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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아 박사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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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을 만드는 물리학자


우주는 미래 생존 문제와 직결

안정적·장기적 정부 지원 필요


2021년 10월 누리호(KSLV-II) 1차 시험 발사에 이어 2022년 6월 누리호 2차 발사, 2023년 5월 누리호 3차 시험 발사까지 성공하며 대한민국은 우주 강국 반열에 올라섰다. 아득하게 느껴졌던 우주가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이 순간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우주 궤도에 올려놓은 ‘K-위성’은 지구 주위를 비행하며 우주 정보를 보내오고 있다. ‘인공위성을 만드는 물리학자’는 매일 인공위성과 대화하며 우주공간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현상들을 관측하고 해석하느라 분초를 다투고 있다.


미지의 우주에 디딤돌을 놓다


“지난 5월 25일 누리호 3차 발사 때 우리가 만든 인공위성을 실려 보냈어요. 세계 최초 편대 비행을 하는 위성이라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답니다. 굉장히 어려운 기술을 시연하는 중이에요. ‘도요샛’ 위성 4기 가운데 3기가 잘 작동하고 있고요. 저기 보이는 화면이 실시간 위성을 트래킹하는 데이터인데요, 초기 운영 기간이라 모든 부품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제 역할을 하는지 하나하나 테스트하는 중이에요. 곧 정상 운영 모드로 들어가 우리가 원하는 과학적 데이터 관측을 시작할 거예요.”


도요샛 점검 회의를 막 끝낸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황정아 박사는 숨돌릴 틈도 없이 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영상을 1.5배속으로 돌려놓은 듯 말이 빨랐다.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넘쳐나니 늘 분초를 다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아직 여러 개의 인공위성을 동시에 운영해본 적이 없어요.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고, 어렵지만 반드시 확보해야 할 기술이었기에 오래전부터 철저히 준비했어요.” 2017년부터 과제를 시작해 2023년 위성을 쏘아 올렸다. 제안서 만들어 뛰어다닌 기획연구 기간 2년을 합하면 장장 8년이 걸렸다. 2021년에 끝나는 5년짜리 프로젝트였는데, 중간에 변수가 생겼다. 코로나19로 부품이 제때 수급되지 않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설상가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사체 소유스-2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바람에, 대체 발사체로 선정된 누리호가 완성될 때까지 또 기다려야 했다. “우주 미션 자체가 준비기간도 길고 변수도 많고, 모든 위험부담을 안고 가는 일이라 보통 10년은 예상하고 진행해요.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 기간에 다른 미션을 준비하죠.


지금 2톤 규모의 또 다른 위성 미션을 설계 중인데, 올해 발사한 도요샛이 10kg짜리니까 약 200배 크죠. 아주 멀리 갈 계획이에요. 우리나라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을요. 계속 씨드를 뿌리는 중이에요.” 황 박사는 자신이 설계한 위성을 라그랑주 L4 지점에 보내서 태양에서 나오는 우주방사선을 연구할 계획이다. 미국과 함께 한미 민간 달착륙선 탑재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으며, 달에 인간을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우주를 지배하는 자 세상을 지배한다


황정아 박사의 일과는 분초로 쪼개진다. 매일 연구와 회의의 연속이다. 학회와 정부 위원회에 참석하고 과학문화 확산을 위해 언론 기고와 인터뷰, 방송 출연은 물론 책을 펴내고 유튜브, SNS 활동까지 넘나들고 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내게 주어진 일이 즐겁고, 내 직업을 사랑해요. 우주에 뭔가를 보내고, 우주에 있는 물체와 대화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지구에 몇 명이나 될까요? 도요샛은 지구 저궤도 550m에 올라가 있어요. 저궤도 위성은 맨눈으로도 보여요. 지구 한 바퀴를 약 100분 주기로 도는데, 내가 만든 별이 하루 열네다섯 번 내 머리 위에서 돌고 있는 거예요. 그런 상상만으로 삶이 재미있어져요.”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 1위가 과학자인 시대에 살았지만, 그의 원래 꿈은 과학자가 아니었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좋아해서 고고학자, 아나운서, 기자, 작가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과학영재교실을 다니면서 과학과 수학에 재미를 붙였고, 과학고를 거쳐 카이스트에 진학하면서 물리학에 푹 빠졌다. 대학원에 들어가자마자 과학기술위성 프로젝트에 바로 투입됐다. 낮에는 하드웨어 쪽 일을 하고 밤에는 논문 쓰느라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우리나라 우주 역사를 새로 쓴다는 자부심과 한계에 도전하는 즐거움이 계속 나아가게 했다. 아이 셋을 낳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나에게 칭찬하고 싶은 점은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아닐까요. 주위에서 괜찮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사실 번아웃도 많이 왔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과학고 선배, 카이스트 선배, 경력을 살리지 못하고 사라진 친구를 대신해서 이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어요.” 20년 넘게 우주와 동고동락해온, 우주를 몹시 사랑하는 물리학자에게 우주는 어떤 존재일지 궁금했다. 보통의 사람들에겐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지만, 그에겐 “언제든 가볼 수 있는 살아있는 장소”라고 했다.


