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선임연구원 서울대 고생물학연구실 기초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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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생명으로 현재를 읽는 공룡박사
공룡은 멸종하지 않았다
지난 2024년, 공룡 연구는 200주년을 맞이했다. 1824년 영국 옥스퍼드셔 카운티에서 거대한 턱뼈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화석이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공룡학자들은 공룡의 생김새, 행동 패턴, 생태적 지위 등의 조각을 모아 과거 환경이라는 퍼즐을 맞춘다. 서울대학교 고생물학연구실의 박진영 고생물학자는 연구뿐 아니라 강연, 저술 활동,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를 만나 흥미로운 공룡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993년 개봉한 영화 ‘쥬라기 공원’은 상상과 그림 속에서만 존재했던 공룡을 스크린으로 불러내며 시각효과의 혁명을 일으켰다. 그 충격은 지금까지도 ‘쥬라기 공원’을 블록버스터의 전설로 남게 했다. 그리고 어느덧, 영화가 개봉한 지 32년이 지났다. 그 사이 인류는 공룡에 대해 훨씬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깃털’이다. 과거 공룡은 파충류답게 매끈한 피부를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연구를 통해 공룡은 새처럼 알록달록한 깃털로 덮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룡의 색을 복원하는 기술은 비교적 최근에 발전한 ‘멜라노솜(melanosome) 분석 기술’입니다. 멜라노솜은 생물의 피부나 깃털에 존재하는 미세한 색소 입자인데, 화석 속에 남아 있는 이 구조를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관찰하면 수천만 년 전 공룡의 색을 추정할 수 있죠.”
서울대학교 고생물학연구실의 박진영 박사는 ‘고생물학자들은 과거 선배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첨단방법으로 공룡을 연구할 수 있는 단계까지 도달했다.’고 말한다. 물체를 10만 배 이상 확대할 수 있는 주사전자현미경으로는 공룡의 피부 화석에서 색을 복원할 수 있고, CT 촬영을 통해 공룡의 뇌를 복원할 수 있게 됐다.
공룡 연구의 역사는 약 200년에 이른다. 그동안 많은 데이터가 쌓였고 공룡을 연구하는 기술도 정교해지면서, 이제는 공룡 뼈 하나만으로도 어느 무리의 공룡인지 분류가 가능할 정도로 많이 발전했다. 그만큼 공룡에 대한 오래된 오해도 바로잡히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공룡은 모두 멸종했다’는 생각이다. 박진영 박사는 단호하게 말한다.
“오늘날 살아있는 새들이 모두 살아남은 공룡이에요. 사람이 포유류에 포함되는 것처럼 새가 공룡 안에 포함된 거죠. 그래서 ‘공룡이 진화해서 새가 되었다’는 말은 틀린 표현이에요. 그건 마치 ‘포유류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d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학회에서는 ‘공룡이 멸종되었다’ 말은 하지 않아요. 새가 공룡의 일부로 남아 있으니까요.”
공룡이 되고 싶었던 아이, 공룡 연구자가 되다
어렸을 때부터 공룡을 너무 좋아해 ‘공룡이 되는 게 꿈이었다’는 박진영 박사. 초등학생 시절부터 외국 사이트에 들어가 새로운 공룡 정보를 찾아보거나, 화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주고받을 만큼 공룡에 몰두했다. 고등학생이 되어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부모님이 사준 책 한 구절에서 답을 찾았다.
“ ‘공룡은 오래전에 살았던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추정하는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알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이 학문의 매력이다.’ 이 문구를 보고 지질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는 강원대학교 지질학과에서 고생물학 연구의 기초를 다지면서 고생물학이 단순히 화석을 발굴하는 게 아니라, 과거 생태계를 복원하고 이해하는 학문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전했다.
아시아 갑옷공룡의 머리뼈 복원
박진영 박사는 서울대 고생물학 고생물학 연구실에서 아시아 갑옷공룡 화석을 연구하고 있다. 그의 연구 분야는 아시아의 곡룡류 공룡 화석이다. 일명 갑옷공룡(Ankylosaur)이라 불리는 이 공룡은 온몸이 두꺼운 뼈판으로 덮인 중생대 백악기 후기에 번성한 초식 공룡이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 역시 자신의 주요 연구 분야인 아시아 갑옷공룡 관련 논문이다. 2007년 한국-몽골 국제공룡탐사에서 ‘탈라루루스(Talarurus)’ 속 머리뼈 세 개체를 발굴하고, 이를 완벽하게 복원하여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탈라루루스 공룡은 1952년 처음 발견됐지만, 보존 상태가 나빠 머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어요. 잘 보존된 표본을 토대로 이 갑옷공룡의 머리를 거의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머리뼈 복원은 공룡의 진화 과정을 훨씬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정말 중요해요. 특히 갑옷공룡은 중요한 특징들이 머리뼈에 있기 때문에 계통도를 그릴 때 핵심적인 자료가 되거든요. 머리의 뼈판 배열이나 형태를 분석하면 어떤 공룡이 아시아에서 북아메리카로 이동했는지, 또 언제 새로운 종으로 분화했는지까지 추적할 수 있어요.”
