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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진 교수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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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연구의 퍼스트무버(First-Mover)를 꿈꾸다


하드 로봇에서 소프트 로봇으로
신개념 로봇 연구로 여는 새로운 패러다임


조규진 교수는 소프트 로봇 분야에서 주목 받는 젊은 연구자다. 2008년 서울대에 부임한 그는 마이크로 생체모방 로봇을 비롯해 폴리머, 복합재료, 스마트 액츄에이터 등 다양한 첨단 재료와 제조 방식을 활용한 로봇 설계와 제조, 제어에 관한 연구를 주로 수행해왔다. 2014년에는 소프트 로봇과 생체모사 로봇 설계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국제로봇학회 젊은연구자상(IEEE RAS Early Career)를 수상하기도 했다. 점점 달라지는 로봇 연구의 전환점에서, 조규진 교수는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가 아닌 퍼스트무버(First Mover)로 나서고 있다.


누군가 “소프트로봇은 어디에 쓰이나요?” 하고 묻는다면, 정해진 답은 없다. 하지만 기업과 대학의 연구 방향은 다르다. 오히려 조규진 교수는 “달라야만 한다”고 말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갈 때, 새로운 것이 생길 수 있는 까닭이다. 실용성을 따지지 않는 아카데미연구는 대학에서만 할 수 있기에, 그는 계속해서 정답이 없는 근본에 집중하며 색다른 연구 과제를 이어가고 있다. 자연의 소재에서 주로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 조규진 교수에게 연구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신생 분야이기에 나아가야 할 길은 멀지만, 이 분야를 통해 우리나라 로봇 연구의 위상을 전환하고 싶다는 그를 만났다.


세계에서 주목 받는 젊은 연구자


지난 봄, 이탈리아 르보르노에서 기분 좋은 낭보가 전해왔다. 4월 30일에 열린 제1회 ‘로보소프트 그랜드 챌린지(RoboSoft)’에서 조규진 교수 연구팀이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세계 최초의 소프트 로보틱스 경진대회인 이 대회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브리스톨대, 이탈리아 과학기술원, 미국 터프츠대와 콜로라도대 등 8개국 12개 기관에서 총 23개 팀이 참여해 경합을 벌였다.
이 대회에 2대의 로봇을 들고 출전한 조규진 교수 연구팀은 서울대 이니셜과 영화 <매드맥스>의 이름을 본 따 만든 스누맥스(SNUMAX) 로봇으로 참여 팀 중 유일하게 6개 미션에 모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장애물 피하기, 계단 오르기, 물체 집기 등의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스누맥스는 종이접기 원리를 응용한 바퀴형 로봇이다. 종이접기 원리를 통해 공압을 사용하지 않고도 바퀴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대회 수상을 통해 조규진 교수는 기술의 창의성을 인정받고 전 세계 소프트 로보틱스 분야에서 한국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활용도 높은 소프트 로봇, 그 시작점에서


조규진 교수가 집중하고 있는 소프트 로봇은 기존의 금속성 하드웨어를 지닌 하드 로봇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진행되고 있는 융합 연구 분야다. 생명체의 구조와 형태, 움직임의 메커니즘을 참고하거나 폴리머 같은 유연한 소재를 활용해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조규진 교수가 연구해온 내용을 참고하면, 좀 더 직관적으로 소프트 로봇을 이해할 수 있다. 파리가 앉으면 0.1초만에 잎이 닫히는 파리지옥을 참고한 ‘파리지옥 로봇’, 벼룩 뒷자리 근육의 움직임 그대로 재현한 ‘벼룩 로봇’ 등이 유명하다. 2015년 서울대 공대 최초로 <사이언스> 저널에 실린 ‘소금쟁이 로봇’은 대중적으로도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생물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조규진 교수는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며 로봇의 움직임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로봇 연구자이면서도 생물학 논문을 많이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 로봇에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소프트 로보틱스는 신생 분야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주목도가 높은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이 연구에 뛰어 들고 있죠. 앞으로 연구자 수가 점점 더 늘어나면 시너지가 생기면서 더욱 연구 범위도 확장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로봇 연구는 로봇 공학자들의 고유 분야였지만, 소프트 로봇으로 연구 영역이 넓어지면서 참여 연구자의 전공도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조규진 교수의 주요 연구 중 하나인 소금쟁이 로봇 역시 유체공학자들과의 협동 연구를 통해 탄생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는 로봇 공학자들이 주도해왔습니다. 하지만 소프트 로봇은 재료공학, 유체공학, 해석학 등 기존의 여러 공학의 융합이 필수적인 분야입니다. 특히 아카데믹한 연구는 할 일이 더욱 많습니다. 산업적인 성과는 크게 나오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출발한 연구


조규진 교수가 소프트 로봇에 관심을 둔 것은 미국에서 연구를 할 때부터다. 2009년 소프트 로봇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기 전부터, 다른 형태의 로봇을 만드는 시도를 이어왔던 것. ‘새로운 로봇’에 대한 열망은 한국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새로운 재료, 새로운 생산 방식을 활용해 로봇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목표는 단순히 ‘무엇’에 집중되지 않았다. 우선은 생체모사 원리를 적용해 조금 다른 관점에서 로봇 연구를 이어갔다. 덕분에 전에 없던 사례들이 그의 연구실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연구의 시작점은 아주 사소한 부분이었어요. 손 마비 환자를 위해 만든 ‘엑소 글러브 폴리(Exo-Glove Poly) 역시 ’로봇이라고 해서 반드시 프레임이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지금은 프레임이 없는 로봇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당시에는 손 마비 환자를 돕는 로봇이라고 하면 프레임이 있는 로봇만을 떠올렸죠.”


