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담수 감소, 기후 온난화의 새로운 위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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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 대책 마련, 어느 때보다 절실
흑해는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지중해와 연결된 바다다. 하지만, 약 1만년 전, 10만 년 동안 이어졌던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로 접어들었때까지 흑해는 지중해와 완전히 단절된 거대한 담수호였다. 당시에는 여전히 대륙의 빙상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어 해수면이 낮았기 때문이다. 물은 생존의 필수 요소였기에, 인류의 조상들은 담수호였던 흑해 주변에 정착해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간빙기가 진행되면서 육지의 얼음은 점차 녹아내렸고, 해수면은 빠른 속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결국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지중해의 바닷물이 흑해로 유입되었고,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폭포처럼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그 결과 흑해 연안에 살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매일 1km씩 더 높은 곳으로 피신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전해지는 ‘대홍수 신화’는, 바로 이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로 전환되던 시기에 급격히 상승한 해수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 후 지구의 기후는 약간의 변동을 보였지만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다. 인류 문명은 그동안 눈부시게 발전하여, 해안가나 바다와 연결된 강가를 중심으로 거대한 도시를 세웠다. 마치 다시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점차 상승하는 해수면…
실상은 육지담수의 총량 줄어들고 있어
우리가 세운 도시와 문명은, 이제 1만여 년 전 흑해 연안에서 살던 조상들처럼 해수면 상승이라는 심각한 위험에 다시 노출되어 있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지난 수십 년 동안 해수면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음이 확실히 밝혀졌고, 그 원인 역시 규명되고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따뜻해진 바닷물의 열팽창과 극지방 빙하의 감소가 해수면 상승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극지의 얼음 변화를 관측하는 일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쉽지 않다.
그러나 2002년부터 운용된 인공위성 GRACE (Gravity Recovery and Climate Experiment)와 그 후속 위성들이 지구 중력의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하면서 그 가능성이 열렸다. 남극의 얼음이 녹으면 남극 주변의 중력이 감소하고, 이러한 중력 변화는 남극 상공을 지나는 위성의 궤도에도 미세한 영향을 준다. 연구자들은 위성 궤도의 미세한 변화를 분석해 남극과 그린란드의 얼음 손실량을 추정한다. 그 결과, 남극과 그린란드 등 육지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매년 약 2mm씩 상승하고 있으며, 그 속도는 해마다 점점 빨라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극지방의 얼음 감소와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한 바닷물의 팽창만으로는 현재 관측되는 해수면 상승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해수면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여러 논란 끝에, 토양수와 지하수를 포함한 육지 담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육지에서 빠져나간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해수면을 추가로 높이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기후학자들에게도 뜻밖의 결과였다. 기후가 따뜻해지면 대기 중 수증기량이 늘어나 강수량이 증가하고, 그 결과 육지의 물이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극의 경우, 서남극에서는 많은 얼음이 녹아 해수면 상승을 유발하지만, 동남극에서는 눈이 더 많이 내리며 해수면 상승을 일정 부분 상쇄하고 있음이 관측되었다. 이처럼 지역별로 상반된 변화가 나타나지만, 전 지구적으로는 육지 담수의 총량이 줄어드는 경향이 확인되고 있다.
