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융합인재교육 독서강연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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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생물학자의 우리 땅 생명이야기」
장이권 지음, 뜨인돌 펴냄
한반도 동물들의 우아하면서도 치열한 삶의 현장
우리나라 생물학자가 쓴 우리 땅 동물들 이야기!
동물의 생태를 다룬 책은 많지만 한반도의 동물들만을 다룬 책은 흔치 않다. 그나마도 대개는 새나 곤충 같은 특정 종류만을 다룬 게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이 땅의 동물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이해는 앙상하기 그지없다. 지구 끄트머리에 사는 펭귄이나 극제비갈매기의 특징을 줄줄이 꿰는 사람들도 정작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까치나 제비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 멸종 위기에 내몰린 북극곰과 판다의 안타까운 사연은 익히 알고 있지만, 한반도의 멸종위기종인 두루미나 수원청개구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 책은 한국의 생물학자가 한국의 동물들에 대해 쓴 보기 드문, 어쩌면 최초의 ‘한반도 동물기’다. 한반도 고유종인 수원청개구리와 ‘제돌이의 종족’ 남방큰돌고래 같은 희귀종에서부터 매미, 귀뚜라미, 잠자리, 까치처럼 ‘흔해 빠진’ 종들까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동물들의 이야기 스물네 편이 실려 있다. 연구 업적이 탁월한 젊은 생태학자에게 주어지는 ‘여천생태학상’ 수상자(2013)인 글쓴이는 스스로를 가리켜 ‘야외생물학자’라고 부른다. 책에 실린 대부분의 글은 그가 한반도의 자연을 연구실 삼아 밤낮으로 현장을 누빈 끝에 얻어낸 장기 추적연구의 결과물들이다.
책 속에는 우리 땅 동물들의 치열하면서도 우아한 삶이 속속들이 담겨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글쓴이는 고전소설이나 전래동화, 동요 등 우리 문화 속에 깃든 동물들의 삶을 학문적으로 꼼꼼히 분석하고 재해석한다. 인문적 요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과학적 사실을 인문적으로 해석하는 융합적 사유는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저자는 또한 동물들의 삶을 통해 끊임없이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남자와 여자는 왜 그토록 다른가, 인류는 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가, 인간은 언제 가장 행복한가(혹은 행복해질 수 있는가) 등등. 동물에서 출발해 인간으로 귀결되는 이 책은 그러니까 동물기인 동시에 인간론이라고 할 수 있다. 혹은, 동물과 인간의 공생을 위한 충실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타고난 동물행동학자
까치의 설날은 왜 어저께인가? 한겨울에 일찌감치 둥지를 트는 녀석들의 번식생태에 실마리가 있다. 엄마의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비만 오면 울어댄다는 청개구리 이야기는 현실성이 있을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글쓴이는 청개구리 양육행동의 특징을 살피고 ‘비(雨)와 청개구리 울음소리의 관계’를 추적한다. 흥부전에는 왜 하고많은 새들 중 하필이면 제비가 등장할까? 여느 새들과 달리 씨앗을 먹지 않는 제비의 식성, 그리고 처마 밑에 집을 짓는 특유의 포식자 방어 때문이다. 다채로운 추론과 검증 끝에 글쓴이는 “우리 조상들은 뛰어난 동물행동학자였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한민족만 그랬던 게 아니라 인류 전체가 그랬다. 프랑스 쇼베동굴의 벽화는 수만 년 전의 크로마뇽인들이 말(馬)의 생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져 있는 정교한 고래 그림들은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고래의 생태에 얼마나 정통했었는지를 입증한다. 인간은 애초부터 동물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고, 그 흔적은 지금도 우리의 유전자와 뇌 신경구조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즉, 우리는 모두 타고난 동물행동학자들이다.
