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 메이커 교육, 어떻게 실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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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패러다임 전환
새로운 미래 밝혀줄 등불 같은 역할 해야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메이커 교육 중장기(2018~2022) 발전계획’을 수립한지 3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서울형 메이커 교육은 창의성, 협력, 공유를 기반으로 하는 미래사회에 필요한, 미래역량을 갖춘, 창의적 인재육성을 위해 서울미래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정립이 필요하다는 요구로부터 출발했다. 지금까지 계획 수립부터 인프라 구축, 다양한 프로그램 실시 등 숨차게 달려왔는데, 5개년 계획의 중반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 서울형 메이커 교육의 출발점을 돌아보고, 그동안의 성과를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새로운 미래 역량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
거점센터 59개·모델학교 27개 구축
사회자 먼저 서울시교육청에서 메이커 교 육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떤 교육적 가치와 과정을 통해 어떤 교육 계획이 나오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정해운 교육감 2기를 준비하면서 4차 산업 혁명시대,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해 학생들에게 필요한 미래 역량은 무엇인가, 미래 역량을 함양시키기 위한 교육활동으로 어떤 것이 중점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됐습니다. 2017년 4월 중 장기 계획수립을 위한 TF를 구성을 하게 되었고, 여기 계시는 메이커 교육 전문가 선생님들께 여러 의견을 듣고 메이커스페이스라는 공간에도 가보면서 메이커 교육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교육청 나름대로 정립해서 2017년 11월 1일 ‘서울형 메이커 교육 중장기(2018-2023년) 발전계획’을 발표하고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
이지선 메이커 교육은 이미 현장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고, 교사들 사이에서 실제로 적용하는 사례들도 있었어요. 처음 메이커 교육에 대한 기본 방향을 정할 때 창의성, 협력과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하드웨어뿐 아니라 교육적 가치에서 접근했습니다.
사회자 정해운 장학사님은 메이커 교육의 발판을 만드셨는데, 그 동안의 추진 경과를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정해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학생들의 창의적 문제 해결력과 자율성, 협력, 공유능력을 강화하고 융합적 사고에 기반한 창작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학생 창작 중심의 메이커스페이스 거점센터를 59개, 모델학교를 27개 구축했습니다. 매년 100개교를 선정해 기자재 구입비 500만원을 지원했고 메이크버스, 길동무 차량 등 찾아가는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교육과정과 연계한 메이커 교육 지도자료 개발 및 교원 전문성 신장을 위한 연수도 운영했습니다.
이원경| 사회·편집위원장(세종과학고등학교 교감)
일상의 불편을 해소하고 도구의 기능을 개선하는 방법을 찾는 등의 작은 발견들이 메이커 교육의 시작점이 된다. 메이커 교육 이 교과의 벽을 넘어 앎과 삶을 연계하는 교육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
이지선|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메이커들과 커뮤니티를 꾸려서 운영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으며, 해외 도시를 다니며 다양한 메이커 교육 사례를 연구했다. 서울 시교육청 메이커 교육 탄생에도 많은 부분 기여했다. 디자인앤 테크 대표이사이며, 메이커 교육실천 회장을 역임했다. |
정해운| 서울시교육청 장학사
2017년부터 메이커 교육 계획을 수립하고 기반을 다지는 일 을 해왔다. 상상하고 만들고 공유하는 메이커 교육이 학교교육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협력과 공유를 통한 창의적 문제해결 학생 스스로 원하는것 배우면서 성장
사회자 메이커 교육에서 지향하는 교육적 가치, 핵심역량이 그동안 과학교육이 추구해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담아온 그릇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내용과 방향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기존의 과학교육과 메이커 교육이 어떤 면에서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권석영 기술교사 입장에서 이해하는 과학 교육과 메이커 교육의 차이점을 말하면, 일단 과학교육의 목표는 원리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렴’해가는 과정이죠. 반면 메이커 교육은 문제해결을 위해 공유와 협업을 하면서 다양한 대안을 탐색하는 ‘확산’의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공유와 협업을 위해 의사 소통 능력, 정보 처리 능력, 자기 관리 능력 등 제반 지식이 필요해요. 이런 의미에서 보면 과학교육과 메이커 교육은 그릇 자체가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신민규 가장 큰 차이는 교육의 내용을 교사가 아닌 학생이 정한다는 것입니다. 기존 과학교육은 교사가 가르쳐야 할 내용을 명확히 하고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에 중점을 두는 반면, 메이커 교육에서는 아이들 스스로 원하는 것을 배우고 교사는 조언자로서 활용하게 되더라고요.
