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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 과학수업 노하우 탐구 역량 중심의 생명과학수업? 아직은 시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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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는’ 것보다 ‘이해하는’
뿌리가 단단한 과학수업 진행하기!


학기말이나 학년말에 수업을 돌아보면 “고민과 공상의 시간이 긴 것에 비해, 실천은 적고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매번 듭니다. “고민과 시도의 경험을 벼리워 더 단단하고 예리하게 해야 할텐데….”라는 아쉬움을 느낍니다. 이 글을 읽는 선생님들에게 공감을 얻고 영감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감히 바라며 저의 수업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제가 수업과 평가의 고수라서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도 성장해가고 있는 한 명의 교사가 동료 교사들과 경험을 나누는 기회로 이 글을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글로 옮긴 제 생각이나 행동들은 주관적인 경험에 기초한 것이니 맥락을 염두에 두고 읽고 판단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교실계, 상호작용과 주도적 배움


필자에 있어 수업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상호작용’ 이다. 교실에서의 경험이 쌓이며 적절한 상호작용이 학생을 배움의 주체로 세워주고, 주도적 배움의 길로 이끄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1학년 통합과학에는 계(System)에 대한 단원이 있다. 계는 이를 이루는 구성요소에 더해 구성요소 간의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교실계에서의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반 전체가 참여하는 토론활동이었다. 동물실험에 대한 찬반토론을 토론배틀이라는 형식으로 운영했다.


토론배틀을 하면서 학생들이 졸거나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활기차게 토론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평소 아이들이 과학 지식을 대하는 태도나 소극적인 수업 참여 자세를 고려할 때, 과연 반 전체 토론이 잘 될까하고 걱정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첫 회 토론에서는 대체로 조심스럽고 조용한 편이었다. 두 번째 토론 이후에서는 학급 전체적으로 토론이 활발해졌다. 토론배틀 이전에 여러 차시 동물윤리와 동물실험에 대한 지식을 학습하고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지만,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면 찬반토론을 이어가는 것이 어렵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토론을 부담스러워하는 편으로, 나의 발언내용에 대한 확신도 부족하고 내 발언을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판단할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 토론배틀의 진행

* 자신의 의견과 상관없이 학생에게 찬성측과 반대측으로 역할을 부여한다.

* 찬성측과 반대측은 각각 한 줄로 서서 상대측을 마주하고 선다.

* 주어진 주제에 대해 서로 토론한다.

* (토론 1회) 1회가 끝나면 찬성측과 반대측은 각각 오른쪽으로 두 칸씩 이동한다.

* 자리 이동 후 마주하는 새로운 상대측 학생과 토론을 한다.

* 3~4회의 토론을 한 뒤 후속활동을 이어간다.


학생들 몇 명을 상대로 가벼운 인터뷰를 해봤는데, 학생들은 첫 회째 토론에서 어떻게 토론해야 할지, 어떤 내용을 발언해야 할지 학습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두 번째 상대와는 활발하게 토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내 말을 듣는 친구는 한 명 뿐이니까 더 자신이 붙었던 것이다.


★ 시험방식에 대한 학생들의 주요 피드백


학생들은 어떻게 토론활동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을까? 교사가 일일이 안내하거나 개입하지 않아도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주체적인 토론자로 전체 토론을 활발하게 이끌었다. 수행평가가 아니었는데.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상호작용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른 학생들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지식과의 상호작용에서 학생 개인은 주체임을 경험한다. 동물실험에 대한 찬반 토론이라는 주어진 맥락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잠깐이지만 능동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타인의 견해를 통해 배우는 학습을 경험했을 거라 추측한다.


