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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융남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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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탐사는 자연이 숨겨둔 보물 찾는 일

1억 년 전 사라진 생물의 생명을 되살리다


십 년 전 우리나라에서 공룡 뼈 화석이 발견돼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동안 공룡 발자국은 5천족 이상 발견됐지만 거의 완벽한 형태의 공룡 뼈 화석이 발굴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화석 속 공룡의 이름은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Koreaceratops hwaseongensis)’. 화성에서 발견된 한국 뿔공룡이란 뜻을 담고 있다. 공룡에 학명을 붙인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룡학 박사로 알려진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였다. 그는 경기도 화성에서 뿔공룡 뼈 화석을 발견하고 연구한 결과 코리아케라톱스가 한반도 최초 뿔공룡이자 지금까지 세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종류의 공룡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융남 교수는 고생물학, 특히 공룡을 연구하는 학자다. 고생물학이란 지구상에 살았던 과거에 멸종한 생물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 중에서도 척추동물 화석을 연구하는 분야를 척추고생물학이라 한다. 이 교수는 “아마 내가 우리나라 최초의 척추고생물 학자일 것”이라고 자부한다. 아시아공룡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서울대학교 BK21 초빙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관장 등을 거쳐 2015년부터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를 맡고 있다.


공룡학계 50년 미스터리 해결…


한국인 최초 고생물학 논문 네이처지 발표 “화석을 찾는 건 자연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 거예요. 사냥꾼은 생물을 죽이지만 고생물학자는 죽은 생물의 생명을 다시 살리죠. 존재조차도 몰랐던 지구의 생명체들을 되살려내는 일을 하기 때문에 굉장히 재미있고 보람도 크답니다.” 척추고생물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가장 영광스런 순간은 그가 쓴 고생물학 논문이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을 때다. 우리나라에서 고생물학이 연구된지 100년이 넘었지만 고생물학논문을 네이처지에 발표한 한국인은 이 교수가 처음이었다. 그에게 영광을 안겨준 주인공은 다름 아닌 공룡 ‘데이노케이루스’였다.


오랜 기간 몽골에서 공룡 화석 탐사를 하던 이 교수는 2006년과 2009년 새로운 공룡 화석을 발견했다. 화석을 분석한 결과 뼈의 주인이 지난 50년 동안 실체가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데이노케이루스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동안 이 공룡은 앞발뼈 화석만 발견돼 미스터리한 존재로 남아 있었지만 이 교수가 몸통뼈 화석 등을 찾아내 공룡의 전체 모습을 복원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실체가 완벽하게 규명됐다. 이 교수의 연구 결과는 고생물학계의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고 2014년 ‘거대한 타조공룡류인 데이노케이루스 미리피쿠스의 오랜 수수께끼 해결(Resolving the longstanding enigmas of a giant ornitho mimosaur Deinocheirus mirificus)’이란 논문으로 네이처지에 실렸다.


공룡 공부하고 싶어 미국행…
우리나라 최초 공룡학 박사


연세대학교 지질학과를 나온 이 교수는 동대학원에서 고생물학을 전공했다. 당시 우리나라 고생물학 학자들은 대개 식물화석, 조개화석, 삼엽충화석 등 조그만 화석을 연구했다.“ 뼈를 가진 고등동물화석이 우리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연구 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던거죠.” 그런데 그가 대학원을 다니던 1980년대 무렵 우리나라서도 공룡발자국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공룡이 살았다는 증거였다. 공룡에 호기심이 생긴 그는 유학길에 올랐다. 이교수는 “우리나라에도 공룡을 비롯해 어류, 양서류, 파충류 등 척추동물 화석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척추고생물학에 관심이 생겼다” 며 “자세히 공부하고 싶었지만 우리나라에는 관련 분야를 공부 한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유학을 떠났다”고 말했다. 1990년 미국으로 건너가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에서 공룡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인류가 한반도에 존재하기 훨씬 오래 전 지질시대에 어떤 생물이 살았고 어떤 환경이었는지를 복원하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지만 유학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고생물학은 지질학의 한 분야지만 고등동물 화석 연구는 특성상 생물학에 더 가깝습니다. 석사 때와는 전혀 다른 콘셉트를 가지고 새롭게 공부할 필요가 있었어요.


