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목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페이지 정보
본문
‘세기의 발견’ 중력파 검출 연구 참여
천체에서 일어나는 현상 연구와 규명 집중
천문학을 통해 우주의 진리를 발견하다
지난 2월 12일, 세계 과학계에 낭보가 들려왔다. 1915년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이후, 무려 100여 년간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중력파를 실제 검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중력파 검출은 지난 2012년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발견 이후 과학계 최고의 진전으로 평가받았다. 중력파 검출 소식은 우리나라 과학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중력파 검출 연구에 국내 과학자 14명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형목 교수는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단장으로서 중력파 관련 연구를 주도해왔다.
중력파는 질량을 지닌 물체가 가속운동을 할 때 에너지 일부가 손실되어 만들어지는 파동을 의미한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가설을 도출했지만,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중력파의 존재를 증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중력파의 신호 세기가 매우약해 실험적으로 검출할 가능성이 무척 낮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이후에도 수많은 과학자가 중력파 검출을 포기하지 않았고, 한 세기만에 ‘중력파 검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 과정에 함께한 이형목 교수 역시 쏟아지는 관심에 고무되어 있었다.
한 세기만에 찾아온 위대한 발견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체가가속될 때 중력파가 방출되어 빛의 속도로 전파됩니다. 하지만 중력이라는 힘이 또 다른 장거리 힘인 전자기력에 비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죠.”
중력파 관련 연구를 시작된 초창기에는 이론적인 발전도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심지어 중력파의 존재 여부에 관한 논쟁도 있었다. 아인슈타인조차 “중력파는 너무 약하고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아 누구도 검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낙담했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1960년대에 시작한 중력파 검출 연구는 1990년대에 이르러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초창기에는 커다란 금속물체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기의 흐름을 측정하려고 했지만, 그 장치로는 충분한 감도를 얻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1990년대 이후부터 레이더 간섭계 방식의 연구로 전환되었다.
“중력파 관측소는 1990년대부터 공사를 시작해 2002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그 관측소를 2009년까지 가동하다가 이후 다시 감도를 더 좋게 만들어 지난해부터 가동하기 시작했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신호를 감지하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가 그 일에 매달렸습니다.”
중력파를 검출하고자 했던 과학자들의 노력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형목 교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현재 이형목 교수가 단장으로 있는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소속 학자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이 연구에 동참한 이들이다.
“박사 시절, 항성역학을 연구했는데 그 내용이 중력파와 관련이 있어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그쪽으로 옮겨갔죠. 초기에는 일종의 스터디 모임처럼 모여 자체적으로 중력파에 관해 공부하면서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딱히 연구비가 있어서 시작한 일도 아니었는데, 학문에 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여러 학자가 모였습니다.”
이형목 교수를 주축으로 모인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소속 연구자들은 전 세계적인 중력파 연구 그룹인 라이고 연구팀의 일원으로 중력파 검출 자료 분석 연구를 수행했다. 이형목 교수를 비롯한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소속 연구자들이 참여한 라이고는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ion)’의 약자다. 2002년에 완공되어 관측을 시작한 라이고는 검출 감도를 10배 높여 지난해 9월에 차세대 버전을 새롭게 가동했다. 세계적으로 1000여 명의 연구 인력이 활동하는 라이고 연구팀 안에서 14명의 국내 연구자들은 동등한 자격으로 협력 연구를 진행했다. 중력파 검출에 관한 국내 반응도 뜨겁다.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뜨거워 저로서도 놀랐습니다. 아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견이 몇몇 있었지만, 그 과정에 한국인이 참여한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1000여 명 중 14명의 연구 인력이 참여했으니, 기여도가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동등한 자격으로 발표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시공간을 흔드는 물결, 중력파
이형목 교수는 중력파를 두고 ‘시공간을 흔드는 물결’로 비유한다. 대중에게 중력파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때 주로 비유하는 것이 바로 ‘물결’이다.
“잔잔한 물 위에 돌을 떨어트리면 물결이 퍼져 나갑니다. 전기장이 흔들릴 때 나타나는 전파적 현상이 빛이라면, 중력장이 흔들릴 때 발생하는 전파적 현상이 중력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동이 전달되는 것이 바로 중력파죠.”
이번에 관측한 중력파는 지구로부터 13억 광년 떨어진 우주공간에서 블랙홀과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이번 성과는 중력파 최초 관측이라는 점 외에도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하는 극적 현상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빛과 함께 중력파 역시 우주 관측의 중요한 수단이다. 중력파는 강한 중력장을 지닌 천체 현상을 관측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간접 증거로만 존재를 짐작했던 블랙홀을 관측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연구에 참여한 제가 보기에도 관측한 것이 신기할 만큼 경이로운 수치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인력이 투입되었고, 여러 사람이 노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죠.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여한 지식의 축적이 이룬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천문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중력파 관측에 성공한 이후, 이형목 교수는 부쩍 청소년들 앞에 설 일이 많아졌다. 다시금 천문학에 쏟아지는 관심도 크다. 천문학자는 청소년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직업으로 꼽힌다. 그러나 대학에서 천문학 전공은 그리 인기가 높지 않다. ‘배고픈 학문’이라는 불필요한 오해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문학자로 평생 살아온 이형목 교수는 “천문학은 그리 낭만적이지도, 배고프지도 않은 학문”이라고 말한다.
“천문학 전공자를 배출하는 기관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과잉 공급된 분야와 비교하면 그리 진로를 찾기에 어려운 편은 아닙니다. 천문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반드시 천문학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도 다양한 진로를 선택한 전공자들이 많습니다."
이형목 교수는 자신이 천문학을 계속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특권’이었다고 말한다. 스스로 원해서 시작한 연구임에도 생계에 지장 없이 꾸준히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까닭이다.
“어린 시절부터 천체에 관한 관심은 많았습니다. 그때는 전기가 없던 시절이라, 저녁에 나와 들에 누워 있으면 별을 쉽게 볼 수 있었죠. 그때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들이 별을 보고 ‘저 별은 3천 광년 떨어져 있대’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 정말 궁금했어요. 요즘 학생들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기초적인 궁금증이 추상적으로 변할 뿐이죠.”
물론 어떤 분야를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일에 소질이 뛰어날 수만은 없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천재적 기질을 갖춘 것은 아니다. 순수한 열정과 꾸준한 노력이 있다면, 난관 속에서도 나름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이형목 교수는 직업적 전망을 고민하기보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고 권유한다.
MINI INTERVIEW “전망을 고민하기보다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하세요”
이형목 교수와 천문학에 관심을 지닌 학생들이 의미 있는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19명의 탐방단은 이형목 교수로부터 중력파에 관한 설명을 직접 들으며 궁금증을 해소했다. 공민기 학생 | 중력파의 측정원리가 궁금합니다.
이형목 교수 | 세상의 진로는 다양합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길을 갈 수도 없고, 왕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망이 있고 없고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돈을 잘 버는 직업이 있다고 해도, 자신이 하기 싫다면 안 되는 거죠. 그보다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는 것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죠. 무조건 부모님의 말에 따르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만약 부모님의 판단과 여러분의 판단을 비교한다면,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더욱 유용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