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3) 기획탐방 · 과학 탐구학습 우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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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 · 과학 탐구학습 우수 사례
과학탐구 출발점은 학생 호기심
스스로 묻고 직접 해보는 과학,
탐구로 배움을 설계하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바뀌면서, 과학교육의 무게중심도 ‘얼마나 많이 아는가’에서 ‘스스로 묻고 확인할 수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개념 기반 탐구와 학생 주도성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진도와 평가의 현실 속에서 탐구 수업을 실제로 구현하는 일은 여전히 많은 교사에게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이번 호에서는 그 과제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두 교사의 수업을 들여다본다.
과학교육에서 탐구가 강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묻고 확인하며 지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야말로 과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AI와 디지털 기술이 일상에 깊이 스며든 오늘날, 정답이 빠르게 검색될수록 무엇을 궁금해하고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를 아는 힘은 그 중요성을 더해간다.
탐구 수업은 흔히 실험과 혼동되지만, 실험은 탐구의 한 과정일 뿐 그 자체가 탐구는 아니다. 탐구의 출발점은 학생의 호기심이다.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가설을 세우며, 관찰과 실험으로 가설을 확인하고, 결과를 동료와 나누며 다시 묻는다. 그 과정에서 학생은 지식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된다. 여기 소개할 두 탐구 중심 수업 사례는 접근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학생이 직접 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왜 배울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탐구
신천초등학교 나희정 교사
나희정 교사의 수업은 교과서를 펴기 전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이걸 왜 배울까?” 새 단원을 시작할 때 그는 단원 목차를 펼쳐놓고 각 단원을 배우는 이유를 모둠별로 토론하게 한다. 학생들은 교사가 개입하지 않았는 데도 ‘지층과 화석’ 단원에서는 흔적을 수집해 지구의 과거를 알아보기 위해서, ‘빛의 성질’ 단원에서는 빛을 실생활에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결론을 낸다.
“빛의 반사, 굴절, 직진 같은 개념을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배우기보다, 이걸 왜 배우는지 의미를 먼저 짚고 나면 아이들이 훨씬 적극적으로 참여해요.”
배움의 이유를 학생이 스스로 세우고 나면, 그다음은 학생이 직접 묻고 탐구해본다. 교사의 역할은 그 과정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는 교과서의 차시별 실험을 매뉴얼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교과서 실험을 하기 전에, 먼저 질문을 던져요. 예를 들어 빛의 성질 단원이라면 ‘빛이 어떻게 나아가는가’를 묻는 거죠. 차시별로 분절해 수업하기 보다 하나의 흐름 안에서 탐구하도록요.”
실제로 그는 학생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빛의 직진을 관찰하게 하고, 과학실로 돌아와 물과 렌즈를 만난 빛의 변화를 실험하며 그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궁금증이 솟아난다. 실제로 어떤 모둠은 페트병 전구가 정말 효과가 있는지 어둠 상자에 조도 센서를 넣어 밝기를 측정했고, 어떤 모둠은 비눗방울을 만난 빛의 경로를 탐구했다. 교사가 주제를 제시한 것이 아니라, 모둠마다 학생들이 품은 호기심이 저마다 다른 탐구주제로 이어진다.
나희정 교사는 영재교육원에서 했던 심박수 센서를 활용한 수업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센서를 나눠 주니까 아이들이 ‘나도 재볼래 , 너도 재 봐’ 하면서 난리가 났어요. 교사가 지도하지 않아도 모둠 친구들끼리 심박수를 비교해 본 거죠. 그러다 한 모둠이 응원을 받으며 운동할 때와 혼자 운동할 때 심박수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겠다는 거예요. 친구들이 다 같이 응원해줄 때 측정하고, 혼자 운동할 때 또 측정하고, 두 번 반복 실험을 했더니 응원받을 때 심박수가 더 높게 유지되더라고요. 응원이 없을 때는 아이들이 힘을 덜 쓰다 보니 심박수가 금방 떨어지고요. 운동선수에게 왜 응원이 필요한지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낸 거죠.
