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작가 초단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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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AI와 함께 찾는 돌파구
대체 불가능한 상상력으로 세상을 읽다
공장 노동자에서 초단편 소설가가 된 김동식 작가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생각을 멈추지 않는 인간’의 가치를 강조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스스로를 검색하며 독자의 반응으로 동력을 얻고, 중·고등학교 강연으로 학생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한다. 과학적 호기심에 인문학적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상상력은 교실에서 토론을 일으키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공장 노동자에서 초단편 소설가로
김동식 작가의 이력은 한국 문학계에서도 독특하다. 스무 살 무렵부터 10여 년간 주물공장에서 일하며, 상상력을 키웠다.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작업은 육체를 피로하게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머릿속을 자유롭게 했다. 소설가 김동식은 10여 년의 주물공장 생활을 “가장 고독했지만 동시에 상상력이 자라던 시기”라고 회상한다. 그는 사람의 마음이나 사회의 구조, 세상의 불합리나 독특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그 단상들을 모아 인터넷 게시판에 짧은 이야기로 올리기 시작했다. 그 파편들이 모여 『회색 인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회색 인간』은 짧고 선명한 문체, 마지막의 반전,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단숨에 독자를 사로잡았다. “10분 만에 읽고, 한 시간 동안 멍때렸다.”는 후기가 쏟아졌다. 그의 소설은 길지 않다. 대부분 원고지 20장 안팎, 평균 10분이면 한 편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짧은 문장 속에 던지는 질문은 절대 가볍지 않다. 그의 이야기는 ‘결말의 반전’으로 독자의 사고를 되돌리고, 일상의 도덕과 사회 구조를 다시 묻게 만든다. 『회색 인간』, 『인생 박물관』, 『보그나르 주식회사』까지—김동식의 초단편 소설은 ‘짧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회색 인간』은 정식 문학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의 첫 작품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독자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은 오히려 현실의 질감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그는 당시의 자신을 “배운 적 없는 사람이 오직 상상력으로 쓰는 소설가”라고 표현한다. 이는 김동식 문학의 핵심이 되었다.
AI 시대의 글쓰기,
사유하는 힘이 지니는 예술적 가치
그의 최근작 『보그나르 주식회사』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성을 탐구한다.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 구조적 문제까지 조명하는 책은 자본과 과학 기술이 만났을 때의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안구 임플란트 일화」는 ‘보그나르 아이즈’를 착용하면 성형을 하지 않고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게 만드는 웨어러블 기술을 다룬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진짜 모습이 아닌 가상 현실 속의 아름다운 얼굴만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런 세상에서 진짜 ‘현실’을 보는 눈은 사라진다.
「프로그램의 습성」에서는 “효율을 더 높이기 위해 가장 비효율적인 유기물 집합체를 삭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AI는 “그들의 작업이 완료되지 않았기에 삭제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렇다. 인류의 질문에 모두 답하지 못했기에 AI는 인류를 삭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 과학기술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이다. 초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인간이 인간으로 남는 길은 기술이 아니라 ‘사유하는 힘’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결국 이렇게 묻는다.
“AI가 모든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일 수 있는가?”이 질문은 작가 자신에게도 닿아 있다. 김동식은 한 명의 작가로서, AI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고민한다. 그는 ‘생각하는 행위 자체’를 인간 존재의 마지막 보루로 본다. 아무 쓸모 없어 보이는 탐구라도, 그 탐구가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존엄을 유지한다. 그에게 인간의 가치란 ‘결과를 내는 능력’이 아니라 ‘사유의 지속성’에 있다.
그래서다. 그는 AI가 예술을 대체할 수는 있지만, 예술가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AI가 만든 소설이 아무리 완벽해도, 독자는 인간 작가의 ‘이야기’와 ‘역사’를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를 명품과 가품의 관계에 비유한다. 겉모습은 같아도, 사람들은 브랜드가 가진 서사를 위해 돈을 지불한다. 창작의 본질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그 결과물에 이르는 과정 속 ‘의식의 흔적’에 있다. 그래서 그는 AI를 경쟁자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상상하고 묻는 파트너로 받아들인다.
짧은 이야기,
깊은 질문으로 교실에 들어가다
그의 작품은 청소년 독자에게 유독 뜨거운 반응을 얻는다. 그는 “인터넷 문법에 익숙한 세대가 자신의 글 호흡을 가장 편하게 느낀다”고 말한다. 김동식의 문장은 빠르고 직선적이며, 한 문단 안에서도 상황이 역전되는 리듬을 가지고 있다. 이 ‘짧고 반전 있는 문장’은 학생들에게 게임처럼 읽힌다. 교사에게는 수업에서 토론 자료로 쓰이기 좋다. 실제로 그의 단편들은 학교 수업에서 자주 활용된다.
『무인도의 부자 노인』은 경제와 윤리의 교차점을 보여준다. 무인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생존자들 사이에서 한 노인이 통조림 하나를 ‘1천만 원’에 사면서 벌어지는 갈등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돈이 인간의 생존을 보장하는가, 아니면 인간의 도덕을 무너뜨리는가? 작품의 반전은 ‘진짜 부자란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되돌아오게 한다.
그는 자신의 글이 교육 현장에서 사랑받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길어도 10분 안에 읽을 수 있고, 내용이 자극적이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있습니다. 수업에서 사용하기 딱 좋아요.” 실제로 많은 교사들이 그의 글을 읽기 자료나 서술형 평가, 토론 수업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야기의 결말을 예측하거나 새로운 결말을 쓰며 창의력을 발휘한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은 텍스트를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 경험한다.
공장 청년에서 학생들의 멘토로
김동식의 작업은 철저히 ‘상호작용’적이다. 그는 매일 수십 번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며 독자의 반응을 읽는다. “댓글이 제일 큰 힘이에요. 새로운 댓글이 달리면 바로 하트를 눌러요.” 그의 창작은 독자와의 대화 속에서 자라난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연재를 이어가는 동시에, 오프라인에서는 학생을 직접 만나는 강연을 이어간다.
월 30회에 달하는 학교 강연에서 그는 자신의 삶과 실패, 그리고 글쓰기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글쓰기 몰랐던 청년이 이제는 교실에서 학생에게 말을 건다. 이 ‘거리의 전환’ 자체가 하나의 서사다.
중학교를 중퇴한 그에게 학생들이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왜 학교(공부)를 다녀야 하냐’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공부는 선택지를 늘리는 일”이라고 답한다. 어린 시절 가난과 환경 탓에 선택지가 좁았던 자신에게 가장 결핍된 것은 선택할 자유였다. 그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 자신이 자퇴했음에도, 다른 이들에게 자퇴나 포기를 권하지 않는다. 이는 공부를 점수 경쟁이 아닌 ‘미래 설계의 도구’로 재정의하는 말이기도 하다.
김동식 작가는 청소년 독자를 의식하게 되면서 사회적 책임감도 많이 생겼다. 그만큼 창작의 자유는 줄었지만, 대신 더 깊은 공감이 생겼다고 한다. 『인생 박물관』은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담은 작품으로,이 책을 통해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앞으로의 목표를 물으니, 특별히 목표를 세우지 않는단다. “안 할 이유가 없으면 합니다.” 이 단순한 신념이 그의 인생을 바꿔왔다. 기회가 오면 붙잡고, 제안이 있으면 움직인다. 계획 대신 반응, 목표 대신 호기심. 그가 선택한 이 태도는, 결과적으로 가장 생산적인 삶의 전략이 되었다. 그는 지금도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생각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의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AI가 무엇을 하든, 우리는 생각을 멈추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