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무서운 ‘바이러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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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보다 무서운 건…폭주하는 인간사회
인간사회의 부조리와 장래의 재난 대비
글 | 최원석 교사(삼성현중학교)
영화 <레지던트 이블>시리즈는 <바이오 하자드>라는 컴퓨터 게임을 원작으로 한 B급 좀비 호러물이다. <레지던트 이블1>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작품이 계속 제작되고 있다. 이젠 팬들이 스토리를 만든 외전이 등장할 만큼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좀비 액션물이 바로 <리제던트 이블>이다. 주인공 앨리스(밀라 요보비치 분)는 거대기업 엄버렐러사의 생물무기 연구소 ‘하이브’의 입구를 지키는 경비 대장이었다. 연구소에서 연구 중이던 T-바이러스가 유출되어 연구소 내부의 모든 사람들이 죽고 앨리스와 매트만 살아남고 하이브는 봉인된다. 하지만 엄브렐러가 연구를 위해 하이브를 다시 열자 지하에 갇혀있던 바이러스가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되면서 인류는 좀비 바이러스에 대항해 생존을 위한 전쟁을 벌이게 된다.
‘빈자의 핵무기’ 생물무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거대기업 엄브렐라의 모습에서 과거 전쟁에서 만행을 저지른 일본의 731부대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엄브렐라의 이러한 실험이 전쟁 중이거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1976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져나가자 콩고 정부는 환자 치료가 아니라 봉쇄를 목적으로 군대를 투입했고, 과거 미국에서는 시민들을 대상(병사들이나 죄수가 아니라)으로 생물무기 실험을 허가하기도 했다. 생물무기는 테러나 전쟁 시에 사람이나 동식물에 질병을 유발 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생물이나 독소를 말한다. 탄저균이나 콜레라와 같은 세균, 티푸스균이나 Q열과 같은 리케차(rickettsia), 천연두나 에볼라 바이러스와 같은 바이러스, 보톨리눔과 같이 생물에서 추출한 독소가 생물무기에 해당한다.
생물무기는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인류는 전염병이 퍼지는 원인은 몰랐을 때부터 이미 그것이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원전 1세기 스키타이 궁수들이 화살촉을 퇴비나 시체 썩은 물에 적셔서 쏘거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투석기를 이용해 전염병에 걸린 시체나 동물의 사체를 성벽 안으로 던져 넣었다. 또한 16세기 초 스페인의 코르테스는 30만의 인구를 가진 아즈텍을 300명의 병사로 점령할 수 있었다. 코르테스와 그의 병사들이 바로 천연두를 지닌 생물무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1763년에는 영국군이 인디언과 싸우면서 천연두가 묻은 모포를 이용하는 등 전쟁에서 전염병을 이용하는 것은 드물지 않았다.
전염병의 원인을 알게 되자 전쟁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의 731부대는 페스트에 오염된 곡물이나 벼룩을 중국의 마을에 뿌렸고, 탄저균이 포함된 사탕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미국은 북한에 생물무기를 사용하였으며, 쿠바위기에도 생물무기를 사용하기 위해 대량생산을 하기도 했다. 만일 이 생물무기가 쿠바에 사용되었다면 국민 대부분이 병에 걸려 고통받고, 1만 명 이상이 사망하는 참혹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1984년 미국에서는 민간에서도 생물무기가 사용되었다. 오쇼 라즈니시를 추종하는 신흥종교 집단이 오리건주 댈러스에서 살모넬라균을 퍼트려 751명이 중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9.11 테러 이후 탄저균을 이용한 테러는 미국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으며, 소련이 천연두를 생물무기로 연구하고 있었다는 것이 폭로되는 등 세계는 끊임없는 생물재해(biohazard)의 위협 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한 적은 바이러스에 대한 시스템 부재
영화 <부산행>은 실험실의 바이러스가 유출되어 사람이나 동물이 좀비로 변한다. <부산행>에서는 어떤 바이러스인지 알 수 없지만 <레지던트이블>에서 사람을 좀비로 만든 것은 T-바이러스다. 물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런 바이러스는 없다. 하지만 천연두나 에이즈, 에볼라 바이러스 등은 T-바이러스에 필적할 만큼 두려운 바이러스는 있다. 사실 좀비가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는 설정을 하는 데는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바이러스가 인류를 괴롭혀 왔기 때문이다.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은 대표적인 것이 천연두 바이러스이다. 천연두는 치사율이 높은데다 사람의 세포를 무참하게 파괴하기 때문에 운이 좋아 살아남더라도 장님이 되거나 곰보가 되기 때문에 역사 이래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었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에볼라는 그 명성(?)에 비해 피해가 생각만큼 크지는 않다. 물론 최근에 다시 재유행 조짐이 있어 한 번씩 뉴스에 언급되는 것에 비해 공포감은 크지 않다. 자칫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어 경계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서아프리카와 같이 일부 지역에서만 심각하며 나머지 지역에서는 피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감염되면 치명적인 에볼라가 아직까지 큰 피해를 입히지 않은 것은 전파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에볼라가 코로나와 달리 체액이나 접촉을 통해 전염되므로 널리 퍼지지 않는다. 또 다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이 바이러스가 너무 강력하여 숙주가 다른 숙주를 찾을 틈도 주지 않고 죽어버릴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체액을 통해 전염되는 에이즈 바이러스(HIV)와 에볼라를 비교해 보면 이런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치료 약이 없었던 시절에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는 잠복기가 길어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에 에이즈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항레트로바이러스제로 꾸준히 치료하면 병세가 악화되지 않는 만성질환 정도로 취급되고 있지만 여전히 에이즈는 무서운 병이다.
