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전기, 그리고 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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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불, 원자력
과연, 우리 인간에게 양날의 검인가
그리스 신화에서는 인류에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신화에 의하면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 불을 가져오게 되어서 인류는 문명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되고 신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인간들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은유가 있기 때문인지 과거의 인류문명을 표현할 때는 불과 관련된 상징을 많이 사용한다. 여기서 불은 사실상 에너지를 의미하며, 이는 문명의 근본이 에너지임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현재의 문명은 불 기반에서 전기 기반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류 문명사에서 전기가 활발하게 이용되기 시작한 역사는 이제 100년을 갓 넘은 정도의 일인 것을 감안하면 짧은 시간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1879년, 에디슨 백열전구의 불을 밝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발전소는 19세기 말엽에 최초로 지어졌다. 당시의 발전소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재미있게도 전구의 발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조명은 대부분 가스등이었는데, 여러 가지 안전 문제와 불편함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토마스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개발하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19세기 말엽에만 하여도 전기가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구의 보급을 위해 전기의 보급이 먼저 필요하였다. 즉, 전구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은 전구가 가스등을 대체할 수 있게끔 전구의 수요가 많은 도심에 발전소를 건설하였다. 당시에는 전기가 조명에 활용되는 정도였지만, 현재에는 대부분의 물건들이 전기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전기는 석탄, 기름, 천연가스 등을 태워서 나오는 열을 이용해서 생산하는 방식, 그리고 우라늄 안에 있는 핵에너지를 이용해서 생산하는 방식에 의해서 대부분 생산되고 있다. 화석연료는 수억 년에 걸쳐서 식물과 동물에 축적된 태양에너지가 농축되어 있는 자원이다. 우라늄도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태양과 같은 별 내부에서 핵융합을 통해 핵에너지가 농축되면서 생성되었고 그 후에 어떤 경로를 통해 지구가 생성되는 초기에 유입된 자원이다. 최근에 주목받는 신재생에너지인 풍력이나 태양광 등은 화석연료나 우라늄과 달리 농축되지 않은 에너지를 사용하여 발전하는 방식이다. 농축이 되어 있을수록 분명 자원에 포함되어 있는 에너지의 밀도가 높고 따라서 경제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쉽다.
우라늄을 이용한 원자력 발전이나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은 에너지 밀도가 높기 때문에 대량으로 전기를 한정된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인류문명과 같이 대량생산에 의한 경제 체제 하에서는 적합한 발전방식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난 세기 동안 대부분의 발전은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의존하였다. 신재생에너지는 기존 발전 방식 대비 에너지 농축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동일한 양의 발전을 위해서는 넓은 지역이 필요하게 되고 따라서 경제성을 가지는 것이 현재로는 힘들다.
또한 화석연료 발전소나 원자력 발전소는 수요에 따라서 발전량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풍력이나 태양광은 수요와 상관없이 주변환경에 의존하여 발전하기 때문에 생산된 전기를 저장하였다가 필요시 공급할 수 있는 설비가 추가로 필요하다. 그러나 화석연료나 원자력 발전은 경제성이 높은 만큼 전기를 생산하고서 남는 부산물에 의한 효과가 부정적이고 장기적이다. 화석연료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키거나 공기를 오염시킬 수 있는 부산물이 나오며, 우라늄은 장기적으로 인체에 해를 미칠 수 있는 방사능 폐기물이 부산물로 나온다.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방식은 비교적 과학과 기술을 자세히 모르더라도 이해하기 쉽게 느껴지는 이유는 인류의 문명과 함께 해 온 불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가스레인지의 불로 주전자의 물을 끓이고 그 때 나오는 증기로 바람개비를 돌게 하는 것이 기본적인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방식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화석연료가 산소와 결합하면서 화학에너지가 열로 바뀌며(가스레인지의 불), 그 열을 이용하여 고압의 증기를 생산하고(주전자 속의 물), 그것으로 터빈(바람개비)과 거기에 연결된 발전기를 돌리면 전기가 생산된다. 반면 원자력 발전은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현상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고 선뜻 다가가기가 힘들다.
