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서울특별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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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출발선’…모두를 위한 미래 융합교육 열 것
근본 묻는 힘이 교육의 큰 미래를 연다
지난 6월 26일,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정근식 교육감을 만났다. 새 임기를 시작한 정 교육감은 서울교육의 핵심 과제로 기초학력 책임 보장과 마음 건강 지원,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문해력과 수리력의 강화를 꼽았다. 특히 서울과학교육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그는 문제 풀이 중심의 교육을 넘어, 수학과 과학의 근본 개념을 묻고 세상을 이해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싱그러운 여름이 가득한 6월 말. 정근식 서울특별시교육감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은 곳은 지난 3월 용산으로 옮겨온 서울시교육청 신청사였다. 45년 만에 종로를 떠나 새로 자리 잡은 청사에는 아직 새 건물 특유의 산뜻함이 남아 있었다. 공교롭게도 새 출발은 청사만이 아니었다. 지난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정 교육감 역시 두 번째 임기의 첫발을 막 내디딘 참이었다. 지난 임기 동안 기초학력 보장, AI·디지털 교육 강화, 학교 안전망 구축을 추진해 온 그는, 이제 그 토대 위에서 서울교육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기초학력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공교육 책임
정 교육감이 이번 임기의 청사진을 설명하며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차별 없는 출발선’이다. 가정 배경과 무관하게 모든 아이가 형평성 있는 교육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서울학습진단성장센터를 25개 자치구 전체로 확대하고, 기초학력 전문교사를 단계적으로 배치해 배움에서 뒤처지는 학생이 없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초·중·고 대중교통비와 현장체험학습비 지원, 교권 보호 강화도 함께 추진한다.
“기초학력 책임 보장은 국가의 책무입니다. 지금까지의 의무교육이 소극적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더 적극적인 의미의 의무교육 개념을 채택해야 합니다. 학생의 기초학력은 물론 마음 건강까지 국가가 확실히 챙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가 말하는 적극적 의무교육이란, 학교에 다닐 기회를 보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학생이 실제로 배움의 힘을 갖추도록 그 결과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기초학력도 마찬가지다. 학생 개인이 감당할 몫이 아니라, 국가가 모든 아이에게 보장해야 할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 책임은 학력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 교육감은 학생의 마음 건강을 살피는 일까지 공교육이 끌어안아야 한다고 보았다.
입시 문제도 같은 맥락에 있다. 정 교육감은 입시가 경쟁이 아니라 성장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대입 체제와 고교 수업, 대학 교육이 따로 움직여 온 탓에 학생의 성장이 입시라는 좁은 문 앞에서 멈춰 섰다는 것이다. 이 분절된 단계들의 연계를 회복할 때 비로소 공교육이 정상화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모두를 위한 과학교육, (가칭)수학과학미래융합체험관 건립
이러한 책임은 학교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 교육감은 ‘(가칭)수학과학미래융합체험관 건립’ 사업을 지난 2월에 결재했다. 그는 체험관이 단순히 첨단 시설만 모아 놓은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STEM을 기본 축으로 삼되, 문화·예술적인 요소와 인문학적 상상력까지 아우르는 공간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빅히스토리(Big History) 개념을 추가하여, 우주의 탄생부터 지구 생태계의 변화, 인류의 진화에 이르는 거대한 서사를 수학과 과학의 융합적 시각으로 풀어냄으로써, 단편적인 지식을 넘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우주적 차원의 거시적인 통찰력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거듭나는 식이다.
(가칭)수학과학미래융합체험관을 향한 구상은 ‘대상’의 확장으로도 이어졌다. 정 교육감이 특히 강조한 것은 과학교육이 학생에게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수학과 과학교육은 단지 학교 교실 안의 학생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유아부터 청소년, 청년, 그리고 장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아우르는 평생교육의 관점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유아와 청소년이 놀이와 탐구를 통해 과학적 상상력을 키운다면, 청장년과 노년 세대 역시 삶의 변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장년과 노년 세대에게 ‘노화란 무엇인가’를 묻고, 그 자연스러운 과정을 생물학적, 화학적으로 설명하며 삶을 성찰하게 돕는 과학교육이 가능하겠지요.”
학부모와 중장년·노년 세대까지, 한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을 길러내는 일 역시 교육의 몫이다. 그래서 그는 과학적 개념과 발견이 시민의 교양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분과 적분, 확률 같은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가우스와 피타고라스의 발견이 어떤 물음에서 비롯됐는지 — 이런 이야기를 누구나 교양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학과 과학교육의 핵심은, 새로운 개념의 탄생을 시민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융합과학교육원의 역할도 확장된다. 지금까지 과학문화 사업이 주로 학생 체험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앞으로는 모두를 위한 과학문화의 장으로 넓어질 수 있다.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과학 프로그램, 시민을 위한 수학·과학 강좌는 서울과학교육이 학교 밖으로 확장되는 통로가 될 것이다.
AI 시대, 근본을 묻는 과학교육으로
지금 교육 현장은 인공지능 전환과 녹색 전환, 즉 AX·GX라는 거대한 파도를 마주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발표한 「K-STEM 실현 계획」을 통해 기존의 수학·과학·융합교육을 통합적으로 연계하고,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에서 벗어나 학생이 질문을 생성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탐구하며 협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미래형 STEM 교육으로의 전환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정 교육감이 강조하는 것은 AX·GX에 대응하는 교육의 방향이 단지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AI에게 물으면 글을 대신 요약해 주고 셈을 대신 풀어 주는 시대, 그럴수록 학생 스스로 읽고 따지고 계산하는 힘은 더 중요해진다. AI 시대일수록 문해력과 수리력 같은 기초 역량을 더 단단히 길러야 하고, 과학교육 역시 그 힘을 키우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AI를 멀리하자는 뜻은 아니다. 이미 학생들이 접하는 거의 모든 것이 AI와 닿아 있어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무엇을 가르치느냐다. 정 교육감은 AI를 다루는 법을 가르치기 이전에 AI가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사용법이 아니라 그 바탕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그대로 수학과 과학교육으로 이어진다.
“수학 문제를 잘 푸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도대체 수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의 근본 원리는 무엇인가를 묻는 개념 교육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예로 들었다. 지루한 수업에 흥미를 잃었다가 공식을 통째로 외워 성적을 끌어올렸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중학생이 푸는 문제를 다시 마주하니 풀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외워서 익힌 것은 사라져도, 개념과 원리를 이해한 배움은 오래 남는다. 과학의 뿌리에 철학이 있다는 그의 믿음도 여기서 나온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도 결국 세상의 서로 다른 원리를 가르쳐 주는 과목입니다. 구체적인 지식을 외우는 것보다 그 사고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교육은 실험실 안에 갇힌 지식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 자연을 함께 이해하는 통합적 배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육감은 융합과학교육원이 이러한 전환의 거점이 되어, 개념의 탄생과 과학적 발견의 과정을 시민의 언어로 풀어내는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보았다. 수학과 과학교육은 결국 질문에서 시작해 질문으로 돌아온다. 왜 그런가,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은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더 깊이 질문하는 교육, 그리고 그 질문을 모두의 것으로 넓히는 교육. 정근식 교육감이 그리는 서울과학교육의 미래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