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자율시간의 설계와 주제융합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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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의 본질은 확산이다
자기교과 넘어선 진정한 융합교육의 역량 실현
2022개정교육과정에 따라 중학교에서 학교자율시간(이하 학자시)이 올해부터 시작되었다. 2024년에 학자시 도입을 위한 회의가 학교에서 시작되었을 때, 2014년도에 자유학기제 시행을 두고 학교 안이 떠들썩했던 일이 생각났다. 자유학기제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교사들이 교육과정 테두리를 벗어나 하고 싶은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은 고무적이다. 자유학기제의 경험으로 인해 현장에서의 학자시 도입은 상대적으로 적은 혼란을 보인 듯하다. 이 글에서는 교사들이 학자시에서 자유학기제를 뛰어 넘는 기회를 어떻게 가질 것인가에 대하여 논해보고자 한다.
수업, 학생을 이끌고 끌어올리는 ‘무대’
나는 수업을 연극에 비유한다. 잘 준비한 시나리오와 무대를 이용해서 학생이라는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한다고 생각한다.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이라는 것이 있다. 교육 목적에 따라 어떤 개념이나 상황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그 정의에 따라 수업을 구성하거나 설명을 전개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것은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와 비유될 수 있다. 현실에서는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에 미치지 못하는 것들이 난립하고 있다. 수업에서 이런 것들을 모두 다루면 학습자는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복잡한 개념을 학습 가능하게 하기 위해 이상적인 교육 상황을 조작적 정의로 설정하고, 배우인 교사는 관객인 학생에게 단지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끌어올리는’ 행위를 하는 것이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교육과정은 교사가 이런 즐거움을 즐기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을 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여기에 속박되면 주체적으로 가르침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학기제는 교사의 주체성을 높여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교육적 의미를 가진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본인이 저술한 저서를 활용하여 빅히스토리2)라는 주제로 자유학기제 수업을 하였으며, 올해는 과학독서 수업을 하고 있다. 철저하게 나의 교육과정과 콘텐츠(연극으로 말하자면 소품과 분장)으로 무장하고 수업을 한다. 1차시 수업을 하고 다음 차시는 온라인 플랫폼에 소감문을 쓴 후 다 같이 읽어본다.
학자시의 교육과정과 교재를 동시에 만드는 작업을 2024년에 참여했다. 과목명은 ‘인공지능과 기후 위기로 배우는 나의 미래’이며 본인은 기후 위기 분야를 담당했다. 과거 자유학기제를 처음 도입할 때는 막연한 반감이 있었지만 학자시에서는 ‘자유학기제 때 경험을 능가하는 수업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진정한 ‘융합인재교육’
분산형 교육 통한 접근 필요
고민 중에 융합인재교육이 떠올랐다. 처음 과학교육에 융합인재교육이 도입되었을 때, 교사들은 ‘이것은 그냥 과학, 기술, 경제, 예술, 수학을 버무리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교사 연수에서 강사들도 이런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후에 관련 연구나 참고 자료들은 과학, 기술, 경제, 예술, 수학을 ‘버무린 것’ 이상은 산출되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상 융합인재교육이 실패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융합인재교육의 실패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외적인 융합을 시도했지 내적인 융합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식 재료를 그냥 버무린다고 맛있는 것은 아니다. 재료들이 서로 섞이며 맛을 낼 수 있도록 가열하거나 식히고 양념을 넣는 등의 행위를 해야 맛있는 음식이 완성된다. 융합인재교육 역시 단순히 외적으로 여러 분야를 섞는 것이 아닌, 핵심을 통찰하는 주제를 바탕으로 진정한 융합이 일어나야 한다. 이런 면에서 주제융합수업을 이용하면 학자시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성공의 단초를 생태전환교육에서 찾고자 한다.
환경교육 또는 생태전환교육을 하려면 현실적으로 분산형 교육을 해야 한다. 환경교과의 선택율이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경교과가 아닌 교과의 교사들도 생태전환교육을 하고 싶은 욕구가 많다. 또한 2022 개정교육과정에서는 각 교과 성취기준에 생태전환교육을 반영했고 교과서에도 관련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생태문명으로 전환을 위해 주창된 생태시민, 에너지전환, 탄소중립교육 등 다양한 생태전환교육을 하기 위해서 단독 교과에서 이를 모두 실시하기엔 역부족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교과가 하나의 주제로 융합수업을 실시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은 본교에서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계획한 주제융합수업으로 탄소챌린지라는 목표아래 구성한 수업흐름도이다. 이 수업은 성찰적 생태전환수업 모형으로 구조화했다. 환경사안은 항상 어떤 사건 발생으로 발발한다. 그래서 이 수업 모형은 어떤 사건을 상정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탐구, 내면화, 공감 그리고 사회화라는 일련의 인식과정을 갖추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본교에서는 이런 형태의 다양한 주제융합수업을 했지만 정말로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창의적 체험활동의 일환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신연포럼을 기획하여 학생들의 생태시민으로서의 의식을 확인했지만 이 역시 일련의 교육활동이 만든 결과라고 단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올해는 융합에 대한 조작적 정의를 ‘여러 교과가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특기, 자신감, 주체성에 따라 주제가 다양한 방향으로 확산되는 과정’으로 내렸다. 즉, 교과는 학생의 자발적 사고와 표현이 확장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며, 학생은 그 주제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주체적 탐색과 표현을 실천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고 한다.