우라늄의 핵분열 반응시, 방사능 물질 방출
원자력 발전은 우라늄 안에 잠재되어 있는 핵에너지를 산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중성자를 이용하여 열에너지로 바꾼다. 열에너지가 생산되면 이를 이용해 물을 끓이고 고압의 증기가 생산되면 터빈을 돌리는 방식은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방식과 동일하다. 따라서 원자력 발전이 화석연료 발전에 비해서 다른 부분은 핵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꾸는 그 과정에만 있다. 핵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우라늄의 핵분열 반응을 이용하고 있다. 핵분열 반응은 문자 그대로 우라늄 원자를 중성자를 이용하여 두 개 이상의 작은 원자들로 쪼개는 것이다. 즉,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핵연료인 우라늄은 상당히 안정한 원자이지만 중성자를 이용한 핵분열 반응을 통해서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가진 원자들로 바뀌게 되고, 이 바뀐 원자들은 불안정하여 방사선을 방출하는 방사능 물질이 된다.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에 사용되는 산소는 공기 중에 많지만, 원자력 발전에서 산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중성자는 자연계에서 우라늄보다 더 구하기 힘들다. 다행스럽게도 우라늄이 핵분열 반응을 통해서 핵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중성자는 두 개 이상 만들어진다. 즉, 중성자 하나를 소모해서 핵분열 반응이 진행되더라도 두 개 이상의 중성자가 새롭게 생산되기 때문에, 원자로에 최초의 중성자를 제공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원자로에서 스스로 중성자를 만들어내서 핵분열 반응을 유지하여 자체적으로 핵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변환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약 30% 정도의 전기가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2035년까지도 이 비율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동 중인 23개의 원자력 발전소는 고리, 월성, 울진, 영광에 분포해 있으며, 5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추가 건설 중이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기술은 국산화율이 거의 100%에 육박하며 다른 에너지기술에 비해서 국가적 경쟁력이 매우 높다. 우리나라는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세계 6위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최근에는 오히려 원자력 발전소 건설기술의 원조인 미국에도 역수출하고 화석연료가 풍부한 아랍에미레이트와 같은 나라에도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해주고 있다. 이는 그 동안 화석연료와 같은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이 원자력 밖에 없었기 때문이며 이를 위해 우수한 인력의 헌신과 꾸준한 정부차원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그에 따른 방사능 물질의 누출로 인한 수산물 오염, 그리고 국내 원자력 산업계의 비리 등에 의해서 최근 원자력 발전의 여러 가지 부정적인 측면이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었다. 이런 이유로 원자력보다 깨끗한 에너지에 대한 대안과 필요성이 많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가 제조업 위주인 이상 원자력 발전의 대안은 신재생에너지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독일과 일본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자력 발전소를 사용하지 않게 되면, 화석연료 기반 발전소를 더 많이 지어서 운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이유는 전체 발전량의 30% 정도가 원자력 발전소가 생산한다고 하여서 각 가정에 공급되고 있는 전기의 30%가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된 것과 동등한 의미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가 원자력 발전 대체할 수는 없어
가정에서 쓰는 전기는 날마다 사용량이 일정하지 않으며 이런 전기 수요를 첨두부하라고 한다. 반면에 산업용 전기는 1년 365일 대부분 일정한 비중으로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전기 수요를 기저부하라고 한다. 원자력 발전소와 화석연료 발전소 중 석탄화력 발전소는 현재 이 산업용 전기 수요인 기저부하를 대부분 담당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신재생에너지는 발전량이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발전량이 일정하게 조정되어야 하는 기저부하로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신재생에너지가 원자력 발전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또한 가정에서 전기 사용량이 줄어든다고 하여서 원자력 발전량의 수요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산업이 제조업 중심에서 다른 종류의 산업으로 이동할 때 원자력 발전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게 되며 이 때 원자력과 화석연료 이외의 다른 에너지가 대안으로 현실성을 가질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핵연료의 우라늄은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우라늄인 우라늄-238보다 원자핵 내부에 중성자의 개수가 세 개 적은 우라늄-235만 따로 농축한 우라늄을 사용한다. 그 이유는 우라늄-235의 원자핵이 중성자와 더 잘 반응하여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며 통상적으로 핵연료에는 우라늄-235가 3% 가량으로 농축되어 있다. 실제로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 중에서 사실 방사선을 내는 방사능 물질은 전체 양의 3% 정도이다. 왜냐하면 핵연료에 농축되어 있는 연료물질이 3%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이 물질의 양만큼만 방사능 물질로 바뀌기 때문이다.
