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과학 100주년과 양자컴퓨터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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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년 걸릴 문제, 단 100초 만에 해결…
혁신적 기술로 산업 패러다임 전환
올해 2025년은 양자과학 100주년에 해당하는 뜻깊은 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한 세기 전인 1925년 무렵, 물리학자들은 원자 수준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당시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 등의 과학자가 연이어 발표한 논문들은 기존 고전역학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양자역학의 이론적 틀을 마련했고, 이는 과학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양자역학은 이후 원소의 주기율표 원리를 밝히고 레이저부터 스마트폰까지 현대 기술의 밑바탕이 되었다. 1925년 등장한 양자의 개념들이 한 세기 동안 과학과 기술을 혁신시켜 왔고, 그때 시작된 작은 혁명이 오늘날 우리가 논의할 양자컴퓨팅이라는 새로운 도전의 토양이 되었다.
현대기술의 밑바탕 된 ‘양자역학’
그리고 ‘양자컴퓨팅’이란 무엇일까?
그렇다면 양자컴퓨팅(quantum computing)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양자컴퓨팅은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하여 계산을 수행하는 새로운 방식의 컴퓨터 기술이다. 기존의 고전 컴퓨터가 비트(bit)라고 하는 0 또는 1의 두 가지 값 중 하나만 가지는 정보를 처리하는 반면, 양자컴퓨터는 퀀텀 비트, 줄여서 큐비트(qubit)라는 정보를 단위로 사용한다. 큐비트는 0과 1 두 상태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양자 중첩(quantum superposition)으로 두 상태를 동시에 점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전적 비트가 동전 앞면-뒷면 중 하나로 놓인 상태라면, 큐비트는 동전이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는 동안 앞면과 뒷면이 겹쳐 있는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의 인식 속에서 할 수 있는 상상이며, 양자 세계에서는 하나의 큐비트가 동시에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한 양자 중첩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측정하여 들여다보는 순간 어느 한쪽으로 결과가 결정된다. 우리는 고전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양자 세계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자컴퓨팅은 여러 상태를 양자적으로 중첩시켜 동시에 연산함으로써 기존의 고전 컴퓨터가 하나씩 연산하는 방식을 넘어서 더 효율적인 연산을 가능하게 한다. 양자컴퓨터는 이러한 중첩을 계산에 활용하여, 병렬로 많은 경우의 수를 동시에 고려하고 일반 컴퓨터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매우 빠르게 풀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이론적으로 충분히 크고 정확한 양자컴퓨터가 있다면, 특정 문제에서는 고전 컴퓨터보다 지수적으로 빠른 계산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고전 컴퓨터로는 수백 년이 걸리는 큰 숫자의 소인수분해를 양자컴퓨터는 몇 초 만에 해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양자컴퓨터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문제가 갑자기 양자컴퓨터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쇼어 알고리듬과 같이 양자컴퓨터만의 혁신적인 알고리듬이 이미 발견되어 특정 문제에서 엄청난 속도의 우위를 증명했고, 앞으로도 새로운 양자 알고리듬의 개발 가능성이 열려 있다. 즉, 양자컴퓨팅이란 양자역학의 놀라운 법칙들을 응용한 계산 방식으로서, 특정 문제에서는 이미 고전 컴퓨팅을 앞서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미래의 컴퓨팅 패러다임을 바꿀 중요한 열쇠라고 볼 수 있다.
‘양자컴퓨팅’의 역사와 끊임없는 발전
양자컴퓨팅의 아이디어는 언제 처음 나온 것일까? 양자컴퓨팅의 역사는 1980년대에 그 싹이 트기 시작했다. 1981년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를 제대로 시뮬레이션하려면 양자 시스템으로 컴퓨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통찰을 제시했고, 이는 곧바로 양자물리와 계산과학의 융합을 촉발했다. 이후 1994년에는 미국 수학자 피터 쇼어(Peter Shor)가 놀라운 알고리듬을 하나 발표했는데, 이 알고리듬은 이상적인 양자컴퓨터가 있다면 소인수분해 문제를 효율적으로 풀 수 있다는 것을 밝혔고, 이는 오늘날 인터넷 보안의 근간인 RSA 암호를 효율적으로 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6년에는 러브 그로버(Lov Grover)가 데이터베이스에서 원하는 항목을 찾는 검색 문제에 대해 기존보다 제곱근만큼 빠른 양자 알고리즘을 개발하며 양자컴퓨팅의 유용성을 추가로 입증했다.