본인은 ‘융합의 본질은 확산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한다. OECD 교육 2030 프로젝트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학생행위 주체성(Student Agency)이다. 2022 개정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은 자기주도적인 사람이다. 이러한 배경을 살펴보면 주제융합수업에서 융합의 본질을 확산으로 보는 것은 타당한 관점이다.
그렇지만 주제융합수업에서 이런 목적을 수행하려고 하면 교과간 추구하는 교육목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목공 작업에 도브테일(Dovetail)이라는 것이 있다. 비둘기 꼬리 모양으로 두 구조물을 결속하면 못이나 나사를 사용하지 않고 단단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도브테일 구조처럼 각 교과가 긴밀하게 연결될 수는 없을까? 이를 위해서는 수행평가를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 평가 없이는 수업에 대한 향상과 목표 달성을 확인하기 어려우며 학생들의 자발성만으로는 유인효과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각 교과간 수행평가의 루브릭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도브테일처럼 개념을 단단하게 결속시켜 주어야 한다.
이렇게 루브릭이 단단하게 결속이 되면 융합수업의 목적이 달성될까? 물리적인 결속으로는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확산이 이루어지려면 한 교과에 배운 내용을 다른 교과에 적용하고 그 적용한 것을 다시 환류하는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 학생 행위주체성이 발현되려면 여러 교과 지식이 버무려져 학생 스스로의 내면에서 융합이 일어나야 한다.
신경망처럼 다양한 연결망 통해
구성되는 확산형 융합학습
만일 인체의 신경망처럼 수업을 계획하면 어떨까? 신경망은 개별 뉴런(neuron)이 시냅스(synaps)를 통해 연결되며, 반복적 자극과 경험에 따라 재구성되는 복잡계적 구조를 가진다. 학습은 정보가 정해진 경로를 따라 흐르는 선형적 구조가 아니라, 다양한 연결망을 통해 의미가 구성되는 비선형적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관점은 주제융합수업이 단일한 학습경로를 따르는 수렴형 구조가 아니라 학생의 정체성과 관심사에 따라 교과적 경험이 연결되고 재조직되는 확산형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과 깊이 맞닿는다. 이를 신경망 기반 확산형 주제융합수업 모형이라고 부르자.
신경망 요소 교육적 대응
뉴런(neuron) 또는 노드(node)✽ 개별 교과 활동, 수행평가, 창의적 체험활동.
시냅스(synapse) 교과간 연계, 학생 주도 탐색, 의미 연결
신경망 구조 학생이 주제 안에서 형성되는 개인화된 의미망
가소성(plasticity) 반복적 실천과 성찰을 통한 사고 구조의 강화
신호 강화 루브릭, 피드백, 자기평가를 통한 의미 강화
✽ 신경망에서는 뉴런이라고 부르지만 교육에서는 노드라고 보는 것이 적절함.
신경망 기반 확산형 주제융합수업에서 각 교과는 학생 사고의 표현이 시작되는 출발점이자, 사고 회로를 활성화하는 노드의 역할을 한다. 성찰적 생태전환수업모형은 학습자의 감정, 태도, 실천을 포함한 전인적 변화를 도모하고, 신경만 기반 확산 이론은 그 변화가 개인화된 의미망 형성의 결과라는 것을 설명한다. 두 이론은 상호보완적이다.
첫째, 탐구·공감·내면화는 신경망의 노드의 성격에 해당한다. 그리고 탐구-공감-내면화의 연결고리 즉, 개연성 있는 시냅스 형성을 설명하는데 필요하다. 다만 각 인식의 발현은 순서가 다를 수 있다.
둘째, 사회화는 의미망의 강화와 외화, 즉 사회적 실천으로의 회로 연결에 해당한다.
셋째, 전체 수업 흐름은 정적 구조가 아니라, 가소적이며 확산적이다.