토론배틀은 흔히 ‘판을 깔아준다’고 표현하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맥락과 구조’가 자기주도적 학습자로 학생을 성장시키기 위해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된 대표적인 계기였다. 그리고 과학 교과 교육활동은 ‘개념과 원리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스스로 탐구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장’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중간·기말고사는 모두 서술형 100%…
‘외우는’ 것보다 ‘이해하는’ 학습이 되어야


현재의 생명과학I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평가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3년째 생명과학I 수업에서 중간·기말고사를 모두 서술형 100%로 보고 있다. 서술형 문항이라고 해서 다루는 지식이나 제시되는 자료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계속 이러한 평가방식을 유지하는 것은 같은 자료라도 학생들에게 묻는 방식이 달라질 뿐인데, 학생들이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자세나 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받아보니 전에는 이해가 안되도 무조건 외우고 문제집의 문제를 풀어보는 방식으로 학생들이 공부했다면 이제는 이해하려고 애쓰는 시간이 더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러한 태도 변화는 수업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서술형 100%로 정기고사를 본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채점의 부담이다. 선택형으로 OMR카드를 읽는 것과 비교하면 당연히 더 많은 시간이 들지만, 이 평가방식으로 얻는 편익과 비교하면 값싼 비용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고되지는 않다. 과학이나 수학은 정답이 비교적 분명하기 때문에 채점기준을 세우는 것을 포함하여 채점하는 것이 어문인문사회 계열의 과목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 질문은 문항제작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채점에 비하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좁은 시험범위 내에서 평가할 내용이 뻔하기 때문에 문제상황의 맥락을 차별해서 구성하는 것이 저에게는 까다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필자가 묻는 것을 학생들이 대답하도록 적절한 질문을 하는 것이 상당히 신경쓰였다. 예를 들어, ‘설명하시오’와 같은 지시어에 대해서조차 평소에 학생들과 연습한다는 느낌으로 익숙해질 필요를 느낀다. 설명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 깊이까지 설명해야 하는 것인지 학생들이 연습할 시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자연스럽게 수업도 변해야 했다.


평가 대비를 위한 수업 구성,
학생 이해 위한 연습 기회를 제공해야


평가할 내용은 주로 생명과학 관련 지식이나 탐구를 위한 기능이다. 이전에는 평가할 내용에 초점을 두고 수업을 구성했다면, 평가 방식을 서술형 100%로 바꾸면서 수업의 구성이 달라졌다. 앞으로도 계속 변화를 겪겠지만, 지금 자리잡은 구조는 ‘강의(또는 활동)-모둠 과제 수행-수행평가-정기고사’의 흐름이다.


지식의 전달을 위한 수업 방식은 주로 강의를 택한다. 많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효율적이라고 기대되는 방식이지만, 필자의 경험상 한 번의 강의로 학생이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하는 경우는 상당히 적다. 음식으로 치자면 이제 맛 본 정도라 할 수 있다. 꼭꼭 씹어서 삼키고 소화시켜 흡수하는 배움 또는 연습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모둠 과제 수행은 강의 내용 중 핵심적인 사항과 관련한 문항을 제공하고 이를 모둠원들이 함께 해결하며 상호작용을 하며 깊이있는 이해를 갖기 위함이다. 수행평가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에 대해서 익숙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전체를 대상으로 해법이나 답에 대해 설명해주는 시간–흔히 말하는 문제풀이 시간–은 없다. 모둠 과제 수행 중에는 모둠별로 교사에게 질문하면 그 모둠에게만 주로 설명해준다. 수업 후에는 추가적으로 모둠 과제에 대한 모범답안을 구글클래스룸을 통해 제공한다.


물론 모든 모둠이 이상적으로 학습에 임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생명과학I을 듣는 학생들은 성취욕이 강한 편으로, 6~7 모둠 중에 한 모둠 정도가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이 경우는 모둠 순회지도를 하면서 교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또, 일부 모둠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시작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질문을 하지 않아도 말을 걸어주고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절반 정도의 모둠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편이다. 모둠 과제 수행–사실상 수행평가 대비–을 하면서 학생들과 교사는 서로에게 적응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과정에는 명시적인 피드백은 없지만 질문을 받아주거나 개입을 하면서 교사가 주는 실마리, 학생의 생각을 확인해주는 정도로 반응해주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피드백이 된다다. 교사는 개별 학생들과 모둠 과제를 매개로 대화를 나누면서 학생들의 이해 수준과 오개념 정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둠 과제 수행은 학생들에게나 교사에게나 중요한 형성평가의 기회로 역할한다.


