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문 화백 미래를 그리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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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꿈 심어주려
과학에 상상력 입혀 미래를 그립니다
태양열주택, 인터넷신문, 전기자동차, 로봇청소기, 소형 TV 전화기, 화상강의. 마치 오늘날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읊은 것 같지만 실은 50여 년 전 상상으로 그린 만화의 내용이다. 해당 작품을 그린 주인공은 원로 만화가인 이정문 화백. 이 화백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엉뚱하게 생각한 결과물”이라며 “과학 상식에 만화가 특유의 상상력을 접목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이천의 한적한 전원마을에 위치한 이정문 화백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벽과 진열장 마다 가득 들어찬 각종 만화 및 캐릭터 모형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 화백의 대표 만화 캐릭터인 철인 캉타우와 심술가족 캐릭터들이 액자 속 그림으로 전시돼있기도 하고 부채와 표주박 등의 소품에도 표현돼 있다. 한편에는 철인 캉타우의 설계도와 피규어도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이 화백이 과학기술의 발달로 변하게 될 미래의 생활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만화이다.
태양열주택·전기차·스마트폰…
50여 년 전 만화 통해 미래 세상 예측
흑백 TV가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인 1965년, 이정문 화백이 선보인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 만화를 들여다보노라면 오늘날 우리들이 사는 생활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만화 속에는 태양열을 이용한 집을 비롯해 공해 전기자동차를 타는 사람, 전파신문을 보는 사람, 움직이는 도로에서 즐거워하는 어린이, 소형 TV 전화기를 들고 있는 사람, 청소하는 로봇, 화상강의로 집에서 공부하는 학생, 원격진료로 집에서 치료 받는 사람, 우주선을 타고 달로 수학여행 가는 학생 등이 등장한다.
이 화백이 ‘35년 후 우리들의 생활은 얼마나 달라질까’ 상상하며 미래만화를 그린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림 속 내용은 대부분 현실이 되었다. 태양열 시스템을 설치해 난방 및 냉방을 태양열로 충당할 수 있게 지은 태양열주택은 이미 주택가를 점령한지 오래며 전기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누비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아침마다 각종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인터넷 뉴스를 접하며 마트나 지하철역에서는 무빙워크를 타고 이동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DMB를 보고 집안 청소는 로봇청소기에 맡기며 학생들은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강의로 원격수업을 받는다.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원격 진료와 달나라 여행도 머지않아 현실화될 전망이다.
이 화백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달라질 35년 후의 생활모습을 상상해 그린 것이지만 신기하게도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옮긴 것 같다. 컴퓨터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그 때 이 화백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 것은 다름 아닌 미래에 관한 뉴스였다. 우연히 신문에서 미래학자들이 미래를 예견한 기사를 본 그는 주변 환경을 접할 때마다 상상의 나래를 폈다.
“돋보기로 태양열을 모아 종이를 태우는 것을 보고 태양열을 에너지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흑백 TV가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에는 군인들이 무전기로 교신하는 것을 보며 TV를 무전기나 소형 전화기와 결합하면 어떨까 상상했습니다. 6.25전쟁 때 피난을 가지 못해 서울에 머물렀는데 당시 탱크의 무한궤도 바퀴를 보며 탱크 바퀴를 일렬로 펴면 움직이는 도로가 되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죠.”읽는다는 이 화백은 “미래창조라는 말을 좋아한다”며 “과학이란 게 별거냐.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자꾸 엉뚱하게 생각하며 관찰력을 갖고 뒤집어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학적 상상력으로 점철된 공상과학만화의 대가
1959년에 데뷔해 60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 화백의 대표작은 심술가족과 철인 캉타우다. 고등학생 시절 「아리랑」 잡지에 ‘심술첨자’ 만화로 데뷔했다. 이 화백은 “당시 미국, 일본 등에 심술만화가 있었지만 우리나라서는 내가 처음으로 시도했다”며 “우리나라 전래동화에 나오는 놀부는 막무가내로 심술을 부리지만 심술통은 나쁜 짓을 하는 이들을 따끔하게 혼내주는 정의파”라고 말했다.