이와 같이 ‘바이러스는 병을 일으키는 생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바이러스는 ‘독소(poison)'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온 말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을 괴롭혀 왔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증식할 수 없어 숙주 세포 속으로 침투해 증식을 하는 세포 내 기생 생물이다. 숙주의 세포 속으로 쉽게 침투할 수 있을 만큼 그 크기가 작다. 바이러스는 그 크기가 너무 작아서 전자현미경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보다 훨씬 작다. 박테리아는 균(곰팡이)보다 작다는 뜻으로 세균(細菌)이라고 부른다. 물론 세균 중에는 미코플라스마(Mycoplasma)와 같이 바이러스와 견줄 만큼 작은 녀석도 있지만 대부분은 바이러스보다 100배 정도 크다.
바이러스의 또 다른 특징은 생물의 세포 내에서만 활성을 보이며, 세포 밖에서는 비리온(virion)이라고 하는 바이러스 입자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바이러스가 다른 생물의 세포 속에서만 활성화되기 때문에 아직까지 인공배지에서는 바이러스를 배양할 수 없다. 바이러스 생물무기를 달걀을 이용해 배양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숙주의 세포 속에 숨어버리기 때문에 바이러스만 찾아내어 죽이는 것이 어려워 치료가 쉽지 않다. 그래서 치료제가 거의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예방만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는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일정 시간 안에 항바이러스를 투여받으면 치료가 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그러한 것은 박테리아에 해당하는 것이고 바이러스는 그렇게 쉽게 치료되지 않는다. 박테리아 감염에는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제가 효과가 있으며, 바이러스 감염에는 인터페론이라는 항바이러스성 단백질이 사용된다.
바이러스는 동식물을 가리지 않고 발견되며, 심지어 박테리아 속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도 있기 때문에 모든 생물에 기생한다. 박테리아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를 ‘박테리아를 먹어 치운다’는 뜻에서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 또는 줄여서 파지(phage)라고 한다. 항생제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슈퍼 세균이 등장하고 있는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파지이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처럼 파지는 세균을 공격해서 죽일 수 있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동식물 바이러스는 발견자나 발견된 지역, 일으키는 질병 등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 유행성 출혈열을 일으키는 한탄바이러스(Hantaanvirus)는 이호왕 박사가 1976년 한탄강에서 발견한 바이러스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나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또한 발견지역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라는 뜻이다. 동식물 바이러스와 달리 박테리아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T4, λ, φX174와 같이 문자(로마어나 그리스어)와 숫자를 함께 표시한다. 따라서 이름만 본다면 T-바이러스는 박테리아 바이러스라고 볼 수 있는데, 어찌하여 이놈이 사람을 괴롭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당신도 혹시 좀비? 좀비는 진짜 있을까?
영화 속 T-바이러스는 숙주를 생각이 없는 좀비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무서운 존재다. 그렇다면 좀비는 진짜 있을까? 좀비는 아이티를 중심으로 한 서인도 제도에서 널리 믿어지고 있는 부두교(Voodoo)의 주술사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좀비를 만들 때 사용하는 좀비 가루에는 두개골을 빻은 가루에서부터 두꺼비, 거미 등등 흔히 영화에서 마법사들이 마법약을 만들 때 사용하는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간다. 이들 재료에서 꼭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은 복어이다. 복어의 간과 생식기에 들어있는 테트라도톡신이 신경계의 나트륨 전달을 막기 때문에 사람을 좀비와 같은 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영화 속의 좀비와 같이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놀랍게도 동물의 세계에서는 숙주를 조종해서 마치 좀비와 같이 만들어 버리는 기생충들이 실제로 있다. 창형흡충이라는 기생충은 자신의 숙주인 소에게 가기 위해서 개미를 조종한다. 창형흡충에 감염된 개미는 소에게 먹히기 쉬운 풀잎 위로 올라가 멍하니 죽기를 기다린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더 이상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동물의 세계에서는 숙주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기생충들이 적지 않다. 영화처럼 포악한 좀비가 되진 않더라도 기생 생물에게 감염되면 원래 행동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영화 속 좀비가 실재하지는 않더라도 바이러스나 기생충이 존재하는 현실을 보면 그것이 완전히 황당한 이야기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글 | 최원석 교사(삼성현중학교)
최원석 교사는 경북 삼성현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 속에 과학이 쏙쏙」, 「십대를 위한 영화 속 과학 인문학 여행」등 30여 권의 과학 도서를 집필한 과학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과 인문학’을 주제로 한 도서관 강의와 YTN사이언스 고쳐듀오1 진행 등 과학 대중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