언뜻 하나로 통일하기 어려운 연구 결과들이지만, 조규진 교수는 자신이 하는 연구가 소프트 로봇의 개념을 정립해가는 과정에 있다고 자부한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조규진 교수는 “불과 3~4년 전만 해도 제가 하는 연구를 본 분들이 ‘이게 뭐야? 장난감 만들어?’ 하는 반응을 자주 보였다”며 지난 일을 회고한다. 우리나라 많은 분야에서 ‘이제는 남들 뒤를 따라가지 말고 퍼스트무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사실상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의 앞에 선다는 것은 꽤나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2014년을 기점으로 대외적인 성과를 속속 내면서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기존의 로봇을 더 잘 만드는 것보다 이전에 없던 개념을 만들어가는 데서 가장 재미와 보람을 느낍니다. 종종 외국에서 강연을 할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우리가 제시한 개념에 동의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로봇 자체보다 활용 방안에 더 무게


조규진 교수는 소프트 로봇이 우리나라가 선도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의 로봇 연구에서, 우리나라는 항상 팔로워(Follower) 입장에 있었다. 이미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휴머노이드 로봇은 자금력이 충분한 기업이 뛰어들면 지금까지 학계에서 내놓은 성과를 바로 따라잡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소프트 로봇에 관해서는 선뜻 투자를 감행할 기업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조 교수는 지금이 적기라고 여기고 있다.


“시장이 보이는 순간 기업체에서도 이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할 겁니다. 그렇다면 기술도 더욱 발전하겠죠. 정부 차원에서 산업체를 돕는 연구개발로 진행하지만, 학교에서의 연구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행히 이제는 로봇 연구 인력도 많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앞서 치고 나갈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합니다. 외국에서 성공한 후에 시작하는 연구는 이미 늦습니다.”
조규진 교수는 청소년들이 단순히 ‘로봇이 인기 분야’라고 해서 무작정 로봇공학자의 꿈을 꾸기를 바라지 않는다. 로봇도 결국 하나의 ‘도구’라는 것. 그는 우선은 기술에 대한 호기심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로봇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단순히 멋지다고 진로를 정하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로봇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도 이해해야 좋은 로봇을 만들 수 있어요. 학교에서는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로봇’은 로봇 공학자들이 가야 할 목적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있는 로봇’에 목표를 둔다면, 고민의 수준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조규진 교수는 많은 사람이 ‘말도 안된다’는 연구에 집중하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자 고민했다. 과거의 상상이 언젠가는 현실이 된다. 조규진 교수가 학생들에게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조언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MINI INTERVIEW 

“용기를 갖고 남들이 하지 않은 일에 도전하세요”


로봇공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조규진 교수와 특별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강서고 학생 25명, 숭문고 학생 7명으로 구성된 탐방단은 조규진 교수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며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들었다.


박강희 학생 | 사람의 손가락은 다섯 개인데, 장갑형 로봇인 엑소 글러브 폴리의 손가락 부분은 왜 세 개인지 궁금합니다.


조규진 교수 | 사람과 똑같이 움직이려면 모터가 더 필요하고, 가격이 올라가고, 기능이 복잡해집니다. 그러다보면 고장도 잘 나겠죠. 단순하게 만들려면 손가락 다섯 개를 다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세 개의 손가락만 있어도 웬만한 물건의 80~90%는 집을 수 있습니다. 최고의 성능이 곧 최고의 기술은 아닙니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최대한 단순화해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김상민 학생 | 로봇을 연구하실 때 새로운 로봇 개발과 기존 기술 상용화 중 어디에 중점을 두시나요?


조규진 교수 |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만든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다면 좋겠죠. 산업계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기술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대학에서 새로운 연구를 하는 것은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산업계에서는 최종 결과를 판단할 수 없는데 투자를 하기 어려워요.


이화영 학생 | 로봇을 만들 때 폴리머라는 재료를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폴리머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조규진 교수 | 유연하고 환경 적응력이 높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착용해도 편하죠. 단점은 제어가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유용성이 낮은데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박지훈 학생 | 바퀴형 로봇 스누맥스는 종이접기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조규진 교수 | 당시 미국에서 종이접기 원리를 이용한 대형 엔지니어링 과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공군연구소에서 관련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우리 연구실에 문의가 왔습니다. 이전에 바퀴 변형에 관심을 두고 있다가 종이접기 원리를 접목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우연입니다. 실제로 앞서 학생들이 설명을 들은 연구 결과에도 우연과 인연이 작용한 예가 많아요. 실제로 여러분들의 인생에서도 우연히 만난 누군가로 인해 인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유선호 교사 | 교수님의 롤모델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조규진 교수 | 저에게 영향을 준 분들은 많지만, 특별히 롤모델로 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특별한 목표를 둔 적이 별로 없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데서부터 관심을 발전시키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