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주 교수 숭실대학교 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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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생물학, 수학으로 생명을 읽다
수학이 일상의 문화가 되는 세상을 꿈꾸며
잠들기 전 스마트폰 앱이 “지금이 최적의 수면 시간입니다”라고 알려준다면, 그 판단은 어디서 왔을까. 생체시계의 수학적 모델, 즉 우리 몸의 리듬을 방정식으로 옮겨 적은 것이 그 출발점이다. 수리생물학은 그렇게, 이미 우리의 일상 안에 들어와 있다. 숭실대학교 수학과 채석주 교수는 복잡한 생명현상을 수식으로 풀어내는 수리생물학자다. 세포 속 단백질의 움직임부터 항암 치료의 핵심 메커니즘까지, 그의 연구실에서는 오늘도 생명과 수학이 만난다.
수학과 생명 사이, 우리 삶 가까이 들어선 학문
수리생물학이라는 이름이 낯설겠지만, 이미 우리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난해 7월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삼성 헬스’ 앱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면 압력과 생체리듬을 방정식으로 계산해 개인에게 맞는 최적의 취침 시간을 제안하는 이 기술 안에는, 수리생물학자들의 연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채 교수는 수리생물학을 설명하기 위해 중학교 교과서 속 ‘소금물 농도 문제’를 예로 든다.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운 소금물 농도 계산 문제 기억하시죠? 서로 다른 농도의 소금물을 섞는 행동을 수학으로 묘사하고, 그 결과를 계산하잖아요. 소재가 달라지면 행동과 결과도 달라지지만, 하나의 현상을 수학으로 기술한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세포 안의 단백질이든, 약물의 체내 흡수든,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이든 — 결국 수리생물학은 현상을 수학의 언어로 기술하는 학문입니다.”
수리생물학의 뿌리는 1700년대 피보나치 수열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토끼 한 쌍이 세대를 거치며 어떻게 늘어나는지를 추적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후 수학자 앨런 튜링이 “얼룩말은 왜 얼룩 무늬일까”를 수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이 분야의 중요한 기틀이 마련됐다. 수리생물학자 이언 스튜어트는 생명과학의 여섯 번째 혁명을 “수학과의 만남”이라 표현했고, 누군가는 “수학은 21세기의 새로운 현미경”이라고도 말한다.
한국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빠르게 성장했고, 코로나19 시기에 확진자 예측과 재생산지수 계산, 거리두기 단계 결정 등에 많은 수학자들이 직접 기여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수리 모델은 실제 실험을 수백 번 반복해야 얻을 수 있는 결과를 적은 노력으로 예측하게 해주며,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치료법 개발을 앞당기는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

7년간의 연구,
NK세포 메커니즘을 밝히다
수리생물학은 실험만으로는 밝히기 어려운 내용을 수학 이론으로 찾아내거나, 생명현상을 더 잘 설명하는 모델을 만드는 분야다. 채 교수가 관심을 두는 분야는 세포 안에서 단백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률적 시뮬레이션과 편미분방정식으로 모델링하는 연구, 그리고 약물이 몸속에서 흡수되고 대사되는 과정을 다루는 약동학 모델링이다.
특히 우리 몸의 면역세포인 ‘NK세포의 작동 메커니즘을 파헤친 연구는 그의 대표적인 연구 성과로 손꼽힌다. 이 연구는 암세포를 인식하는 수십 가지 신호 중 치료 효과에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KAIST 김재경 교수, KRIBB 김태돈 교수(현 연세대)와 공동 연구 끝에 ‘B7H6’이라는 단백질이 가장 강력한 변별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B7H6’ 단백질이 많은 혈액암 환자의 경우, NK세포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단서도 제시했다.
“연구 초기에는 ‘데이터가 있으니 일단 분석해 보자’는 식으로 접근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가 어떻게 도출되는지 그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수학 모델만 적용하려니 연구가 잘 풀리지 않더군요. 결국, 실험실로 출근해 연구원들이 실험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나서야 ‘아, 이 데이터는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맥락이 이해됐죠. 실험실의 언어를 이해하고 나니 같은 데이터를 보더라도 수식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기존에 데이터를 단순히 ‘뺄셈’으로 비교하던 모델을 ‘나눗셈’으로 비교하는 모델로 바꿨고, 결과의 정확성도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현재는 두 가지 연구를 주력으로 진행 중이다. 하나는 세포 안에서 단백질이 어떻게 움직이고 결합하는지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는 것이다. 특히 생체시계처럼 규칙적인 생명현상이 단백질 수준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풀어내는 작업이다. 다른 하나는 약동학 모델링으로, ‘분자 접착제(molecular glue)’라 불리는 신약 계열의 작용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연구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수조 원을 투자하는 분야지만 핵심 메커니즘이 아직 불분명해, 수리 모델로 결정적 요소를 밝히는 것이 목표다.
책 읽듯, 수학 즐길 수 있는
사회를 기대
채 교수가 수리생물학자가 된 것은 ‘수학’과 ‘화학’,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던 학창 시절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다.
“수학과를 선택했는데 화학에 미련을 못 버리고 결국 부전공까지 했어요. (웃음) 그렇게 두 분야를 함께 할 방법을 고민하다 수리생물학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화학 현상을 수학으로 설명하는 분야더라고요. 아, 이거다 싶었죠.”
융합 연구의 핵심은 소통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수학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생명과학자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을 계속 파악해야 합니다. 두 언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저는 강연 준비를 할 때 내용에 대한 고민이 50%,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에 대한 고민이 50%입니다.” 연구가 막힐 때는 카페에 가거나 자리를 옮기고, 가장 명확한 단계부터 차근차근 다시 짚어 나간다. 영화 속 대사처럼, “문제가 참 어렵구나. 내일 다시 풀어봐야지” 라는 마음으로.
그의 꿈은 수학이 하나의 문화가 되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책 읽기가 다시 힙해지고 있잖아요. 그 배경에는 문학을 사랑하고 그것을 문화로 만들어 온 분들의 노력이 있습니다. 수학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어요.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책을 읽듯, 수학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수학이 어렵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이해하는 흥미로운 언어라는 것을 더 많은 이들이 느끼기를 바라며, 오늘도 그의 연구실에서는 방정식과 세포가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채석주 교수의 꿈은 수학이 하나의 문화가 되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이 책을 읽듯, 수학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는 수학이 어렵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이해하는 흥미로운 언어라는 것을 더 많은 이들이 느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