현재 박진영 박사는 2007년 몽골에서 발굴한 갑옷공룡 화석을 중심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전에 복원했던 탈라루루스 표본과 함께 발굴된 몸통 부위 화석을 분석하며, 그동안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던 골반 구조를 새롭게 밝히는 논문을 준비 중이다.
“머리뼈 없이 나온 갑옷공룡의 골반뼈가 하나 있어요. 보통 머리뼈가 없으면 어떤 종인지 동정하기 어려워 분류가 쉽지 않은데, 이 공룡의 골반은 유난히 넓어서 그 생태적 의미가 궁금하더라고요.”
박 박사는 이 골반 형태가 공룡의 생활 습성과 꼬리 구조의 진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미있게도 골반이 넓은 갑옷공룡일수록 꼬리 끝의 ‘곤봉(tail club)’이 크더라고요. 처음엔 이 구조가 천적을 방어하기 위한 무기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오히려 짝짓기 철에 수컷끼리 힘겨루기를 할 때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어요. 현생 동물에서도 이런 형태적 구조들이 대개 번식 행동과 관련이 있어요.”
공룡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박진영 박사는 연구실 밖에서도 ‘공룡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연구자의 시선으로 과학을 풀어내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강연과 저술, 방송 자문까지 폭넓게 활동 중이다.
EBS 어린이 프로그램 〈고고 다이노〉의 자문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공룡열전』, 『신비한 공룡 사전』, 『읽다 보면 공룡 박사』 등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어린이와 일반 독자에게 공룡의 세계를 전하고 있다.
“2014년에 처음 강연을 시작했는데, 작년에 강연을 하러 갔을 때 한 대학생이 찾아왔어요. ‘10년 전 초등학생 때 제 강연을 들었다’는 거예요. 그 친구가 지금은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다며, 그때 공룡 이야기가 과학을 좋아하게 된 계기였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데 정말 뭉클했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과학의 문을 열어준 셈이니까요.”
강연 현장뿐만 아니라 메일과 DM을 통해서도 다양한 문의가 이어진다. 특히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공룡을 너무 좋아하는데, 이걸 진로로 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자주 보낸다고. 그럴 때 박진영 박사는 학부모와 아이들을 연구실로 초대해 실제 연구 현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늘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공룡을 좋아하더라도 공룡만 바라보지 말고 세상에 있는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공부가 훗날 연구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자신이 초등학교 시절 공룡 웹사이트를 만들고 싶어 컴퓨터 학원에 다녔는데, 그때 배운 포토샵과 일러스트 프로그램이 지금 논문 속 그림 작업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고 말한다. 또 외국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힌 경험 역시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다
왜 공룡을 연구해야 할까? 박진영 박사는 고생물학의 의미를 ‘인식의 전환’에서 찾았다. 고생물학은 현생 동물의 조상을 찾고 지금까지 진화 과정을 파악한다. 그렇다고 늘 과거만 보는 것이 아니다. 고생물학자들은 인류가 출현하기 전에 지구를 지배한 동물들이 소행성 충돌로 일시에 사라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인류의 미래와도 연결된다.
“고생물학은 지금 볼 수 없는 신기한 동물을 찾는 흥미 위주의 연구라고 오해하지만, 과학의 미래도 바꾼다”며 “대표적으로 소행성 탐사는 공룡의 멸종이 소행성 때문이라는 사실에서 시작됐습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소행성에 위성을 충돌시켜 궤도를 바꾸는 실험을 한 것은 미래에 닥칠 소행성 충돌을 막아 인류를 구할 방법을 찾는 노력인 거죠.”
공룡 연구는 거대한 지구 역사 속 하나의 작은 퍼즐 조각이다. 야외조사를 나가면 공룡학자뿐 아니라 퇴적학자, 고식물학자 등 다양한 연구자들이 함께한다. 같은 화석지를 두고도 서로 다른 시선을 갖는다. 공룡 연구자는 뼈의 형태를 통해 당시 생태계를 추론하고, 물고기 연구자는 어류 화석으로 당시의 고환경을 복원한다. 이렇게 모인 연구 결과를 시대별로, 지역별로 이어붙이면 지구 환경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생물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박진영 박사는 “이 패턴을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다가올 환경 변화를 준비하는 과학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