심술만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10년마다 새로운 심술쟁이 캐릭터를 선보였다. 심술가족의 대표 캐릭터인 심술통을 비롯해 심쑥이, 심똘이, 심토리, 심뽀 등 지금까지 탄생한 심술 캐릭터만 해도 열댓 명에 이른다. 심술 가족 캐릭터는 우표로 발행되기도 했다.
이 화백은 심술만화와 함께 과학적 소재와 지식에 상상력을 입힌 공상과학만화로도 명성을 날렸다. 1965년 「새소년」에 발표한 ‘설인 알파칸’, 1976년 「소년생활」에 발표한 로봇만화 ‘철인 캉타우’가 대표작이다. 특히 철인 캉타우는 표절 시비가 전혀 없는 순수 창작 로봇만화로, 지구를 차지하려는 외계인 간의 전쟁과 이에 휘말린 인류의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양산형 토종 로봇인 철인 캉타우에 대한 이 화백의 자부심은 상당하다. “철인 캉타우 만화가 나오고 몇 달 후에 로보트 태권브이가 나왔는데 당시 일본 로봇을 모방했다는 의혹이 있었지요. 하지만 철인 캉타우는 순수하게 나 혼자 그린 작품입니다.”
이 화백은 철인 캉타우가 과학을 집대성한 만화라고 말한다. 당시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만화 속에서 지구 환경오염 문제를 다루었다. 철인 캉타우는 지구 환경을 지키는 로봇이었기 때문에 에너지도 번개에서 얻는 친환경 로봇으로 묘사했다.
“철인 캉타우의 주된 내용은 환경오염과의 싸움입니다. 지구 환경을 더럽히는 자들과 싸우는 것이죠. 당시 경제발전에 치중하느라 폐수를 내보내는 일도 많았거든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석유가 환경오염의 주범이었기 때문에 유전을 부수는 내용도 담겨있죠.”
‘상상이 현실로’ 인공지능·친환경 시대 열릴 것
“내 모토는 ‘꿈과 상상은 반드시 이뤄진다’입니다. 끊임없이 상상하고 꿈꾸어야 합니다. 특히 과학자나 만화가는 상상을 먹고 삽니다. 상상이 우수한 발명품을 만들어내고 더 나은 미래세상을 이룹니다.”
이 화백의 미래상상그림에 대한 도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8년 전에는 그가 백 살 되는 해인 2041년의 미래 사회를 예측한 ‘2041’ 만화를 그렸다. 이 화백이 그린 미래 세상은 UFO를 타고 외계인이 오고 인공 비구름으로 비를 내리며 태양열이 모든 에너지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녹색전성시대다.
또한 냄새가 나고 바람이 부는 입체 TV가 등장하며 귀신을 찍는 카메라와 만병통치약, 원하는 꿈을 꾸게 하는 안경도 개발된다. 그런가하면 번개저장용 기계 발명으로 전기를 무제한 사용할 수 있고 방범용 로봇개가 집을 지킨다. 과연 그런 세상이 올까 싶지만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상상이 눈앞의 현실이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의 기발한 과학적 상상력은 2050년까지 꿰뚫었다. 2015년에 그린 ‘2050년의 변화된 세상’ 그림 속에는 날아다니는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고 해저주택에서 살며 건물 방향을 취향에 따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 화백은 “한 행사의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아이디어에 나의 생각을 덧붙여 그린 것”이라며 “세상이 점점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래지향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 평소 책을 많이 보고 상상을 많이 한다는 이 화백은 미래 세상에 긍정적인 의견을 표한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석권하겠지요. 인간적인 로봇이 나올 겁니다. 태양열과 같은 청정에너지를 사용하는 친환경 시대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여러모로 지금보다 좋아지지 않을까요?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공상과학만화와 상상만화는 앞으로도 쭉 그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