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정선희 SBS ‘TV 동물농장’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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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우리 지구 위해 과학은 필수
4D 영화처럼 입체적으로 즐겼으면
매주 일요일 아침 9시 30분에 방영하는 ‘TV 동물농장’은 공중파 유일의 동물 전문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다. 반려동물과 소통하는 법, 위기에 빠진 야생동물 구조, 다양한 동물의 삶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환경과 생태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TV 동물농장’ 애청자로서 방송을 볼 때마다 유독 한 사람에게 시선이 많이 간다. 바로 MC 정선희다. 웃음과 눈물이 많은 그녀는 특유한 친근감과 공감 능력으로 프로그램을 더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TV 동물농장’을 진행한 이력 탓일까. 과학교육이라는 어려운 화두를 일상과 연결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현재 SBS ‘TV 동물농장’, MBC 표준FM ‘지금은 라디오 시대’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MC로 활약 중인 그녀는 1992년 SBS 공채 1기 코미디언으로 정식 데뷔해 방송에 입문했다. ‘슈퍼선데이’ ‘해피타임’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거쳐 ‘EBS 만들어볼까요’ 진행을 맡으며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방송인으로 성장했다. 이후 라디오 DJ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남다른 언어 재능 덕분에 외국어 교재를 출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직업상 언어와 감성, 인문과 예술의 영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그녀에게 과학은 아주 멀리에 있어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세계였다. ‘서울과학교육’에서 인터뷰 제안을 받았을 때 “잠이 안 올” 정도로 낯선 경험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과학 원리와 일상생활의 뜨개질
“과학의 중요성에 대해선 모든 사람이 인정하지만, 과학이 기본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경험했던 과학 수업이 흥미 있거나 기대되는 과목이 아니었거든요. 당시엔 실험이라는 게 별로 없었고, 선생님들이 열심히 원리를 설명해 주셨지만 당최 모르는 내용이니까 상상의 여지가 없었죠.
솔직히 과학 시간은 기억이 안 나요. 푹 잤던 거 같아요. (웃음)” 그녀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1980년대는 학령인구가 많아 경쟁이 매우 치열했던 시기였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엔 70명이 넘는 학생들이 북적였고, 질문이 금기시된 주입식 교육이 주를 이루었다. 과학은 대체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전유물이었다. 특히 여고생 다수가 선택했던 문과 계열에선 더 그러했다. 저세상 어디엔가 있을 법했던 과학이 일상에서 숨 쉬고 있는 존재임을, 그녀는 학교를 졸업한 후 뒤늦게 깨달았다.
“과학이든 수학이든 우리가 공부로 접근했을 때는 굉장히 딱딱해요. 전문성이라는 상당한 무게감이 있잖아요. 그런데 학창 시절을 지나고 보니 과학이 쪼개져서 생활 곳곳에서 얘기를 걸고 있는 거예요. 쓰레기 하나 버리는 것도 과학이고, 매일 사용하는 휴대전화나 블루투스 스피커 등등 다 과학이더라고요. 뒤늦게 후회하는 거예요. 내가 과학을 잘했으면 좀 더 많이 활용할 수 있을 텐데 하고요. 전화 통화랑 카톡만 할 줄 아는 비루한 내 실력이 부끄럽더라고요. (웃음) 일상에서의 활용 범위를 생각하니까 ‘과학이 정말 중요한 학문이구나, 과학을 우리 생활과 연결하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학의 원리가 생활과 연관된 뜨개질이 됐다면 기억을 좀 더 오래 했을 것 같아요.” 사실 과학은 전자기기의 활용뿐 아니라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그녀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공상과학소설(SF)을 좋아하는데, 문장을 이해하기 어려워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건 논리의 부족이었다. “저는 과학적 사고와 수학적 사고를 완전히 배제한 채 살아왔어요. 학창 시절엔 몰랐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논리적인 부분이 취약한 거예요. 감정이 발달한 직업이기 때문에 누군가 논리로 접근하면 구멍이 많아요. 위기가 생겼을 때 논리가 아닌 감정적으로만 접근하게 되니까 손해를 볼 때가 많더라고요. 인간관계도 그렇고 선택과 결단에서도 그렇고요. 학창 시절에 과학적 사고를 조금 더 탑재했다면, 근육 훈련처럼 조금씩 연습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뒤늦게 들었죠.”