이론 연구와 더불어 실험적인 양자컴퓨터 개발도 꾸준히 전개되었다. 1998년에는 최초로 2큐비트짜리 간이 양자컴퓨터가 구현되어 양자 게이트 동작을 실험으로 보여주었고,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거치며 큐비트 수를 늘리고 오류율을 낮추기 위한 기술적 진보가 이어졌다. 특히 2019년에는 구글의 연구진이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를 달성했다고 발표하여 크게 화제가 되었다. 구글은 54개의 큐비트를 가진 프로세서(일명 시카모어(Sycamore) 칩)를 이용해 기존의 슈퍼컴퓨터로는 수만 년 걸릴 계산을 약 3분 만에 해냈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양자컴퓨터가 특정 분야에서 처음으로 고전 컴퓨터의 능력을 넘어섰다고 주장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비록 그 계산이 실용적인 문제는 아니었고 이후 고전 컴퓨터로 생각보다 빨리 해결 가능하다는 반론도 있었지만, 이 사건은 양자컴퓨팅이 더 이상 이론상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의 기술로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구글과 IBM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은 초전도 큐비트를 기반으로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있으며, 이는 정밀한 초전도 회로와 절대 영도에 가까운 온도로 냉각하는 복잡한 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IBM은 2021년 127큐비트의 ‘이글(Eagle)’, 2022년 433큐비트의 ‘오스프리(Osprey)’, 2023년에는 1,121큐비트의 ‘콘도르(Condor)’ 프로세서를 발표하며 하드웨어 성능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중국 역시 광자 기반의 ‘지우장(Jiuzhang)’과 초전도 기반의 ‘조충지(Zuchongzhi)’ 시리즈를 통해 양자 연산 속도에서 슈퍼컴퓨터를 앞서는 결과를 발표하며 기술 경쟁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주요 국가와 기업들은 큐비트 수 확대뿐만 아니라 계산 정확도와 안정성, 실용적 응용 가능성을 중심으로 기술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한국도 양자컴퓨팅 기술 개발과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초전도, 광자, 이온트랩 등 다양한 방식의 양자컴퓨터 연구가 병행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연구진이 20큐비트급 초전도 양자컴퓨터를 개발하여 발표하였고, 광 기반 및 이온트랩 기반의 양자 시스템 구현을 위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한편, 연세대학교는 IBM과의 협력을 통해 127큐비트급 IBM 양자컴퓨터를 국내에 도입하고, 이를 기반으로 실제 양자컴퓨팅을 경험하고 이해하며, 국내에서도 양자컴퓨팅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재의 양자컴퓨터가 당장 일반인이 쓰는 범용 컴퓨터를 대체할 수준은 아니다. 지금 구축된 수백 개 큐비트짜리 양자 프로세서들도 오류 교정과 안정성 측면에서는 많은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양자 상태는 매우 민감해서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 쉽게 깨져버리는데(디코히런스, decoherence), 이를 완벽히 제어하지 못하면 계산 중간에 에러가 누적되어 올바른 결과를 얻기 어렵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더 좋은 재료와 구조를 찾아 에러율을 낮추고, 양자 오류 정정 기술을 접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양자컴퓨터는 매우 빠른 속도로 성숙해지면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꿈같이 여겨졌던 큐비트 수백 개 규모의 장비가 현실화되었고, 양자컴퓨터를 활용한 양자 화학 시뮬레이션, 금융 최적화 등의 초기 응용 연구 결과도 하나 둘 보고되고 있다. 과거 고전 컴퓨터가 그랬듯, 양자컴퓨팅 기술도 조만간 ‘유용한 양자 우위’를 달성하여 실생활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실용화 문턱에 다가선 ‘양자컴퓨팅’
왜 지금 중요한가?