이지선 메이커 교육은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맞물려 있습니다. 지금은 개인의 영리추구가 사회를 위협할 수 있고, 기술 자체도 굉장히 위험해졌기 때문에 이타주의와 공동체적 가치가 더욱 중요해졌죠. 이러한 상황에서 메이커 교육은 교육적으로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이찬형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메이커 교육에 대해 들었을 때 너무 생소했어요. 하지만 몇 개월 지나니까 다른 과목과 다르다는걸 느꼈습니다. 다른 과목은 이미 정해진 것을 외우고 이해하는 것인데, 메이커 교육은 내가 삶 속에서 발견한 문제를 직접 해결하면서 성취감과 자신감이 높아졌어요.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때는 자부심도 느꼈고요.
김주현 메이커교육의 핵심은 공유와 협력을 통해 생태계가 확산되고, 네트워크가 생기고, 나의 능력과 다른 사람의 능력이 더해져 시너지가 생기는 것을 추구하는 철학적 개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메이커 교육을 특정 도구를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주지주의를 구성주의로 바꾸는 것이죠.
기술과 발명에 한정된 방식은 아쉬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접근 필요
사회자 메이커교육이 현장에서 양적·질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교과와 교육 과정을 넘어 메이커교육의 정신을 확장시켜야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지선 우리나라는 메이커 교육을 흔히 기술이나 발명이라 생각하지만, 해외 사례를 보면 크래프트 수업이 더 많고 디자인씽킹 방법론을 많이 써요. 또 교사의 영향이 상당해요. 교사들의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 있 고, 메이커 교육이 특정한 과목이 아닌 그야 말로 융복합이에요. 학생이 주도하는 구성 주의 수업이 되도록 교사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부분이 우리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메이커 교육의 확장을 위해서는 교사의 자율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민규 '메이커’라는 단어 자체가 진입장 벽을 높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메이커라는 단어를 들으면 구체물을 만드는 수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무엇을 만들려면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고, 코딩도 하고 첨단 기기를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거부감부터 생기는 거예요. 메이커가 보다 큰 의미를 가진 단어이며, 더욱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교사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필요 한 것 같아요.
사회자 메이커 교육은 새로운 미래교육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의해 만들 어진 일종의 교육철학인데, 메이커라는 이름에 갇혀 발명과 기술에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방향 전환도 필요할 것 같네요.
이지선 코로나19를 맞아 해외에서는 메이커 홈키트를 학생들에게 뿌려주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자신의 스토리를 담은 잡지를 만든다거나, 저학년에겐 드림슈즈를 만들 수 있는 키트를 보내주는 식이죠. 교사는 유튜브로 라이브 방송을 하고, 학생들이 만든 작품은 부모의 소셜 계정을 통해 공유하 는 시스템인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재미있는 방식 같아요.
김주현 얼마전 저도 비슷한 시도를 했어요. 교과서에 나온 공통실습의 공통재료를 다 뽑아서 키트 박스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보냈어요. 팀 프로젝트를 해야하는데, 코로나19로 만날 수 없으니까 나름의 차선을 찾은거죠. 교수님 얘기를 듣다보니, 예전에는 해외 선진교육과의 격차가 10년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급격하게 좁혀졌다는 생각이 드네요. 해외 사례랑 비슷하게 생각하고 비슷한 도전을 하고 있는 지금이 새로운 변곡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해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자기주도적으로 가정 내에서 할 수 있는 좋은 콘텐츠를 개발한다면, 메이커 교육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 주인공인 학생들 눈높이에 맞추고 메이커 교육에서 여성에 대한 배려있어야
신민규| 한남초등학교 교사 2018년부터 메이커스페이스 거점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초등교육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목공 중심 메이커 활동을 연구하 고 있다. 중부발명교육센터 운영담당교사를 맡고 있다. |
권석영| 마포중학교 교사 2018년부터 서울형 메이커 교육 모델학교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기술교육 안에서 메이커 교육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전국기술교사모임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
김주현| 영등포고등학교 교사 2015년부터 학교 정규교과(기술)에서 직접 메이커 교육을 실천하고 있으며, 학교 현장에서 구성주의 교육철학 적용 사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메이커스페 이스 Camp 51.9 총괄책임자다. |