실패도, 엉뚱함도 탐구가 된다
학생 중심의 탐구 수업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한다. 실험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기도 하고, 학생들이 황당해 보이는 주제를 들고 오기도 한다. 한 반에 한두 모둠은 꼭 실험 설계부터 어긋난다. 비교 조건을 빠뜨리거나 변수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식이다. 하지만 나희정 교사는 그것을 실패로 보지 않는다. 틀렸다고 말하는 대신, 결과를 바꾸거나 꾸미지 말고 그대로 발표하게 한다.
“실패하지 않는 실험만 하려면 교과서 단계대로 하면 돼요. 그런데 그러면 탐구가 분절적이고 기억에 남지 않아요. 온전히 내 탐구로 들어오지 않는 거죠.”
발표가 시작되면 학생들은 서로의 탐구를 검증한다. 질의응답 속에서 스스로 실수를 인정하기도 하고, 더 나은 설계를 제안하기도 한다. 그래서 평가도 한 모둠의 성공 여부가 아니라, 함께 묻고 정리하는 과정에 얼마나 참여했는지를 본다.
엉뚱한 주제라도 묵살하지 않는다. 학생의 생각을 살리되, 실제 실험이 가능한 형태로 다듬어주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햇빛을 모아 삼겹살이 구워지는지 확인하겠다는 아이디어에는 음식 대신 은박지와 검은 도화지를 활용해 적외선 온도계로 온도 변화를 측정하도록 방향을 틀었다.
텃밭 식물의 뿌리를 뽑아 뿌리의 양에 따라 생장이 어떻게 다른지 보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탐구로는 그럴듯했지만, 식물이 죽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할 가치가 있는 탐구인지 학생과 한참 대화를 이어갔고, 그날 수업은 그 주제를 접는 것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학생이 ‘뿌리를 탐구해야 하는 이유’ 열 가지를 적어 왔다. “어제의 설전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어 소름이 돋았다”는 나 교사의 말처럼 학생의 탐구는 멈춘 게 아니라 더 깊어진 것이다. 그는 식물이 상하지 않도록 수경 재배용 식물을 따로 마련해 그 탐구를 이어갈 수 있게 했다.
“오늘도 나는 너희의 탐구를 지원하는 사람이다.”
학생들에게 건넨 이 말이 나희정 교사의 수업을 관통한다. 다만 정규 수업만으로는 벽이 있다. 열린 질문을 충분히 다듬어 탐구로 잇기엔 진도에 쫓기는 시간이 빠듯하다. 그래서 그는 올해 동아리를 만들었다. 정규 수업에서 미처 풀지 못한 호기심을 펼칠 또 하나의 자리다.
교과에서 익힌 개념을 현실로 연결하다
동덕여자중학교 계호연 교사
탐구는 반드시 거창한 실험이나 완성된 결과물을 뜻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배운 개념을 자기 주변의 일과 연결해 보고,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품는 것. 동덕여자중학교 계호연 교사가 생각하는 탐구 중심 수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해양학을 전공한 계호연 교사는 지구 환경 이슈에 관심이 많다. 수업에서도 지진, 해류, 태풍, 미세먼지, 천체, 질병 등 학생들이 뉴스나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교과서 속 개념이 시험을 위한 지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세계를 이해하는 도구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실제로 심장을 배울 때는 심근경색, 뇌경색, 심장마비 같은 질병을 함께 이야기하고, 학생들이 뉴스나 주변에서 들어봤을 법한 주제를 연결한다. 학생들은 조사해 온 내용을 나누기도 하고, 수업 중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지난해 일본 대지진 예언설이 화제가 됐을 때도 지진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을 수업에 끌어와 학생들의 호기심을 먼저 자극했다. 이후 실제 지진 영상과 데이터 등을 활용해 지진파와 조기경보 시스템을 설명하며 “20초 뒤 강한 흔들림이 온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고 묻는다. 책상 밑으로 들어가는 것뿐 아니라, 교실 문이 뒤틀려 열리지 않을 수 있으므로 문 가까이에 있는 학생이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생활 속 대처까지 함께 생각하게 한다.
계호연 교사는 교과 수업 안에서도 탐구의 과정은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암석의 종류를 배울 때도 정답을 먼저 제시하기보다, 학생들이 실제 암석을 보고 배운 기준을 적용해 보도록 한다. “이건 화성암일 것이다”, “퇴적암일 것이다”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그 근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개념을 다시 확인한다. 이처럼 과학 개념은 외워야 할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관찰한 대상을 이해하는 기준으로 확장된다.
