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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글래스’ 능가하는 한국판 '케이 글래스'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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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30배 이상 빠르고, 사용시간 3배 이상 길어


글 | 유회준 교수(한국과학기술원)


구글 글래스를 능가하는 한국판 케이 글래스(K-Glass)가 개발됐다. 구글이 개발한 구글 글래스보다 30배 이상 속도가 빠르고 사용시간이 3배 이상 긴 고성능 · 저전력 머리장착형 디스플레이(HMD)를 국내 연구진이 선보인 것이다. 이번 개발된 케이 글래스는 보고 있는 화면에서 의미 있고 중요한 부분을 배경으로 인식하고 무의미한 영역을 분리해 내는 '시각집중 모델' 방식의 증강현실용 전용 프로세서를 내장했다.


우리나라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연구팀은 지난 2월 10일부터 13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세계적 반도체 학술대회 ‘국제고체회로설계학회(ISSCC)’에서 케이 글래스(K-Glass)를 발표해 큰 주목을 받았다. 케이 글래스는 구글 그래스와 같은 HMD(Head Mounted Display) 타입의 장치로서 구글 글래스를 뛰어 넘는 성능을 보인다고 알려졌다.


증강현실 전용 프로세서가 내장된 케이 글래스


케이 글라스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디스플레이창과 입력장치, 증강현실 전용 프로세서가 내장된 전자 장치가 그것이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란 사용자의 현실세계에 3차원 가상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이다. 케이 글래스를 쓰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장면에 케이 글래스의 디스플레이창이 겹쳐 보이게 된다.


아래 사진과 같이 눈앞에 자동차 잡지를 갖다 대면 프로세서가 책 안의 자동차를 인식하여 자동차의 3D 모델과 관련 추가 정보들을 착용자에게 보여준다.


이 프로세서는 시각집중모델 방식으로 작동된다. 보고 있는 화면에서 의미 있는 부분을 무의미한 영역들로부터 분리해 인식하고 불필요한 연산을 제거해 증강현실 알고리즘의 연산 속도를 높였다. 증강현실 전용 프로세서는 65나노미터 공정에서 제작돼 32㎟ 면적에 1.22TOPS(1초당 1012 연산속도) 성능을 낸다. 구글 글래스보다 30배 빠른 속도가 이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연구팀은 전력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뉴런의 신경망을 모방한 네트워크 구조를 적용했다. 이는 가장 최적화된 정보처리 과정을 가능하게 해준다. 프로세서 내부에서는 데이터가 활발하게 이동한다. 일반적인 상용 프로세서는 데이터 버스(data bus·컴퓨터에서 기억장치로부터의 판독이나 기록을 위해 데이터 신호를 각 처리 장치로 전송하는 경로)를 공유해 데이터를 주고받기 때문에 큰 사이즈의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병목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반면 케이 글래스는 36개의 CPU(중앙처리장치)가 바둑판 형태로 연결돼 있으며, 큰 데이터를 옮겨야 하는 경로를 예측해 그 쪽에 많은 하드웨어 리소스를 할당하도록 설계됐다. 뉴런처럼 얽히고 설키게 연결해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각 CPU는 서로 정보 교류를 하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낸다.


'구글글래스'보다 빠르고 오래 쓰는 '케이글래스'

카이스트 연구팀의 케이 글래스와 구글 글래스의 기술력의 차이는 게임을 할 때 그래픽 카드가 있고 없는 차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래픽 카드가 있으면 훨씬 최적화된 상태에서 빠르게 게임을 즐길 수 있고, 반대의 경우, 기본적인 실행조차 더디게 진행된다. 구글 글래스는 일반 CPU를 사용했기 때문에 연산 속도가 느린 반면, 케이 글래스는 증강현실 전용 프로세서를 사용했기 때문에 사용시간이 길어지고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구글 글래스는 바코드 등의 표식을 인식해 해당 물체에 가상 콘텐츠를 첨가하는 방식의 증강현실을 구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표식을 설치하기 힘든 야외에서는 증강현실을 구현할 수 없는 것이 단점이며 전력 소비량이 많아 지속 사용 시간은 2시간 정도다.


케이 글래스의 활용 방안은 무궁무진하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월드컵 경기를 관람할 때 먼 거리에 있는 관중석에서는 선수가 잘 안 보인다. 그때 증강현실이 덧입혀지면 케이 글래스를 통해 선수의 이름이 뭔지, 소속 팀은 어디인지 등 선수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또 복잡한 기계를 고쳐야 할 때 머릿속에 아무리 설명서 내용을 넣어놔도 실전에선 막힐 수 있는데 케이 글래스를 쓰면 프로세서가 부품을 인식해 ‘펜치로 돌려서 분리하라’와 같은 명령이 나오게 된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도 선체 내 구조물을 인식해 이동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대학연구팀이 스마트 글래스를 개발한 것은 카이스트가 최초다. 아직 시제품 단계에 있는 케이 글래스의 갈 길은 멀다. 착용 시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을 개선해야 하고, 외형을 다듬어야 한다. 배 침몰 사고와 같은 재난현장에서 쓰이기 위해서는 방수 기능과 내구성을 갖출 필요도 있다. 또 사물을 인식하고 해당 물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칩 안에 방대한 양의정보를 내장해야 한다.


하지만 케이글래스가 글로벌 기업들이 개발하고 있는 스마트 글래스보다 우수한 기능성과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점은 희소식이다. 글로벌 IT기업이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는 증강현실 산업이 한국에서도 융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 유회준 교수(한국과학기술원)

유회준 교수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및 전자공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Bell Communications Research에서 반도체 레이저 및 고속소자 등을 연구를 하였으며 현대전자 반도체 연구소 DRAM 설계실장으로 근무하였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및 전자공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 차세대컴퓨팅학회와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 회장을 함께 맡고 있다. 주 관심 분야는 Memory 회로, 구조연구, EML 연구 및 RF 회로연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