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EDUCATION ISSUE

지식의 다리를 놓다 : 멘토와 멘티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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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한림원 청소년과학영재 사사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Book-smart’에서 ‘Street-smart’로…
책에서 배우고, 실험으로 증명하며, 실패로 성장하는 법


한글은 세계적으로 가장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영어의 표현에서 느껴지는 간결함과 직관성에 감탄하게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말에는 많이 알고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작 실전에서 써먹을 줄 모르는 사람을 뜻하는 ‘헛똑똑이’라고 한다. 영어에도 이와 같은 의미를 한 단어로 표현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Book-smart’이다. 책에서 얻은 지식은 많지만, 실제 문제 해결이나 인간관계 등 현실의 복잡한 상황에서는 적응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그 반대말은 무엇일까? 영어에서 ‘Street-smart’라는 단어로 쓰고 있다. 이는 거리(street)에서 익힌 지혜, 즉 현실 속 경험과 감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람을 의미한다. 단순히 지식의 양이 아니라, 상황 판단력·창의력·유연성을 포함한 실천적 지능을 뜻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단어의 대비가 오늘날 우리의 교육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Book-smart’를 길러내는데
집중하는 교육 시스템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대체로 ‘Book-smart’를 길러내는 데 집중되어 있다. 학생들은 책으로부터 정확한 지식을 배우고, 시험을 통해 그 암기와 이해 수준을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 지식을 현실의 문제에 어떻게 적용하거나 새로운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기를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다. 그 결과, 고등학교까지는 탁월한 성적을 거두고 대학에 진학하지만, 대학원 연구나 취업 후 직무 수행 단계에 이르면 ‘생각보다 실전 대응력이 부족한 인재’로 평가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물론 Book-smart한 기반이 먼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위에 경험과 통찰이 더해져야 비로소 Street-smart한, 진정한 창의형 인재가 완성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청소년과학영재 사사 프로그램은 매우 소중한 제도이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받는 교육을 넘어, 학생이 스스로 탐구하고 질문하며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바로 ‘Book-smart’한 학생이 ‘Street-smart’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적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다. 필자는 2018년부터 본 프로그램의 멘토로 참여하며 수년간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을 지도해 왔다. 프로그램은 약 5개월 동안 진행되며, 한 명의 대학교수와 한 명의 고등학생이 1:1로 매칭된다. 연구 주제의 선정부터 연구실 탐방, 실험 계획, 데이터 분석, 결과 도출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학생이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수행하도록 유도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학생의 태도와 적극성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교수의 지도 아래, 학생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내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는 학생은 확연히 다른 성장세를 보여준다. 필자가 지도했던 한 학생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다. 그는 처음에는 주제 설정조차 어려워했지만, 매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이메일로 보내고, 실험실에서의 짧은 관찰을 토대로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책에 있는 실험’을 단순히 따라 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검증해보는 작은 연구자로 변모했다.


결국 이 학생은 최종적으로 ‘최우수 멘티’로 선정되어, 노벨상 주간에 스웨덴을 방문해 당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를 얻었다. 이 경험은 그에게 단순한 ‘성과’가 아니라, ‘학문의 현장은 살아 있는 실험의 연속’이라는 깨달음을 남겼다. 무엇보다 그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직접 실험을 수행했다’는 결과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며 생각을 다듬었다’는 과정에 있었다. 실제 현실의 문제들은 교과서의 해답란에 존재하지 않는다. ‘정답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연구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학생이 진정으로 성장하려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질문을 만들어내고, 실패를 반복하며 새로운 길을 찾는 경험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연구(Research)’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Research’는 ‘Re(다시)’와 ‘Search(찾다)’의 결합어다. 즉, 연구란 ‘다시 찾는 행위’, 끊임없는 시도와 수정의 연속이다. plan A가 실패하면 plan B를 세우고, 그것이 실패하면 plan C, plan D로 이어진다. Book-smart한 사람은 첫 계획을 세우는 데에는 능하지만, 그 이후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 속에서 다시 길을 찾아내는 것은 street-smart한 사람의 몫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적 탐구의 정신은 현재의 교육 과정에서는 체계적으로 경험하기 어렵다. 결국 ‘기초 지식(Book-smart)’과 ‘경험적 통찰(Street-smart)’의 연결이야말로, 창의적 연구자와 혁신적 리더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Street-smart’로 성장하려는 꾸준한 노력 있어야


멘토링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어떤 분야를 선택해야 하나요?”, “앞으로 유망한 직업은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이다. 필자의 대답은 항상 같다. “유행을 쫓지 말고, 어릴 때부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했던 일을 떠올려보라.”