밤하늘의 달이나 화성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때, 그의 좌뇌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곳에 가려면 뭘 해야 할까, 본체와 출력기는 뭘 써야 하며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그러면서 무게와 동력을 계산한단다. “우주가 중요한 이유는 생존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일례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다들 사흘 안에 전쟁이 끝날 거라고 장담했어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력 차이가 10배 이상 나니까요. 그런데 변수가 생겼어요. 러시아가 전력과 통신을 끊고 본격적으로 침공하려던 때, 우크라이나가 일론 머스크한테 부탁해서 스타링크 인터넷 통신을 가져왔어요. 통신이 부활해 미국과 세계 곳곳에 정보를 공유하면서 전쟁 판세를 완전히 바꾼 거죠. 앞으로 우주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겁니다.” 작은 인공위성에도 수천 개, 수만 개 전자 부품이 들어간다. 그중 우리가 만든 부품은 아직 하나도 없다. 우주 기술은 국방 기술과 같아서 국가 간 기술이전이나 사람 이전이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사 하나 볼트 하나도 우리가 직접 해봐야 한다. 그렇다 보니 부품 하나를 국산화하는 데도 엄청난 비용과 시간, 노력이 필요하다. “누군가 시작해서 멀리 돌을 던져놔야 후배나 제자들이 조금 더 멀리에서 시작할 수 있으니까, 디딤돌을 놓는 심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어요. 현재 우주가 매우 핫한 분야라 다양한 시도가 많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미션을 실현할 사람이 부족해요. 많은 기회가 있으니까 일단 도전해보세요. 만약 실패하더라도 분명 그 과정에서 뭔가를 얻을 것이고, 성장할 것이고, 그 성장은 다른 분야에서 도움이 될 테니까요.”


우주 강국은 걸음마 수준, 이제 시작이다


황정아 박사는 이과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는 현상에 우려스러운 마음을 전했다. 기초과학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고,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인도에서 만든 달 탐사선 찬드라얀의 착륙선이 성공했어요. 인도가 달 착륙 네 번째 국가가 된 거죠. 수학과 과학, 이공계 학생들을 우대한 결과예요. 우리나라는 아직 달 착륙선 만들 기술이 없어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우주 프로젝트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이 나와야 해요. 단계별로 기술을 차근차근 쌓아 올릴 수 있도록 20년 30년 장기 프로젝트를 지원해야 해요. 실패가 없으면 결과가 없어요. 우주 쪽은 특히 그래요.” 그는 미래 과학 인재 육성에 누구보다 애정이 많다.


어릴 때 우주에 관심 많았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입시 때문에 과학자의 꿈을 접는 경우가 많다. “작년에 서울대 물리학과가 미달이었어요. 수능에서 물리 선택자가 곤두박질치고 있어요. 그 숫자로는 1등급이 안 나오니까 아무도 선택하지 않아요. 쉽게 점수 따는 과목으로 가는 거죠. 바보들의 나라가 되고 있어요. 물리학과와 물리교육과가 없어지면 우주 프로젝트는 누가 하나요.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해요. 어른들이 장기적인 비전으로 미래의 과학자를 키워내야 해요. 합당한 보상도 필요하고요.” 그는 마지막으로 지금 우리는 우주 강국으로 급부상했다는 자만심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님을 경고했다.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갈 길이 아주 멀죠. 누리호가 3번 발사해서 2번 성공했어요.


성공 확률 66.67%인 발사체입니다. 말도 안 되는 성공률이에요. 소유스-2는 99.7% 성공률인데, 이 정도가 안 되면 외국 손님 절대 못 실어요. 100번 해서 99번 성공해야 다른 손님을 실을 수 있어요. 발사체의 경우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에요.” 대한민국의 우주 산업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우주 강국을 향한 꿈이 현실이 되어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우주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그가 우주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