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윤 작가 과학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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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과학자, 과학 그리는 만화가 웃음 가득 패러디, 정보 가득 지식 전달
곤충 쫓아다니기를 좋아했고 화석에 관심이 많았으며 별과 우주를 사랑했던 그림 잘 그리던 소년은 어떤 꿈을 이뤘을까? 정답은 ‘모두 다’이다! 서울대학교 생명대학원에서 곤충진화 및 계통 유전체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개미입니다>, <오디세이> 등의 웹툰 작가이자 <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 <만화로 배우는 공룡의 생태> 등을 집필한 학습만화의 저자인 필명 갈로아, 본명 김도윤은 ‘곤충과 화석과 별을 쫓는 만화가’다.
곤충 채집에서 관찰, 연구소에 발걸음까지
곤충, 우주, 수학, 공룡…. 크게는 과학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지만 사실상 각각의 주제가 주는 간극이 크기에 한 작가의 작품에서 이 모두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 작품이 만화라는 점에서 한 번 더 놀랍다. 어린 시절 잠자리채를 들고 풀밭을 뛰어 다니며 잡았던 곤충을 관찰하던 취미가 평생을 좌우할 줄은 김도윤 작가 역시 몰랐을터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이면 대게 조금 더 자극적인 매체로 흥미를 옮겨가지만 김도윤 작가의 흥미는 여전히 곤충이었다.
“메뚜기, 잠자리, 매미로 시작해서 사슴벌레도 잡고 딱정벌레도 잡고 싶어졌어요. 도끼 들고 나무를 쪼개고, 수액을 찾으러 다니고, 피트폴을 이용한 트랩 채집도 하고요.” 그저 잡아서 관찰하는 재미에 몰두했던 초등학생은 4학년 때 충우 곤충박물관 관장의 신종 털보 왕사슴벌레 보고를 보며 새로운 곤충을 발견하는 곤충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 후 중학교 3학년 우연히 잡은 신종 갈로아 벌레는 생의 강력한 키포인트가 되어주었다. 빙하기 추위에 적응해 지금까지 살아있는 질긴 생존력을 가진 곤충인 갈로아 벌레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것.
책으로 공부하기에는 부족함을 느꼈던 김도윤 작가는 특이한 곤충을 채집했다며 여러 과학 연구소에 연락했다. 방문할 기회를 얻으면 주저하지 않고 갈로아 벌레 표본을 들고 찾아갔다. 그저 어린 학생의 치기로 넘겨 보내지 않고 받아준 대부분의 과학자분들께 여전히 감사하다.“ 딱정벌레 박사님이셨던 고(故) 김진일 교수님과도 메일로 소통했었어요. 아마 제 세대에서는 제가 그분과 유일하게 연락을 나누었던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김태우 박사는 신종 갈로아 벌레를 발견하면서 시작된 인연이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진짜’곤충학자인 김태우 박사님을 만나고 곤충연구를 경험하면서 만화와 생물학자 사이에서 고민하던 진로는 생물학으로 급격히 기울었고 지금까지 수시로 통화도 하고 가끔 방문하기도 한다. “메뚜기에 대해 디테일한 이야기를 할 대상을 찾기 힘들거든요. 세대를 뛰어 넘는 메뚜기 메이트에요.” 생물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지만 늘 그려왔던 만화 역시 포기하기 힘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역삼 청소년수련관 만화공모전에 출품했던 작품이 대상을 받고 만화가 양세준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화와 생물학 두가지 토끼를 다 잡아야겠다는 조금 더 구체적인 진로 계획이 세워졌다.
직접 그리며 스스로 배운 만화
중고교 시절 김도윤 작가의 별명 중 하나는 ‘세스코’였다. 반에 말벌이 들어왔을 때 불러오는 친구, 다양한 벌레 퇴치 전문가 등으로 불렸다. 다른 한 편으로는 만화책 전파자였다. 그의 고등학교 사물함에는 언제나 만화책이 채워져 있었다. 곤충만큼이나 만화도 좋아했기에 시간 날 때마다 보기도 하고 따라 그리기 위해 넣어두었는데 어느새 너나할 것 없이 함께보는 공공재가 되어 있었다.“ 취향을 친구들에게 전파하는 뿌듯함도 있었고 어느 날은 전 공부를 하고 있는데 친구들은 제 만화책을 보고 있는거예요. 미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지요. 그 때 함께 만화책 보던 친구들이 지금은 제 책을 사 주는 든든한 독자들이 되었어요. 저의 취향이 제대로 뿌리 내린 것 같죠?” 배시시 짓는 웃음이 개구지다. 좋아하면 파고드는 성향은 만화에서도 똑같이 발휘되었다.“ 좋아하는 만화를 보고 따라 그렸어요. 종이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무라타 유스케 작가의 ‘원펀맨’, ‘아이실드 21’등을 따라 그렸어요. 손으로 직접 그리는 것이 실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미식축구 만화인 ‘아이실드21’을 그리면서 너무 몰입한 나머지 대학에 진학한 후 미식축구팀에 입단하기도 했었다. 비록 한달만에 훈련 시간에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현실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연출 등 기술적인면에서 무라타 유스케 작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 내용적인 면에서는 시마모토 카즈히코 작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만화자체도 좋았지만 그 만화를 그리는 과정 자체도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SF 만화 <오디세이>로 데뷔