진정한 적성은 사회의 유행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반복적으로 몰입했던 경험 속에 숨어 있어 각자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영어 학문명들의 어원에서도 학문간 성향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학(mathematics), 물리학(physics), 경제학(economics)처럼 ‘–ics’로 끝나는 학문은 논리적 원리와 수식에 근거한 사고력 중심의 학문이다.


반면 생물학(biology), 지질학(geology), 인류학(anthropology) 등 ‘–ology’로 끝나는 학문은 다양한 사례와 경험적 관찰을 기반으로 지식을 축적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간단한 원리를 창의적으로 응용하는 데 강한 ics적 성향인지, 아니면 끈기 있게 수많은 사례를 이해하며 지식을 축적하는 데 강한 ology적 성향인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단순한 문·이과의 구분이 아니라, 학문적 성향을 기반으로 한 진로 설계의 출발점이다.


또한, 필자는 학생들에게 항상 이렇게 조언한다. “유행은 시들지만, 본질은 오래간다.” 이는 쉽게 예를 들면 주식시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인기 종목에 투자하면 단기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변동이 크고 불안정하다.


반대로, 당장은 주목받지 않지만 내실 있는 종목에 꾸준히 투자하면 장기적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진로 역시 그렇다. 현재 전성기인 분야가 몇 년 뒤 쇠퇴할 수도 있고, 지금은 비인기 분야라도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다.


필자 역시 30년 전 대학원 진학 당시 개인적인 적성은 맞지만, 당시에는 비주류로 평가받던 분야를 선택했다. 하지만 꾸준히 연구를 이어오며 지금은 대학 교수로서 해당 분야에서 새로운 학문적 흐름을 주도하는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결국 ‘지속성 있는 열정과 적성의 일치’가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Book-smart’에 머무르지 않고 ‘Street-smart’로 성장하려는 꾸준한 노력, 그것이 바로 시대를 이끌 인재의 조건이다.


책 속의 지식과 현실의 지혜가 만나는 지점


마지막으로, 본 청소년과학영재 사사 프로그램의 의의를 교수의 입장에서 돌아보고 싶다. 영어 단어 professor는 동사인 profess에 ‘–or’이 붙은 형태로, ‘profess하는 사람’, 즉 ‘어떤 것을 주장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profess의 사전적 의미는 ‘아직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다’이다. 얼핏 들으면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표현에는 깊은 함의가 담겨 있다. 즉, 아직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부단한 실험과 검증을 통해 그것을 새로운 사실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교수(professor)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반면 동양에서는 ‘교수’가 가르칠 교(敎), 내릴 수(授)로 구성되어 ‘가르침을 내리는 사람’을 뜻하는 것과 대비된다. 결국 서양의 professor는 ‘연구자’, 동양의 교수는 ‘교육자’의 정체성이 더 짙다.


그러나 이 두 개념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스승은 가르침과 탐구를 동시에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처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청소년과학영재 사사 프로그램은 교수와 학생이 ‘스승–제자’ 관계를 넘어, ‘연구자–탐구자’로서 서로 배움의 방향을 공유하며 Street-smart해질 수 있는 귀중한 장이 되었다. 지식을 전수하는 교육적 의미와 더불어, 교수로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학생에게 도전의 영감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멘토와 멘티 모두에게 성장의 계기를 마련한 소중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결국 교육의 완성은 책 속의 지식(Book-smart)과 현실의 지혜(Street-smart)가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본 프로그램은 이 두 세계를 잇는 가교이자, 미래 과학자가 ‘책에서 배우고, 실험으로 증명하며, 실패로 성장하는 법’을 체험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Book-smart로 시작해 Street-smart로 완성되는 교육.’ 이것이 바로 한림원 사사 프로그램이 지닌 가장 큰 가치이며 앞으로의 과학 인재 양성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방향이라 생각한다.


김성재 교수는 현재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나노유체역학을 기초에서부터 바이오, 에너지, 환경 분야에 적용하고 있다. 또한 서울대학교 소프트파운드리 연구소 소장과 에너지 이니셔티브 연구단 단장을 맡아 초융합적 에너지 연구를 수행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으며, 2018년부터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차세대회원으로 활동하며 매년 청소년과학영재 사사 프로그램에 멘토로서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