‘전 지구적 육지 물 손실’ 현상
실제로 존재함이 증명되다
아직 육지 담수 감소의 명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ERA5-Land 기후 모델은 그 실마리를 제시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기후 온난화로 인해 육지에서의 증발산량이 증가하면서 결과적으로 담수량이 감소할 수 있다. 특히 ERA5-Land 모델이 예측한 육지 담수 감소 양상이 인공위성 중력 관측 결과와 일치하면서, 기후 모델 계산의 신뢰성이 간접적으로 입증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ERA5-Land 기후 모델은 2000년부터 2002년 사이에 약 1,614기가톤(10¹²kg)에 달하는 육지 담수가 사라졌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예측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는 올림픽 규격 수영장 약 6억 4천만 개를 채울 수 있는 엄청난 양으로, 전 세계 해수면을 단 3년 만에 약 5mm나 상승시킬 수 있는 규모다. 이런 충격적인 일이 정말로 일어났을까? 만약 이 현상이 2003년 이후에 발생했다면, 인공위성 중력 관측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ERA5-Land 모델이 예측한 시기는 인공위성 중력 관측이 시작되기 전이라, 관측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비현실적인 예측은 한동안 기후 모델의 계산 오류로 간주되어 왔다. 더구나 2002년, 월드컵이 열리던 바로 그 시기에 전 지구적인 가뭄이 3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체감’한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2002년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예측된 전지구적 담수 감소 현상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있었다. 비록 토양층이나 대수층에 존재하는 물은 눈에 보이지 않아 직접 관측하기 어렵지만, 대신 해수면 변동과 지구 자전축 이동을 이용하면 이를 검증할 수 있다. 육지의 물이 줄어들면, 그만큼의 물이 공기나 바다로 이동하게 된다. 증발산을 통해 대기 중으로 이동한 수증기는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비나 눈으로 지표면에 떨어지므로, 결국 육지에서 감소한 물은 대부분 바다로 흘러 들어가 해수면을 상승시켰을 것이다.
다행히 해수면 변화는 1993년 이후 인공위성 고도계를 통해 정밀하게 관측되고 있다. 따라서 2000~2002년의 육지 담수 감소가 실제로 해수면 상승을 초래했다면, 그 신호가 위성 자료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해수면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극지방 얼음의 변화와 바닷물의 열팽창 효과를 최대한 보정하고, 육지 담수 변화에 의한 신호만을 남겨두면(그림1의 회색선), 기후 모델이 예측한 육지 담수 감소로 인한 해수면 상승 추정치(그림1의 파란-빨간선)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육지의 물이 감소하고 해수면이 상승하게 되면, 회전하는 지구위에서 재배치되는 (즉 육지에서 바다로 이동하는) 물의 각운동량이 변하게 된다. 이때, 지구 전체 시스템의 각 운동량은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지구 자전축이 새로운 위치로 이동하게 된다. 기후 모델이 계산한 육지 담수 감소와 이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지구 자전축은 동경 90도 방향으로 약 58cm 이동했어야 한다(그림1의 파란색 화살표). 놀랍게도, 실제 자전축 이동을 관측한 결과(그림1의 회색 화살표) 역시 이 예측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해수면 상승과 자전축 이동이라는 두 독립적인 관측을 통해, 2000~2002년의 ‘전 지구적 육지 물 손실’ 현상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기후온난화로 반복되는 물 부족 현상
예측하고 완화하기 위한 노력 필요
그렇다면 왜 수많은 기후학자와 수문학자들은 25년 전 일어났던 전 지구적 수자원 부족 현상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그림1 의 지도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물의 감소량을 나타낸다.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이 약 100mm 정도이며, 그보다 작은 감소가 육지 전역에 고르게 분포한다. 즉, 규모는 전 지구적이었지만, 지역별로 보면 감소량이 미미해 현장에서 체감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반대로, 해수면을 5mm 상승시키고 자전축을 60cm 이동시킬 만큼의 심각한 가뭄이 유럽 한 지역에서만 발생했다면, 우리는 모두 그때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짧은 기간에 발생한 이 육지 담수 감소의 원인을 밝혀내는 일이다. 또한, 2000~2002년의 현상이 단 한 번의 특이한 사건이었는지, 아니면 20세기 동안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온 것인지 규명해야 한다. 나아가, 앞으로 언제 이런 현상이 다시 찾아올지를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다. 2025년 여름, 우리나라 강릉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심각한 가뭄이 보고되었다. 혹시 우리는 지금, 25년 전과 비슷한 전 지구적 물 부족 현상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기후 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 1만년 전의 흑해 연안처럼, 우리의 도시들이 위험에 놓였다. 극지방의 얼음뿐 아니라, 토양수와 지하수의 감소까지 해수면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 해안 도시들은 침수되고 육지의 식수가 부족해지는 역설적인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 기후 변화를 완화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서기원 교수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세 차례 남극 탐사를 수행했다. 2012년부터는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에서 예비 교사들과 함께 지구과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우주측지학 분야 전문가로서, 인공위성 중력, 자전축 변화, 지각 변동 등을 주제로 다수의 연구 논문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