모둠 과제를 수행하고 모범 답안을 제공하면서 바로 수행평가를 안내한다. 학생들은 수행평가를 대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고, 무엇을 공부하고 교사에게 무엇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 수행평가는 교과서와 학습지에 한해 오픈북으로 진행한다. 교과서의 내용을 이해해야지만 답을 쓸 수 있는 문제들이라는 것을 반 학기 정도면 학생들도 알게 된다. 공부하지 않은 오픈북은 오픈북이 아니라는 것을 본인들도 잘 알고 있다고 표현하고는 한다. 그럼에도 일부 학생은 수행평가 시간이 공부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한 번은 수행평가 범위가 교과서로 4쪽 분량이었는데, 수행평가가 진행되는 내내(대략 40분 정도) 어떻게든 답을 써 보려고 시험범위를 여러 번 정독하는 학생을 본 적도 있다. 한편으로는 안타깝지만,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시간 자체로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개념 원리부터 확실히!
탐구 역량 배양 위한 확장학습


서술형 100% 정기고사와 이를 대비하기 위한 수행평가, 수행평가를 대비하기 위한 모둠과제, 모둠과제에서 수행할 학습내용의 강의는 개념과 원리를 제대로 습득하기 위해 계획한 과정이다. 개념과 원리를 습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에 연결하고 적용하기 위해 ‘질문하고 답하기’를 한다.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확장학습’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자료 조사를 통한 탐구 활동’을 말한다. 먼저 학습 내용과 관련하여 질문을 설정하게 한다. 1년 동안 4∼5회 진행하는데, 따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2학년 1학기 초에는 예시질문을 주어 학생들이 예시 질문을 선택할 수 있다. 2학년 2학기 중반부터는 예시질문을 주지 않아서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게 강제한다.
확장학습에서 강조하는 것은 근거를 갖고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구성해보는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용하더라도 근거가 되는 자료를 명시하도록 강제했다. 근거가 되는 자료를 명시하고 그 내용을 요약하게 하면 단순하게 복사해서 붙이고 끝내는 경우가 덜하다. 1학기에는 모둠 과제로 부여해서 모둠원들은 함께 자료를 찾아 답을 구성하고, 다른 모둠에게 설명하는 기회를 준다. 앞에 나와 발표하지 않고 서로 다른 모둠의 구성원이 만나 서로의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을 택해서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책임지고 설명해야 한다.


이렇게 훈련받은 학생들이 선택하는 생명과학Ⅱ에서는 ‘심화탐구’라는 글쓰기 수행평가를 합니다. 조사한 내용을 가지고 제법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구성해낸다.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보자면 최근의 연구 동향을 포함한 연구 배경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이러한 훈련이 탐구 역량 배양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학습한 지식과 기능,
어떤 문제에도 대비하는 튼튼한 자산으로


‘서술형 100%로 지필평가를 보면 수능 대비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라는 의견을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에게 종종 듣는다. 이해와 탐구에 무게를 두는 수업도 하고, 수능 대비도 하기에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다. 필자는 ‘이해’를 해야 ‘수능 대비’도 할 수 있겠다 싶어 전자에 우선순위를 두는 수업과 평가를 선택했다. 학년 초에 학생들에게도 이 점을 충분히 설명한다. 우리가 수업 시간에 깊이 있게 이해하고 탐구하면서 습득한 지식과 기능은 우리들의 실력과 자산이 될 것이고,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튼튼한 토대가 될 거라고. 물론 생명과학I 수강 학생 모두가 수능 대비의 필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기도 하고 수능 대비가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따로 학습 플랜을 상담해주기는 했다. (그리고 수능 제도가 바뀌어서 내년부터는 이런 고민도 필요 없게 되었다.)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고, 이들에 대한 접근성 또한 확연히 달라졌다. 오히려 AI의 능력이 좋을수록 과학 교과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탐구 역량을 배양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필자는 그 핵심이 적은 양의 지식이라도 지식을 깊이있게 이해하고, 그것을 적용하여 지식과 생각을 확장해가는 경험이라 생각한다. 수업을 포함한 학교의 교육활동에서 이런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시도해온 것들과 경험을 정리했다.


김경태 교사는 신규 임용부터 지금까지 혁신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서울 과학교육의 든든한 마중물이다. 동료·선배 교사들과 함께 협력하며 수업, 교육과정 및 평가 전반에서 ‘학생 스스로 주도하는 배움’을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