넷째, 교과별 수행평가는 사고 회로의 반복 자극이며, 루브릭과 피드백은 연결망의 신호 강도를 높이는 자극으로 기능한다.
다섯째, 창의적 체험활동은 개별 교과 활동 사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학생의 내면화된 의미가 사회적 실천으로 전환되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융합의 실현 공간…
학생 중심 ‘탄소챌린지 포럼’,
학년 초에 탄소챌린지를 주제로 학생들이 연중 탄소 절감 미션을 실시하고 10월에 탄소절감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포럼을 개최한다. 포럼은 학기초에 모집하고 최소 3명 이상 단위로 구성한다. 팀에서 제시한 주제와 관련성이 있는 교과의 교사를 지도교사로 연결해준다. 포럼 전까지 발표 내용과 방법에 대해 지도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포럼 전에 반드시 수업에서 사전 발표를 한다. 지도교사는 참가자들에 대한 과목세부능력특기 사항을 기록하도록 협조를 구한다. 포럼 참가를 준비하면서 학생들은 모든 교과 활동과 상호 연결을 시키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배운 지식들을 융합하고 확산시켜 개인화된 의미망을 만들어 나간다.
본인의 소속 학교에서 성찰적 생태전환수업 모형으로 주제융합수업을 2021년부터 2024년까지 해왔지만, ‘융합의 본질은 확산이다’라는 기반아래 수행평가를 긴밀하게 연결하여 신경망 기반 확산형 주제융합수업을 시도하는 것은 처음이다. 현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주제융합수업에 대해서 길게 얘기한 것은 학자시의 원래 목적대로 국가 교육과정에 제시되지 않은 새로운 과목을 개발·운영하려면 교사의 역량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본인은 앞서 말한 주제융합수업의 계획과 실천으로 얻어진 역량으로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학기제가 국가 교육과정을 벗어나 나의 교과를 재해석하고 나의 교육과정으로 만들어 수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면, 학자시는 시대에 맞게 성찰적이고 창의적인 주체성을 갖는 학생을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교사는 나의 교과를 중심으로 다른 교과 영역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같은 주제이고 같은 목적이라도 각자의 교과에서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은 백인백색(百人百色)일 것이다.
학자시의 목적은 정말 좋다. 교사를 머물러있지 않게 하고 입시위주의 교육을 탈피하여 진정한 학생행위 주체성을 교육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이런 교육과정을 만들 수 있는 교사를 키워낼 수 있는 연구를 했는지 또는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학자시가 성공하려면 교사 스스로 교육과정을 만들고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자유학기제 수업을 하기 위해 자신만의 콘텐츠를 개발한 교사가 상당히 많다. 제도가 지속적으로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자유학기제의 성과를 비추어 볼 때 교사들은 학자시가 자유학기제를 넘어 자기 교과를 넘어선 교사 융합 교육과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본인은 과학교과에서 학자시의 성과물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융합인재교육의 핵심교과는 과학교과이다. 융합인재교육이 확산은 되지 않았지만 융합인재교육의 영향인지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통합과학, 융합과학이라는 교과가 만들어졌다. 적어도 과학 안의 융합은 시도한 셈이다.
앞서 제시한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나의 노력’이라는 주제융합수업의 흐름도의 중심은 과학교과이다. 기후위기라는 자연현상이자 사회현상이자 정치·경제적인 현상을 다루기 위해서는 과학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과학교사가 잠깐 눈을 돌려 세상을 보고, 다른 교과의 내용을 보면 거의 모든 내용이 과학교과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융합’과 ‘과학’
자연현상의 해석의 근본
왜 융합과학이 만들어졌을까? 자연현상은 물·화·생·지로 나누어서는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현상들도 어느 한 분야로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해석의 근본이 되는 것은 과학이다. 윤리의 근본도 과학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윤리가 발달한다. 동물윤리는 동물이 얼마나 인간이 갖고 있는 지능이나 사회성과 유사하게 갖고 있느냐를 연구한 성과를 가지고 발전해 왔다. 이처럼 거의 모든 학문이 과학적 근거를 주요한 기반으로 삼고 있다.
융합과학이라는 교과가 있다. 융합의 본질은 확산이다. 과학교사가 융합을 하고 있다면 확산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 이유에서 학자시에서 과학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수종 교사는 현재 신연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며, 환경교육, 빅히스토리에 대한 교육자료를 개발하고 있다.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서울교사 모임회원, 학교도서관저널 도서추천위원, (사)한국환경교육학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과학샐러드』, 『고전은 나의 힘:과학읽기』 등 지은 책이 여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