“나는 나비가 날아다니고, 귀뚜라미가 노래하고, 개구리가 짝을 찾고, 제비가 먼 길을 날아 우리에게 오고, 제주도에 가면 남방큰돌고래를 만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동물들은 건강한 생태계에서만 제대로 살아갈 수 있고, 우리 역시 동물들과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에서만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라고 글쓴이는 말한다. 그가 생물학자여서가 아니다. 호모사피엔스는 원래 그런(그래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응답하라! 수원청개구리
책 속에는 우리가 한번쯤 떠올려 봤을 법한 흥미로운 질문들이 가득하다. 쌍잠자리는 왜 그렇게 비행할까? 인간은 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독 귀뚜라미 소리를 편애할까? 개구리는 왜 쌀쌀한 경칩 무렵에 일찌감치 깨어나 고생을 자초할까?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때로는 무릎을 치게 되고,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 앞에서 슬며시 놀라게 된다.
제돌이를 비롯한 남방큰돌고래 방류에 얽힌 이야기들도 재미있다. 방류 ‘이벤트’ 참여에 그치지 않고 시민위원회 위원으로서 녀석들을 ‘연구’했던 글쓴이는 삼팔이의 가두리 탈출, 방류 당일 제돌이의 실종(?) 같은 에피소드들을 생생하게 들려줄 뿐 아니라 그런 일이 벌어졌던 이유들까지도 자세히 설명해 준다. 사회적 이슈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학자로서의 본업에도 충실한 ‘행동하는 동물행동학자’의 면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흥미진진한 건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수원청개구리 이야기다. 녀석들은 왜 논 한가운데서 벼를 부여잡고 노래하는지, 흔하디흔한 청개구리와 달리 왜 녀석들만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는지, 왜 본적지인 수원에서조차 점점 만나기가 힘들어지는지 등등. 안타까움과 재미를 동시에 안겨 주는 ‘수청이(수원청개구리의 애칭)’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야외생물학자의 현장 연구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저자는 2012년부터 ‘시민참여과학 수원청개구리탐사대’를 이끌며 녀석들의 서식환경 조사 및 보전에 힘쓰고 있다. 너무 예쁘게 생겨서 다른 동물 연구가 죄다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고 말하지만 설마 그게 전부일까. 크기가 3~4cm에 불과한 이 작은 양서류를 향한 그의 남다른 애정은 다음과 같은 고백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녀석에게 마음을 빼앗긴 건 어쩌면 외모보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본문 중)
살아 있는 ‘이야기’ 속에 담긴 메시지
자연다큐 시리즈처럼 계절별로 구성되어 있는 동물 이야기들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 땅의 동물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세상의 모습과 색깔은 어떤 것인지……. 딱딱한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전해지는 메시지들이다. 이로써 우리는 오래 두고 읽을 만한 동물기 한 권을 갖게 되었고, 다음번 책이 기다려지는 믿음직한 저술가 한 명을 만나게 되었다.
강연자 소개 | 장이권 교수(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교수)
정이권 교수는 미국 캔자스대학에서 나방의 의사소통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에서는 귀뚜라미, 매미, 개구리 등 다양한 토종생물들의 생태를 연구하고 있다. 2012년부터 ‘어린이과학동아 지구사랑탐사대’ 대장으로 활동 중이며, 멸종위기종인 수원청개구리 서식환경 조사 및 보전을 위한 ‘시민참여과학 수원청개구리탐사대’를 이끌고 있다. 수청이(수원청개구리의 애칭)의 논에서 제돌이(남방큰돌고래)의 제주 앞바다까지, 한반도의 자연을 연구실 삼아 밤낮없이 현장을 누비는 열정적인 야외생물학자이다. 전통문화 속에 담겨 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학문적으로 재조명하는 데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학자로서의 깊이와 시민으로서의 실천을 두루 중시하는 ‘행동하는 동물행동학자’로서, 지금 진행 중인 연구가 끝나면 다음번엔 또 어디로 가서 어떤 동물을 만날지 늘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있다. 2013년에는 연구 업적이 뛰어난 젊은 생태학자에게 주어지는 ‘여천생태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