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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공학자가 말하는 생생한 휴머노이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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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함께 진화하는 지능형 로봇
왜 우리는 휴머노이드에 주목해야 하는가?


로봇공학에서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 또는 줄여서 휴머노이드라고 부르는 로봇은 인간의 신체적 특징을 닮은 외형을 지녔으면서 인간과 유사한 동작을 취할 수 있는 로봇을 뜻한다. 여타 로봇과 달리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오감을 모방한 각종 센서들과 수준 높은 인공지능을 갖추고 있으며, 직립 보행을 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는 인간과의 의사 소통과 상호 작용, 인간의 생활 환경 내에서의 적합성, 경제성 등에서 다른 유형의 로봇들보다 더 우수할 것이라 평가받고 있고, 그로 인해 잠재적인 활용성도 풍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15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포모나 시에 지구 최고의 휴머노이드 24대가 전 세계로부터 모여들었다. 그 곳에 수천의 관중이 모여들었고 백 곳이 넘는 언론사들이 모여 취재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얘기를 하려면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에 진도 9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쓰나미를 일으켰고 쓰나미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덮쳤다.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갖춘 원자력 발전소였지만 쓰나미로 인해 원자로를 냉각시켜주는 냉각장치가 고장 나 버렸다. 원자로가 냉각되지 못하자 원자로를 감싸고 있던 벽이 녹아내렸고 수소가스가 차서 결국에는 원자로 자체가 폭발해 버렸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제어 능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고 방사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점점 커져가는 재난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누군가 원자로에 접근해서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하지만 원자로 주변은 치명적인 방사능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도저히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위험지대가 되어 버렸다.


이 때 생각한 것이 로봇이었다. 방사능 차폐가 되어 있는 로봇이라면 원자로에 접근해서 재난 상황을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곧이어 아프카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미군의 군용 로봇이 투입되었다. 하지만 로봇이 원전에 접근하면 할수록 통신에 장애가 생겼고 원자로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로봇과 통신이 두절되었다. 임무실패. 믿었던 로봇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도쿄전력에 근무했었던 근로자들이 방사능 피폭을 무릎 쓰고 현장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태는 응급 처방으로 진정되긴 하였지만 이 때 현장에 투입된 근로자들은 방사능에 노출 되었다고 한다. 누가 투입되었는지 몇 명이나 투입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분명하지 않자 투입된 근로자들의 건강에 대한 근거 없는 안 좋은 소문만 들려왔다.


그런 소문은 로봇을 만드는 엔지니어들에게 자괴감을 들게 만들었다. 만약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투입된 로봇들이 제 역할만 해 줬으면 그런 소문은 없었을 것이다. 로봇이라는 것이 사람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시키기 위해서 만들어 지는 것인데 막상 꼭 필요할 때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로봇 성능이 아직 실제로 쓰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러려고 로봇엔지니어가 되었나 싶은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자동차 운전 등 8가지 미션


바로 이때 다르파(DARPA)가 나섰다. 다르파는 미국 국방성 산하 연구기관으로 우리나라의 국방과학연구소와 비슷한 조직이다. 지금까지 다르파에서 주도했던 대표적인 기술은 로켓, 인터넷, 스텔스 비행기, GPS, 무인자동차 등이며 이들이 주도한 수많은 기술들로 인해 인류는 기술 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르파가 어떤 기술에 집중하는지는 전 세계 과학, 기술자들의 관심사항이다. 이런 다르파가 로봇에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DARPA가 전 세계 로봇 공학자들에게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같은 재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자고 설득했다. 이에 세계 곳곳의 로봇 공학자들이 호응했고 그렇게 2012년 10월부터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서바이벌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최초 200개가 넘는 팀이 경쟁을 시작했고 시간이 갈수록 탈락자가 나왔으며 살아남은 팀들은 계속 경기를 치러 나갔다. 경기 방식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 때 발생된 상황을 모델링해서 만들어졌다. 총 8가지의 임무를 만들었고 로봇이 8가지 임무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었다.


첫 번째 임무는 자동차 운전이었다. 로봇이 자동차를 운전한다? 어찌 보면 비합리적인 임무라고 볼 수도 있다. 몇 년 뒤면 무인자동차가 나올 터인데 로봇이 운전을 해서 사고 위험을 높일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후쿠시마 사태의 교훈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고 로봇을 투입시키려 할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이 로봇을 현장에 투입시키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투입하는 지점은 원자력 발전소로부터 수 십 킬로미터 떨어진 밖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먼 거리에서부터 로봇을 작동시킨다면 원자로에 접근도 못하고 배터리 수명이 다할 것이었고 그렇다고 사람이 직접 로봇을 들고 현장에 접근한다면 사람이 방사능 피폭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봇이 재래식 자동차 같이 방사능에 강한 이동수단을 직접 몰고 들어가 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하지만 지구상에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로봇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상황을 보고 로봇 공학자들은 자성을 하게 되었다. 로봇 개발에 있어서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자각이었다. 로봇이 우리 주변에서 어떤 일이라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어야하고 그 모든 일이 로봇 공학자들에게 도전의 대상이라는 자각으로 첫 번째 임무를 자동차 운전으로 만들었다. 자동차 운전을 못하는 로봇은 아예 대회 시작도 못하게 만든 것이다.


