹기)하고 번식(예: 짝짓기)하기 위해 행동하도록 진화했다. 이런 복잡한 행동을 조절하기 위해 우리 뇌(마음)에는 여러 가지 ‘심리 프로그램’이 깔려 있다. 학자들은 이 프로그램이 대체 뭘까 궁금해했다.
☞ 클라크 헐
“우리는 ‘욕구’를 줄이기 위해 행동한다!”
배가 고프다(욕구 발생) → 밥을 먹는다(행동) → 배가 부르다(욕구 감소). 아주 간단하다.
☞ 에이브러햄 매슬로우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움직인다!” *
☞ 볼프람 슐츠
“행동은 ‘보상’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 건, 그 끝에 달콤한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는 ‘욕망(간절히 원함)’과 ‘쾌락(기분 좋음)’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 켄트베리지
‘원함(Wanting)’과 ‘좋아함(Liking)’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함 (Wanting / 욕구)은 “아, 저 케이크 먹고 싶다!”처럼 보상을 얻도록 우리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동기(추진력)이다. 좋아함 (Liking / 호감)은 케이크를 한 입 먹었을 때 “아, 맛있다! 행복해!”라고 느끼는 실제 즐거움이다.

이런 이론들을 바탕으로 필자가 정리해 보면, 아래 형태로 필요, 욕구, 쾌락, 효용으로 행동의 원인과 결과를 그려볼 수 있었다 (2024 BioEssays).
모든 동물들은 먹이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경쟁하며 진화적 자연 선택된 돌연변이들만 남게 되었다. 결국 이런 자연 선택 과정에서, 먹이에 대한 욕망을 극대화하는 돌연변이 유전형들이 점점 축적되어 왔다. 이런 음식에 대한 욕망은 우리를 생존하게 만든 유익한 건강한 욕망이다.
먹는 행복, 사실은 만들어진 욕망이다
사람들은 “먹는 행복을 빼앗지 말라”고 말한다. 식욕을 참는 것이 곧 불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뇌가 만들어낸 자기합리화이자 변명일 뿐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먹는 행복’은 대부분 건강하게 필요한 진짜 행복이 아니다. 이윤에 굶주린 자본주의 산업이 만들어낸 것이다. 식품 산업은 우리가 더 많이 소비해야 이익을 얻는다. 그래서 더 강한 쾌락을 제공하며 우리의 욕구와 선호도를 조작하고, 결국 중독을 조장한다. 비만과 음식 중독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들은 오로지 개인의 자유 의지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중독 산업과 뇌과학자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투쟁이 있었다. 아편, 코카인, 담배 산업은 중독이 ‘개인의 선택’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것이 조작된 욕망임을 과학과 논리로 싸워왔다. 그 결과 사회는 합의된 규제를 만들어 더 건강하게 진화했다. 우리는 담배나 아편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이렇게 ‘비본질적이고 오염된 쾌락’은 필요하지 않다. 이런 만들어진 필요와 행복에서 해방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의 원천에 우리의 시간과 관심을 집중할 수 있다. 나의 일상적 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인식하고 몸을 병들게 하는 욕망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개인과 사회가 건강해지는 첫걸음이다.
‘배부름’을 조종하는 기적의 호르몬,
GLP-1
요즘 효과가 좋은 식욕 억제제는 삭센다, 위고비, 젭바운드 같은 약들이다. 이것들은 ‘GLP-1’라는 호르몬과 비슷하게 작동하는 약이다. 이런 GLP-1 약이 나오기 전, 옛날에 쓰이던 약들은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방식이었다. 이 구형 약들은 교감신경을 억지로 흥분시켰기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잠이 안 오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 하지만 GLP-1 약은 다르다. 우리 몸에 원래 있는 호르몬을 따라 한 것이라 부작용이 적고 효과는 훨씬 강력하다. GLP-1은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뇌에 “이제 배부르다”는 포만감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 약들은 바로 이 GLP-1과 거의 똑같이 만들었다. 그래서 이 약을 투여하면, 우리 뇌는 (실제로는 적게 먹었어도) 계속 “배부르다”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이 약의 가장 중요한 치료 원리(기전)이다.
단순히 한 사람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사회 전체의 비만율(유병율)을 바꾸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현대화와 식습관 변화로 비만 인구가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그런데 위고비 같은 GLP-1 약이 나온 이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계속 오르기만 하던 비만율이 꺾여서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것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치료하고 있는 셈이다. 이 약들은 단순히 살만 빼는 것이 아니었다. 원래 비만,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같은 병들의 최종 치료 목표는 심장병이나 뇌졸중(심뇌혈관질환)을 막는 것이다. 2023년, 이 약이 심뇌혈관질환과 그로 인한 사망률을 20%나 낮추는 ‘생명 연장’ 효과가 마침내 증명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체중과 상관없어 보이는 효과들이었다. 술, 담배, 마약, 도박 같은 ‘중독’ 행동이 줄어들고, 강박증도 나아진다는 보고가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같은 뇌 질환(신경퇴행성 질환)의 진행도 늦춘다는 보고가 있다.
‘배부름’의 비밀을 밝힌 2024년 사이언스 논문
필자는 지난 10년간 GLP-1 약제의 기전을 연구해왔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연구는 2024년 Science지에 게재한 논문이다. 이 연구는 GLP-1 비만 치료제가 음식을 인지하는 것(섭취 전)만으로도 배부름을 유발하며, 뇌의 어느 부위, 어느 세포가 이 효과를 내는지 규명한 것이다. 연구진은 먼저 사람에게 GLP-1 약을 주사했을 때, 음식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배부름이 높아짐을 입증했다. 뇌조직 실험에서 GLP-1 수용체(GLP-1R)가 많은 곳을 찾았고, 사람과 쥐 모두에게서 ‘등쪽 안쪽 시상하부 신경핵(DMH)’이 핵심 부위임을 발견했다. 이후 쥐 실험에서 광유전학(Optogenetics)으로 이 DMH 신경을 활성화하자 쥐는 즉각 식사를 중단했다. 반대로 억제하자 식사 시간이 길어졌다. 또한 칼슘 이미징(Calcium imaging)을 통해 이 신경이 음식을 인지할 때부터 활성화되며, GLP-1 약물이 이 활성을 더욱 민감하게 만듦을 확인했다. 나아가 연구진은 이 DMH 신경이 섭취 전과 섭취 중에 활성화되는 두 집단으로 나뉘며, 배고픔 신경(ARC AgRP)과도 긴밀히 상호작용함을 밝혔다.
뇌과학, 기초과학, 응용과학 다양한 커리어패스
필자는 이런 중독의 신경과학 기전이, 대사질환을 유발하는 뇌인지과학적 기전을 연구하기 위해, 연구실의 연구 범위와 연구 방식을 기획하였다( ). 뇌과학 기전의 “진리 탐구”를 기반으로, 음식 중독, 비만, 대사질환, 심뇌혈관질환에 시달리는 인간을 돕는 “인류 구원” 응용적 가치를 추구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사람을 돕는 신약 개발의 응용 마지막 단계는 하지 않고, 이 중간 중개연구적 단계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여러분들도 이런 다양한 기초과학, 응용과학 스펙트럼 중에서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커리어패스를 찾아 도전한다면 행복하면서도 보람있는 과학자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최형진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북대병원 내분비내과 임상교수로 환자를 진료하다, 2015년부터는 서울대학교 해부학교실에서 기초의학연구에 집중하고 있으며, 2025년부터는 뇌인지과학과 소속으로 과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욕망의 뇌과학 주제를 탐구하며 그 중에서도, 식욕과 식욕억제 치료방법 개발연구를 도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