앞서 살펴본 대로 양자컴퓨팅 기술은 이제 막 실용화를 향한 문턱에 다가서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양자컴퓨팅이 이토록 중요한 화두가 되었을까? 첫째로, 양자컴퓨팅이 가져올 잠재적 혁신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팅이 본격 상용화되면 산업 전반에 걸쳐 방대한 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한다. 예를 들어 제약 산업에서는 양자컴퓨터로 신약 후보 물질의 분자 구조를 시뮬레이션하여 신약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고, 물류 산업에서는 복잡한 최적화 문제를 빠르게 풀어내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양자컴퓨팅을 활용한 새로운 양자 머신러닝 알고리듬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미래에는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팅의 융합으로 더욱 강력한 분석 능력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듯 양자컴퓨팅은 과학기술의 다음 지평을 여는 열쇠로 간주되며,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앞다투어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둘째로, 정보 보안과 국가 안보 측면에서 양자컴퓨팅의 등장은 양날의 검과 같다. 양자컴퓨터가 충분히 발달하면 현존하는 암호체계의 상당수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은 기회이자 위협이다. 앞서 언급한 쇼어 알고리즘이 대표적으로, 대형 양자컴퓨터가 현실화되면 인터넷 뱅킹이나 이메일에 쓰이는 RSA 암호를 비롯해 현재 널리 사용되는 공개키 암호들이 순식간에 풀릴 수 있다. 이런 가능성 때문에 미국, 중국, 유럽연합 등은 양자내성 암호(Post-Quantum Cryptography) 개발에 착수함과 동시에, 양자컴퓨팅 주도권을 잡기 위해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누가 먼저 강력한 양자컴퓨팅 역량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미래 사이버 안보 지형이 바뀔 수 있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기술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것이다.
셋째, 양자컴퓨팅을 발전시키고 그 활용 분야를 넓혀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양자컴퓨팅은 양자물리, 수학, 컴퓨터과학 등 여러 기초 학문의 토대 위에서 탄생한 융합 학문이기 때문에, 이를 이끌어갈 다양하고 축적된 전문성을 기르는 데에도 시간과 꾸준한 노력이 요구된다. 다행히 전 세계적으로 양자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학은 물론 중등 교육 단계에서도 양자컴퓨터과학과 미래 기술을 접할 기회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양자컴퓨팅처럼 새롭게 태동하는 분야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지금부터 청소년들에게 전문성의 다양성과 그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과학과 기술에 대한 흥미와 탐구심을 북돋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양자 정보 분야 전문가 양성에 집중한다면,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는 양자컴퓨팅을 비롯한 다양한 첨단 기술을 주도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양자컴퓨팅 일상 깊이 자리잡을 ‘미래 양자 시대’
새로이 요구되는 전문성과 태도
그렇다면 양자컴퓨팅이 일상에 깊이 들어올 미래에는 어떤 역량과 태도가 특히 중요해질까? 한마디로 말하면, 의미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과 기술을 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태도와 시야가 필요해질 것이다. 양자컴퓨팅은 단지 수학과 물리 지식을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다루기 어렵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을 어떤 문제에 적용할지 스스로 고민하고,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깊이 있게 이해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사고방식이다.
앞으로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와 양자 기술을 연결해 새로운 해결책을 상상해 볼 수 있는 통찰력과 창의적 시도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양자컴퓨팅처럼 융합적 특성이 강한 분야에서는 폭넓은 전문성 간의 연결을 꾀할 수 있는 역량이 필수적이다. 물리, 수학, 컴퓨터공학, 전자공학 등 서로 다른 분야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면, 각 분야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서로의 관점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주목받는, 이른바 ‘T자형 전문가’는 특정 분야에 깊이를 갖추는 동시에, 다양한 분야와 교류할 수 있는 폭넓은 이해를 갖춘 사람을 뜻한다. 이는 앞으로 양자컴퓨팅과 같은 첨단 과학기술을 실용적으로 활용해 나가는 데 매우 중요한 접근 방식이다.
중·고등학교 시기에는 한 분야의 성적이나 결과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과목과 지식에 열린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학생 스스로 어떤 분야에 흥미를 느끼는지 탐색하고,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며 공동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협업 능력을 키울 수 있다. 과학과 수학뿐 아니라, 인문학적 사고력과 표현력 또한 다른 전공자들과 소통하며 함께 일하기 위한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개념을 두려워하지 않고 탐구하는 태도와 꾸준히 시도해 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양자 세계는 우리의 일상 경험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처음 접하면 이해가 잘 안되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흥미와 호기심이 생겨나고, 그것이 진짜 배움으로 이어진다. 어떤 문제든 한 번에 해결되지 않더라도, 실패를 통해 배우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양자컴퓨팅 연구자들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하나의 실험 결과를 만들어낸다. 학문과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꾸준한 탐구에서 비롯된다.
앞으로의 양자 시대는, 특정한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보다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함께 풀어갈 줄 아는 사람들, 그리고 각자의 관심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서로를 연결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열릴 것이다. 학생 여러분도 자신만의 흥미와 강점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지식과 관점을 존중하며 연결해 나가다 보면, 충분히 그 여정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백경현 교수는 양자정보이론, 양자컴퓨팅, 양자 알고리듬 등 양자정보 과학 전반에 걸친 이론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현재 연세대학교 융합과학기술원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연세대학교 양자컴퓨팅 기술지원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