핵연료를 구성하는 나머지 97%의 필요 없는 물질이 원자로에 들어가는 이유는 원자력 발전소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97%의 필요 없는 물질을 제거하는 수고 즉 우라늄-235를 고농축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3% 정도만 농축된 우라늄-235가 필요하며 그 이유는 물이 있기 때문이다. 물은 핵분열 반응에서 생성된 고속으로 움직이는 중성자를 감속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라늄-235는 고속으로 움직이는 중성자에 비해서 느리게 움직이는 중성자와 핵분열 반응을 더 잘 일으킨다. 따라서 핵폭탄과 달리 원자력 발전소는 우라늄-235를 3%만 농축하여도 지속적으로 열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만약 핵연료가 100% 우라늄-235라면 그것은 핵폭탄 물질과 동일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무엇보다 사용 후 핵연료 관리가 큰 문제 대두
사용 후 핵연료에서 문제가 되는 3%의 방사능 물질만 분리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방사능 폐기물의 양이 많이 줄어든다. 하지만 그동안 사용 후 핵연료에서 이런 물질을 분리하는 행위는 우리나라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의해서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핵연료에서 방사능 물질을 분리해내는 기존에 알려진 방법이 자칫 잘못 이용되면 핵폭탄 물질인 플루토늄을 순수하게 분리하는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에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면서 기존의 방법과 다른 ‘파이로프로세싱’ 방법에 대한 연구개발이 가능해졌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방사능 폐기물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개발이 가능해졌다.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된 1970년대부터 축적된 사용후 핵연료의 양은 14,000톤 정도이며 매년 700톤의 사용후 핵연료가 23개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배출되고 있다. 그 양이 매우 많아 보이지만, 사용후 핵연료는 물보다 비중이 약 10배 높기 때문에 14,000 톤의 사용후 핵연료를 빽빽하게 쌓으면 높이 1m에 500여평의 넓이를 가지는 공간을 차지하는 양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30년간 사용한 전기의 30%를 생산하고서 나온 폐기물의 양으로 생각하면 이 부피는 매우 작다. 다만 최소 수 백년 이상 안전하게 이 폐기물을 관리해야 후손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사용 후 핵연료 관리가 문제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를 통해서 앞으로 사용 후 핵연료를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고 처분해 나갈지 의견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원자력 발전은 인류문명사 관점에서 보면 기술의 역사가 매우 짧은 아직 어린 기술이다. 비록 현재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인류가 불과 친해지기 위해 사용한 시간만큼 만약 원자력 기술을 개발한다면 머나먼 미래에는 불보다 더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기술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또한 원자력 기술은 단순히 인류의 새로운 불로써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질병을 진단하고 싸우기 위한 방사선을 이용한 의료도구(CT, MRI, PET 등)의 개발, 인간이 머나먼 우주를 탐사하기 위한 추진기술, 필요한 자원을 핵반응을 통해서 마치 연금술과 같이 생산하는 기술 등 무궁무진한 응용방식이 존재하는 기술이다. 이런 재미있는 과학기술을 공부하여 우리나라 더 나아가서 인류의 프로메테우스가 될 수 있는 학생이 지금 어딘가에서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글 | 이정익 교수(한국과학기술원)
이정익 교수는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를 나와 메사추세츠 공과대(MIT)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13대 산업엔진 추진단, 원자력학회 산하 해양-원자력 공동위원회 및 열수력-안전 미래전략 특별위원회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공학이란 무엇인가> <원자력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