과학을 체감하는 과정이 곧 탐구학습
교과 수업에서 다 풀지 못한 호기심은 교과 밖 활동으로 이어진다. 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선택해 참여하는 자유학기 주제선택 수업에서 교과서 속 개념이 실제 현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기 위해 디지털 자료와 실제 데이터를 적극 활용한다. 이 수업에서는 바람, 해류, 미세먼지, 오로라 등 다양한 데이터를 살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교과서에서는 해류가 단순한 화살표로 표현되지만, 실제 데이터를 보면 해류는 곧게만 흐르지 않는다. 굽이치고, 돌아가고, 여러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계호연 교사는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날씨 예측이 왜 어려운지”, “자연 현상이 왜 단순한 공식처럼 움직이지 않는지”를 체감하게 한다.
양자 개념처럼 중학생에게 낯설고 어려운 주제는 VR 콘텐츠를 활용해 접근하기도 했다. 한국양자협회와 협업해 개발한 콘텐츠는 현실 세계와 양자 세계의 차이를 게임 방식으로 경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학생들은 VR 속에서 총을 쏘며 양자 세계의 특성을 접하고, 이후 양자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했다. 단순히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낯선 과학 개념을 체험과 토론으로 연결한 사례다.
탐구 수업에서 계호연 교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학생의 호기심이다. 학생이 “이건 해도 돼요?”라고 물으면, 위험하지 않은 범위 안에서는 “해 봐”라고 답한다. 해양 데이터 프로그램에서 수심을 더 깊게 설정해 보거나, 그래프의 온도 범위를 극단적으로 바꾸어 보려는 시도도 막지 않는다. 결과가 이상하게 나오더라도 다시 돌려보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확장하는 데 힘이 된다. 한 번은 바닷물의 염도를 설명하며 “바닷물을 끓여 남는 찌꺼기를 재면 염분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더니, 실제로 이를 해본 학생도 있었다. 수업에서 던진 작은 질문이 학생의 생활 속 실험으로 이어진 셈이다.
교과 수업에서 충분히 심화하기 어려운 내용은 과학 동아리 활동으로 이어간다. 진도와 평가의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은 동아리에서는 학생의 주도성이 더 크게 드러난다. 학생들은 학교 축제나 과학관 부스 운영을 앞두고 직접 주제를 제안하고, 커피 찌꺼기를 활용한 비누 만들기, 색이 바뀌는 레모네이드 실험, 달고나 만들기처럼 익숙한 소재를 과학 활동으로 풀어낸다.
다만 학생의 아이디어가 실제 활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교사의 조율도 필요하다. 예산은 충분한지, 재료는 안전한지, 부스 공간에서 몇 명이 참여할 수 있는지, 체험 후 정리는 어떻게 할지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계호연 교사는 주제를 대신 정하기보다 학생들이 놓치기 쉬운 조건을 함께 점검하며, 아이디어가 가능한 활동이 되도록 돕는다. 중학교 과학 동아리에서 교사의 역할은 답을 정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의 탐구가 현실 속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길을 잡아주는 조력자에 가깝다.
물론 학교 수업에는 현실적인 제약도 있다. 교과 진도와 평가가 있고, 실험 준비와 정리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계호연 교사는 이 한계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험 전에는 개념 학습을 충실히 진행하고, 시험 이후 비교적 여유가 생기는 시기에 실험을 집중적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탐구 활동을 수행평가로 연결할 때도 단순히 실험 결과만으로 변별하기 어렵다는 고민이 따른다.
그럼에도 계호연 교사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학생들이 과학을 ‘체감’할 수 있는 장면을 만들고자 한다. 양자 개념을 VR 콘텐츠로 경험하게 하거나, 일본의 지진·환경 관련 박물관 사례를 수업 자료로 가져오려는 시도도 그 연장선에 있다.
계호연 교사의 수업은 과학 지식을 생활의 감각으로 옮겨오는 과정에 가깝다.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개념을 실제 데이터, 뉴스, 영상, 실험, 질문 속에서 다시 만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학은 외워야 할 정답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묻고 확인하는 방법이 된다. 탐구 중심 수업의 출발점은 바로 그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수업의 장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