해부학적인 지식을 갖추기 위해 해부학 실습교육까지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공룡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내에 들어온 그는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했다. 이 교수는“유학을 가기 전만해도 공룡 연구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돌아와보니 한국에 공룡붐이 불고 있었다”며 “공룡을 소재로 한 영화 ‘쥬라기공원’이 개봉돼 큰 인기를 끌면서 공룡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덕분이었다. 이후 국내 곳곳에서 공룡 화석이 발견되면서 고생물학이 한층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자연의 보물 찾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다


이 교수는 공룡 연구가 3D 업종이라고 말한다. 탐사를 위해 오지를 다니다보면 건강과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만나기 때문이다. 이 교수 역시 공룡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아시아(중국, 몽골, 일본), 북미 (미국 및 캐나다), 남미(아르헨티나) 등 수많은 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 중 몽골의 광활한 고비사막은 이 교수의 단골 탐사지다. 질 좋은 화석이 많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미 2006~2011년 몽골 국제공룡탐사를 다녀왔으며 요즘도 매년 여름방학 때면 2~3주 일정으로 대학원생 제자들과 함께 몽골을 찾는다. 이 교수는 “아마존처럼 숲이 많은 곳에서는 화석을 찾기가 불가능하다”며 “풀 한포기 없는 지층에서 뼈 화석을 찾기 쉽기 때문에 황무지를 주로 간다”고 말했다. 힘든 여정이지만 이 교수가 공룡에 빠진 이유는 재미있어서다.“  화석을 찾으려면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해요. 알래스카, 고비사 막 등지에 가서 캠핑하며 화석을 찾는 일은 매우 고된 작업입니다.


하지만 자연이 숨겨 놓은 보물을 찾는 일은 정말 재미있어요. 그 희열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죠. 제가 찾은 화석이 굉장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일 수 있으니까요.” 고생물학자로서 이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 한반도의 자연의 역사를 국내외에 알리는 국립자연사 박물관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유일하게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나라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정말 창피한 일” 이라고 토로했다.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것은 자연사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몇십억 년 동안 한반도에 어떤 변화가 있었고 지질과 생물이 어떠했는지, 우리나라 자연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죠.”


과학의 보편화 필요… 고생물학 발전 위해 후학 양성 매진


최근 들어 공룡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부쩍 많아졌다. 학부모나 학생들이 이 교수에게 직접 조언을 구해오는 경우도 있다. 그는 “고생물학이 지질학과 생물학이 결합된 학문이니만큼 일단 자연에 대한 관찰력이 있어야 한다”며 “서로 다른 생물을 보고 유사점과 차이점을 구별해낼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과 수준이 부쩍 높아진 것에 이 교수는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현행 과학교육을 향해서는 쓴소리를 던진다.“ 요새 학생들을 보면 생각이 굉장히 좁습니다.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제가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대학생 때 일본에 가서 많은 것을 경험 하고부터입니다.


우리나라는 학생을 학교와 학원이라는 틀 안에 가둬놓고 종주마처럼 눈을 가린 채 앞만 보고 뛰라고 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곳에 노출돼야 생각이 더 영글어지고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도 생깁니다.” 이 교수는 과학의 보편화를 강조한다. 공룡에 대한 과학적인 내용을 재미있고 쉽게 풀어쓴 책들을 출간하고 일반 대중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교수는 “국민 수준이 높아지려면 과학이 보편화돼서 국민 전체의 과학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며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며 과학이 발전하면 국민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후학 양성에 더욱 매진할 생각이다. 우리나라 고생물학이 멸종의 길을 걷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연구소에 몸담았다가 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이유도 침체돼 있는 학문을 연속시키기 위해서였다. “훌륭한 대학원생을 많이 배출하고 그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면 지금 보단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요?”



 MINI INTERVIEW 

"돈보다 좋아하는 일 해야 행복하고 보람있지요"

이융남 교수와 과학의 큰 꿈을 키우는 학생들이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이 교수는 강서고등학교 1학년 24명과 숭문고등학교 1학년 7명으로 이루어진 탐방단을 대상으로 고생물 및 공룡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특히 50년 동안 공룡 학계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가 이 교수에 의해 실체가 밝혀진 ‘데이노케이루스 미리피쿠스’ 공룡에 대해 큰 호기심을 보였다. 이 교수 는 한국-몽골 국제공룡탐사 프로젝트를 통해 2006년과 2009년 몽골 남부 고비사막에서 데이노케이루스 몸통뼈 표본을 발굴했고 이를 토대로 데이노케이루스가 전체 길이 11m, 몸무게 6.4톤에 달하는 타조공룡류에 속하는 잡식공룡임을 밝혀냈다.

한편, 이 교수는 강연 말미에 학생들에게 진로에 대해 의미 있는 조언을 들려줬다. 이 교수는 “여러 분 꿈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앞으로 직업을 가질 때 내가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라. 수능 점수에 따라서만 진로를 선택하면 불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돈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행복할 것”이라며 “나는 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 때문에 굉장히 행복하다. 돈은 크게 못 벌지만 보람 있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 자신이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세상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야 한다. 세상을 구원하고 움직이는 사람은 의사 개개인이 아니라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영화감독 스필버그, IT기업가 스티븐잡스 같은 사람”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