이찬형| 영등포고등학교 2학년 Camp 51.9 NEXT TECH 동아리 부장을 맡고 있으며, 동아리를 통해 친구들이 메이커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개개인이 메이커 활동을 실천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
신민규 요즘 유튜브는 아이들의 문화 자체예요. 많은 아이들이 자신만의 유튜브 계정이 있고, 없어도 필요하면 알아서 찾아 만들어보고 공유하는 일이 매우 자연스러워요. 코로나 초기에는 교사들도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일주일만에 적응을 완료하더라고요. 옛날에는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던게 지금은 쉬워졌어요.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보면 되고, 옆 사람과 함께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협업이 돼요. 어쩌면 우리는 이미 메이커의 시대에 살고 있고, 학생들에 비해 오히려 교사들이 늦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찬형 킥보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메이커 스페이스를 몰랐다면 버리고 다른 걸 샀을 텐데, 메이커스페이스가 있었기 때문에 킥보드를 고쳐서 다시 평소처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선작업이 생각보다 여러 기술이 들어가서 어려웠지만, 자료를 찾고 스스로 배우면서 혼자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른 친구들도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많이 알았으면 좋겠고, 우리가 미래를 이끌어갈 주인공이니까 3D 프린터나 첨단기기를 많이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해운 내년부터는 메이커 교육 거점센터가 아닌 모델학교 확산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모든 학교에 메이커스페이스 공간을 구축해서 학생들이 만들고 싶은 욕구를 해소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겁니다. 기존에는 기자재나 창작을 위한 공간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학생들이 오고 싶어하고, 마음껏 상상해서 만들고, 만든걸 뽐내고 싶어하는 놀이터와 같은 새로운 모델을 구상 중입니다
사화자 무조건 해외 사례를 따라갈 수도 없고, 따라갈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서울교육에 적합한 메이커 교육의 정신을 살리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죠. 지금까지 양적 노력에 매진해 왔다면, 앞으로는 질적 성장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지선 메이커는 원래 프로덕트와 서비스를 함께 포함하는 개념이고, 요즘 메이커 교육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서비스에는 다양한 음악, 연극 등이 다 포함되는 거죠. 또 하나의 이슈는 테크&젠더입니다. 사실 우리 메이커 교육이 목공, 코딩, 3D 프린터 등 남성 중심 기술이거든요. 해외에서도 메이커 교육이 남성 중심에 치우쳐져 있다는 비판이 있어요. 앞으로 서울형 메이커 교육에서 여성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메이커 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인클루 시비티(inclusivity)를 추구한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성, 인종, 계층, 장애 등에 상관 없이 기술적으로 공동의 혜택을 받도록 만드는 것이 메이커 교육의 지향점이니까요.
사회자 메이커 교육에 대한 자료개발을 책자로 보내면 교사들에게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요.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전체 과정을 스스로 해봐야 자신감이 성취되듯, 교사연수도 그런 방향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교사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서 끝까지 만드는 경험을 해보면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아요.
권석영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는 교사가 직접 해봐야 합니다. 교사연수를 할 때 시간제약이 많은데, 중간에 끊지 말고 쭉 이어가야 할 수업도 있거든요. 보다 유연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민규 교사뿐 아니라 관리자 연수도 필요 합니다. 실제 교육현장은 관리자의 마인드가 학교 분위기를 바꾸고 학교 문화를 만들거든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분이 죠. 지금처럼 둘러보고 관찰하는 방식이 아닌, 직접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는 메이커 교육 연수를 진행한다면 분명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아요.
이찬형 메이커스페이스를 잘 모르는 친구들이 많아요. 자신의 학교 주변에 어떤 메이커스페이스가 있는지 알려주셨으면 좋겠고, 요즘 학생들은 종이로 나온 책자보다는 인스타, 페북 등을 많이 하니까 그에 맞는 소셜 홍보도 필요할 것 같아요.
사회자 의미 있는 대화를 많이 나눈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계기이자, 메이커 교육이 불확실한 미래를 밝힐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시간 좋은 의견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난 5월 28일 서울시과확전시관에서 ‘세상을 바꾸는 메이커 교육 어떻게 실천할까’를 주제로 특별좌담이 열렸다.
메이커 교육에 대해 뜨거운 열정을 가진 전문가들이 모여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왼쪽부터 김주현, 권석영, 이찬형, 이원경, 이지선, 정해운, 신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