동물 키우면서 환경문제에 관심
과학은 이제 그녀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SBS ‘TV 동물농장’을 2001년부터 2008년까지, 그리고 2014년부터 현재까지 16년간 진행하면서 생태와 환경, 생명 존중에 대해 누구보다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다. “학창 시절에 생물 선생님이 좀 독특한 분이셨어요. 당시엔 모두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하는 어른들뿐이었는데, 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화두를 툭툭 던져주는 느낌이 좋았어요. 덕분에 생물은 비교적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었고, 이후 방송에서 대본을 숙지하거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때 큰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화학은 화장품에 관심을 가지면서 뒤늦게 눈을 떴고요. 기억 속에서 생소하게 둥둥 떠다니던 원소 기호들이 실체를 갖추더라고요. 무엇보다 동물을 키우면서 환경이나 생태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갖게 되었어요.” 그녀는 재활용이나 친환경용품 사용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일구어가는 일에 작지만 소중한 힘을 보태고 있다. 요즘에는 친환경 개밥그릇을 연구하는 팀과 협업하면서 생분해 플라스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사고와 실천이 꼭 필요한 시대라고 그녀는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 현장에서 과학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일상과 동떨어져 있다. 우리 모두에게 뼈아픈 지점이다. “과학 자체가 어떤 수단이 아닌 즐거운 목표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신기한 신제품을 볼 때 ‘뭐야?’ 하면서 관심을 가지는 것도 과학이잖아요. 맛있는 커피와 음식도 과학이고요. 일상에서 호기심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사회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고, 그런 프로그램들이 많이 양산돼서 선생님도 학생들도 다 같이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과학의 본질에서 파생되는 즐거운 에너지들이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활성화되었으면 바라고요. 영화도 4D 입체로 보는 세상인데 딱딱하게 평면적으로만 과학을 보지 않고 좀 빨딱 일으켜서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전부 과학이네’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근엄함 걷어내고 유치하고 즐겁게
다소 어렵고 생소한 과학을 유쾌한 시선과 언어로 풀어내는 태도가 무척 신선했다. 언어 재능이 뛰어나 일본어 교재를 펴낸 이력이 있는 그녀는 참신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상 회화를 배우기 위해 처음부터 토익 토플을 준비하진 않잖아요. 영어를 처음 배우는 이들에게 아이들처럼 만화나 동화로 재미있게 시작하라고 얘기해줘요. 괜히 폼 재지 말고 유치하더라도 즐거운 방법으로 접근하라고 말이죠. 과학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과정을 즐기면 되는데 학생들은 잔뜩 주눅 들어있거든요. 어른들도 초등학생 수준으로 과학을 배우면 되는데 내가 이 정도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근엄해지기 시작해요. 그때부터 재미없어지는 거 같아요. 과학이 근엄함을 좀 빼고 유치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과학을 어려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 역시 그랬다고, 나 역시 수업 시간에 푹 잤던 기억이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과학 공부나 성적에 상관없이 일상생활 매 순간 모든 공간에 과학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았다고,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숨 쉬듯 과학을 느끼고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건넸다. “내가 모르는 상황에서도 과학은 내 안에서 내 밖에서 내 옆에서 계속 호흡하고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과학이 조금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어른들은 정답을 맞혀야 공부의 완성이고, 성공이 노력의 열매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안 그래요. 어려운 법칙이나 원리에 얽매이지 않고 궁금한 것을 들여다보고 의문을 가지는 게 공부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제 바람은 궁금한 게 되게 많은 할머니로 늙고 싶어요. (웃음)” 과학은 분명 생활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과학이다. ‘모두의 과학’을 위한 발상의 전환 역시 우리 모두의 몫이다. 사물에 대한 작은 관심과 호기심이 과학의 뿌리임을, 유쾌한 그녀가 명징하게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