고교시절 내내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을 소재로 한 만화를 구상했고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한달간 두문불출하며 만화를 그렸다.“ 분명 생각했을 때는 재미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그렸더니 재미가 없는 거예요. 아쉬웠지만 포기했어요. 미련을 못 버리고 매달리면 발전이 없기 마련이니까요. 더 많은 작품들을 그리면서 실력을 쌓아야지 미련을 싸매고 있으면 안되잖아요.” 물론 채 버리지 못한 애착은 남아 김도윤 작가 작품이 까메오로 순간 순간 등장하곤 한다.“ 어렵지만 흔한 소재는 아니기에 조금 더 필력이 쌓이면 다시 도전해 볼 생각도 있다”는 말에 기대가 생긴다. 만화가로서의 김도윤 작가의 데뷔작은 2017 SF어워드 만화부분 대상 수장작인<오디세이>다. 친구와 미국항공우주국(NASA) 이야기 중 행성 표면 등의 연구에 지질학자의 역할이 중요하기에 NASA에는 지질학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아폴로 계획에서 달에 발을 디딘 과학자도 지질학자였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사진을 액자에 넣어 소장하고 있을 만큼 존경하는 ‘칼 세이버’의 저서 <코스모스>, SF 소설 <콘택트> 등을 몇 번이고 읽으며 상상했던 아름답고 웅장한 우주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우주의 다른 행성 표면에서 지질탐사를 하는 과학자의 이야기’라는 주제를 떠올리자 여러 가지 구상이 연달아 따라왔고 어릴적 좋아하던 우주와 동경하던 우주비행사들의 모습을 바탕으로 한 밑그림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초등학생 때 영재교육 캠프의 일환으로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NASA 케네디우주센터 방문 당시 신나게 찍었던 사진들도 만화 작업에 도움이 되었다.
폭넓은 독자층을 사로잡은 과학 학습만화
<오디세이> 이후 <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와 <만화로 배우는 공룡의 생태> 등의 학습만화가 차례로 출간되었다. “알고 있는 내용으로 시작했는데 그리다 보니 욕심이 나는 거예요. 점점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게 되고 작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묘사를 하게 되었어요. 굳이 이런 부분까지 궁금해 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렇게 자세하게 그려낸 점이 독자 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준 것 같아요.” 좋은 그림체에 다양한 패러디와 대중적인 재미를 담고 전문성까지 확보했으니 학습만화의 필요조건을 넘칠 만큼 채운 것. 아이들은 물론 생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보아도 참고가 될 만큼 내용이 알차고 성인도 즐길 수 있을 만큼 유치하지 않다. 2018년에는「수학동아」에서 18~19세기 영국에서 발행했던 여성 수학잡지사를 소재로 다룬 만화‘숙녀들의 수첩’을 연재하기도 했는데 이 만화의 모티브가 된 실제 영국 런던의 출판사를 방문하기 위해 <오디세이>로 받은 상금을 고스란히 쓰기도 했다. 물심양면 아낌없이 쏟아 부은 만화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사랑 받고있다. <오디세이>는 일본에서 <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와 <만화로 배우는 공룡의 생태>는 일본, 대만, 중국 등에서 번역·출간되었다.
더 다양한 소재의 만화로 과학 알려주기를
다양한 소재의 만화를 전문적으로 소화 해내는 성과를 보인 후로 과학 그림 의뢰도 들어오곤 한다. “2018년한국지질자원 연구원 지질박물관에서 고생대 바다 속을 복원 한4m 복원도를 2장 그렸어요. 현존하지 않는 과거의 생태계를 사실적으로 그려야 하니 고생물학 전문가들의 자문은 필수였죠. 2019년 고비랍토르 미누투스라는 신종 공룡 복원도를 그렸을 때도 화석으로 보존되지 않은 부분을 그리느라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많이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극지연구소에는 북극 탐사 프로젝트 그림을 그리면서는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곤충화석 연구도 같이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나온 곤충 화석들을 조사하는데 그 중 특히 좋아하는 메뚜기 화석을 조사할 수 있었어요. 화석 연구는 곤충 진화 연구에도 도움이 되어주었고요. 1년간의 근무 후에도 여전히 연구소를 오가며 화석을 실컷 보고 있어요.” 곤충학을 떠올리면 먼지 쌓인 박물학 같 은 이미지가 생각난다.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21세기에 등산복 입고 산에 올라 땅을 파고 벌레를 모아 나무 상자에 담는 18세기 학문 같은 느낌을 준다. 분명히 그랬는데 곤충의 진화와 역사 연구에 필요한 곤충 유전체 관련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다루기 위한 컴퓨터 언어를 배우며, 곤충 연구 논문을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 만화가 김도윤을 만나고 보니 이보다 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데 적합한 학문은 없겠구나 싶다. 필명을 ‘갈로아’로 지을 만큼 뼛속까지 곤충을 사랑하는 김도윤의 현실적이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는 만화가 계속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