두 번째 임무는 자동차에서 하차하는 임무였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동차를 몰고 현장에 도착한 로봇은 자동차에서 내려야한다. 그런데 이 당연한 임무가 로봇 세상을 바꾸게 된다. 왜냐하면 자동차에서 내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풀기 어려운 기술이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사람도하기 어려운 것이 자동차를 타고 내리는 일이다. 사람은 무언가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시각, 촉감 등의 다양한 감각과 습관과 같은 경험을 잘 이용해서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하면서 자동차를 타고 내릴 수 있는데 로봇은 그런 능력이 없었다. 그 때까지 로봇이라고 하면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위치로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했다. 그런데 자동차 같이 예측이 불가능한 좁은 상황에서 빠져 나가려고 한다면 온갖 자동차 구조가 큰 방해물로 둔갑한다. 그 많은 변수를 정밀 위치제어를 통해 빠져 나간다는 것은 신기에 가까운 기술이고 거의 불가능한 임무였다.


결국 로봇 공학자들은 로봇 관절의 힘을 제어하는 방식을 발전시켜서 이 임무를 해결해 나갔다. 관절에 가해지는 힘을 측정하고 제어하면 로봇이 어디에 걸렸는지를 알 수 있고 상황에 따라 효과적으로 로봇의 전략을 바꾸어 나갈 수 있었다. 로봇을 위치나 속도가 아닌 힘으로 제어하기 시작하자 비로소 로봇이 사람, 사물과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로봇과 자연스럽게 악수를 할 수 도 있고 포옹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 로봇과 부딪힐 경우 로봇이 미안하다고 말을 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자동차 하차 미션에서 비롯되었다니 세상은 우연과 필연의 하모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임무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었고 네 번째는 밸브를 돌려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것, 다섯 번째는 드릴로 벽을 뚫는 것, 여섯 번째는 공개되지 않은 즉석 임무, 일곱 번째는 험지 돌파, 마지막 여덟 번째는 산업용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었다.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우승한 KAIST의 로봇 ‘휴보’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가 시작될 2012년에는 이 모든 임무들은 상상속에서나 존재하는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3년간의 서바이벌 게임 동안 전세계 최고의 로봇 공학자들이 이 임무를 해결하는데 달려들었고 살아남은 24개 최종 결선 진출 팀의 로봇들은 저마다 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임무들을 수행해 내고 있었다. 최종 팀들의 면면을 보면 가희 세계 최고 팀들이었다.
미국은 NASA를 비롯해서 록히드마틴, MIT, CMU, IHMC, UCLA, 버니니아공대 등 당대 최고의 로봇 연구소들이 살아남았고 일본도 동경대를 중심으로 오사카대학교, AIST, NEDO 등 전통적인 휴머노이드 로봇의 강자들이 진출했으며 한국도 필자가 리더로 참여한 로보티즈를 비롯해서 KAIST 와 서울대가 각각 결선에 진출했다. 독일의 Bonn 대학교와 Darmstadt 대학교, 이탈리아의 IIT, 홍콩대학교 등도 결선에 이름을 올렸다. 대회가 진행될수록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자국 로봇 기술의 자존심을 건 대회로 발전했다. 그래서 결선이 열렸던 2015년 6월에 전 세계의 이목이 미국의 포모나 시로 몰리게 된 것이었다.


결선 대회의 막이 올랐고 로봇들은 눈부신 성과를 보여주었다. 많은 수의 로봇들이 임무완수에 실패 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수의 로봇들이 모든 임무를 1시간 안에 끝마치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다. 이 장면에 전세계 사람들은 열광했다. 이 역사적인 대회에서 우리나라 KAIST의 로봇 휴보가 우승을 차지했다. 필자는 로보티즈 팀의 리더였음에도 불구하고 휴보팀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순간 큰 감동이 밀려왔다. 그들이 지난 3년간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를 옆에서 지켜봤기에 정말 마음에서 나오는 박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휴머노이드는 인간과 로봇간 상호 작용에 최적화된 로봇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 이후 로봇 기술은 비약적인 성장 곡선을 그리게 된다. 그동안 풀지 못했던 수 많은 기술들이 이 대회를 치루면서 경쟁적으로 개발되었다. 이 대회를 통해 성장된 로봇 기술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로봇이 생각보다 빨리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예측하게 되었다. 그래서 2016년 들어서 4차 산업혁명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게 된 것 아닐까 추측해 본다. 가만히 되돌이켜 보면 올해 유난히 로봇과 인공지능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알파고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의 성과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인공지능 로봇 기술은 최근에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그 추세가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에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는 지금 우리 또한 이 경쟁에서 뒤쳐져서는 안 되는 시대적 소명을 느끼고 있다. 흡사 개화기 때 신문물들이 밀려드는 듯한 형국 같다.


기술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언제나 장점과 단점이 항상 같이 존재한다. 바로 쓰면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켜 주는 고마운 존재가 되지만 거꾸로 쓰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흉기가 되곤 한다. 그런데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단점만 보고 배척하게 된다면 130년 전 개화기 때 유교의 가치를 지기키 위해 서양 문물을 배척하고 쇄국정책을 시행했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때의 잘못된 판단으로 우리는 너무나도 불행한 삶을 살아야했고 그 아픔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단점만 보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장점을 잘 살려 나가야한다. 그것도 선도적으로 주도해야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단점을 무시하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로봇 기술이 가져올 대량 실업과 같은 사회적 해악을 직시하고 선제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그 때가 바로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가 끝나고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지금이다.


글 | 한재권(한양대학교 산학협력중점교수)

한재권 교수님은 버지니아공대 기계공학과에서 공부했다. 재학 당시 미국 최초의 성인형 휴머노이드 로봇 ‘찰리’를 설계, 제작했고 귀국 후에는 로보티즈의 수석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재난구조용 휴머노이드 로봇 ‘똘망’을 개발한 바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융합시스템학과 산학협력중점 교수로 근무하면서 재난구조용 로봇, 인간 교감 로봇 등 각종 로봇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