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를 촉매하는 하브루타 수업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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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떠들면서 공부하는 유태인 학습법
유태인 중에 세계적 지도자가 많은 이유는?
말하는 공부법,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가 요즘 교실 수업에 화두가 되고 있다. 왜 그럴까? 하브루타는 수업에 무엇을 가져오는가? 어떻게 수업에 하브루타를 적용하는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다. 특히, 과학과 관련된 노벨상에 두각을 나타내는 유대인의 교육법 하브루타가 과학과 수업에는 어떤 효과가 있는 지 궁금하다.
하브루타란 위에서 말 한대로 말하고 떠들면서 공부하는 학습법이다. 그런데 떠들면서 말하자니 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짝이 필요하다. 그렇게 짝과 함께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니 생각이 자라게 된다.
또 하브루타는 질문을 중요시 여긴다.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과학 발전의 바탕이 되어오지 않았는가? 아이들에게 질문하게 해 보자. 질문은 질문하는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질문을 함으로써 대화의 주도권을 가지게 한다. 아이들 스스로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해답을 캐내가는 과정 속에서 수업의 주인이 되고 과학적 탐구 자세를 갖출 수 있게 된다. 사실 어떤 면에서 아이들은 이 궁금증과 호기심을 잃어왔다.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질문이다. 질문의 역동성은 하브루타 수업 즉, 아이들의 질문으로 시작하여 대화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해본 선생님만이 알 수 있다. 완전하지 않아도 일단 저지른 사람이 질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과학으로 가보자. 지난 서울과학교육 하반기 통권 제17호 9쪽에 실린 “놀이가 재미있는 까닭은 결국에는 실패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잘 알고 있고, 그 실패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실패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과학은 실패다. 과학은 원래 실패하는 것이다.(이하 생략)”이란 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 실험의 조리법과 같은 과학 교과서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왜 그 실험이 그렇게 설계되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시간도 없이 우리는 교과서에 나온 대로 실험 장치를 꾸미고 실험을 한다. 그리고 실험 결과는 나타난 결과 그대로가 아닌 상식으로 알고 있던 지식을 쓰기도 한다. 실패를 통한 배움도 사라진다.
여기 두 개의 과학 수업을 소개한다. 이 수업들은 교사의 요청으로 시작한다. 교사가 먼저 공부할 내용에 대하여 질문을 나누어 볼 것을 학생들에게 요청하면, 학생들은 스스로 의미 있는 질문을 만든다. 교사는 아이들이 생성한 질문을 교사가 품고 있는 교육내용과 연결하여, 자신의 수업을 아이들의 생각 속에 머물게 한다. 이런 수업이 보통의 과학수업과는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한계는 무엇인가? 과학수업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살펴보기 바란다.
아이들의 질문을 중심으로 한 과학 수업 사례
하브루타 수업모형과 같은 일반적인 수업모형을 교과에 적용할 때, 해당 교과의 내적 논리를 고려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 수업모형을 변형할 수도 있고 일부분만 도입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과학수업을 구성하는 활동의 대부분은 탐구이므로 학생들이 실제 진행하는 활동 안에서 하브루타의 여러 기제를 탐구과정 속에 녹여 넣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적 탐구활동에는 ‘문제 인식’, ‘가설 설정’, ‘변인 통제’, ‘자료 변환’, ‘자료 해석’, ‘결론 도출’, ‘일반화’를 포함한다. 필자는 ‘질문중심 하브루타 수업모형’을 적용하여 2009 개정 교육과정 5학년 과학교과를 지도하였다(그림 1 참조).
첫 번째 사례는 ‘식물의 구조와 기능’단원에 적용한 것이고, 두 번째 사례는 ‘온도와 열’ 단원에 적용한 것이다(표 2 참조). 첫 번째 사례에서 교사는 해당 단원 전체에 걸쳐 학생들이 궁금한 점을 ‘질문중심 하브루타’ 방식으로 주고받도록 하였다. 학생들의 질문이 집중되는 실험이나 차시를 앞으로 다룰 몇 가지 중심 활동들로 선정하였다. 이후, 직소우(Jigsaw) 수업모형을 도입하여 각 모둠의 전문가를 배정하고, 전문가끼리 모여서 사전실험을 진행하였다. 두 번째 사례에서 다룬 수업 주제는 물질의 온도가 변화하는 양상을 파악하고 ‘열의 이동’ 개념을 이용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두 차시 수업 모두 문제를 인식하는 단계에서 ‘짝 토론’을 적용하였고, 결론을 도출하는 단계에서 ‘모둠 토론’과 ‘쉬우르’를 적용하였다.
본 글에서는 두 가지 사례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서술하였다. 감히 독자들에게 부탁을 드리자면, 하브루타 기제들을 어떻게 적용하였는지 초점을 두고 봐주시기 바란다. 여기 제시한 사례들 속의 상황들은 초등 과학수업에서 매우 자주 나타나므로 하브루타 수업모형을 이해하거나 적용하고자 하는 교사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가. 질문 만들기
첫 번째 사례에서 학생들은 식물에 대한 동영상을 시청한 후에 식물에 대하여 궁금한 점을 질문으로 만들어 보는 활동을 하였다. 짝 끼리 질문하고 대답하는 활동을 한 후에 모둠의 질문을 선정하였다. 학생들이 모둠토의를 통하여 형성한 질문과 교사가 의도하는 학습문제는 많이 달랐다(표 2 참조). 해당 단원은 양분과 물, 두 가지에 초점을 두어 식물의 구조와 기능을 설명하였다. 그런데 학생들의 질문은 수업의 도입 마당에서 보여준 동영상의 영향을 받아 태초의 식물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맨 처음 나타난 식물이 녹색인지 궁금해 하는 모둠도 있었다. 존재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심리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인 것 같다.
이러한 질문들을 분석해 보면, 학생 자신들이 이미 식물에 대해서는 안다고 단정하고 있다. 질문의 주류는 식물 자체에 대한 근본적 궁금증이라기보다는 응용 혹은 파생된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학생들이 식물의 구조와 기능에 대하여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하여 회의를 품어보진 않았으며, 그들이 가진 개념에 근거하여 전향적(progressive)이거나 확장하는 질문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학생들은 어떤 구조와 기능을 하는 것이 뿌리인지 궁금해 한다거나 식물이 가진 독특한 특성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진 않았다.
교사는 식물의 구조와 기능에 대하여 본질적 질문을 이끌어내고자 질문을 전환하였다. 식물의 고유한 특징을 묻는다든지, 뿌리와 줄기의 기능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표 2 참조). 이것은 학생이 생성하는 전향적인 질문을 학습문제가 보여주는 본질적 질문과 연결하는 노력이었으며, 학생들이 깊이 사고할 수 있도록 이끄는 조력이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학생들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개념을 전달하지 않아도 진지하게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학생들이 수업 중에 형성한 자신의 생각들이 교사의 질문과 설명 속에 자연스럽게 엮이어 인지구조를 재구성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나. 짝 토론(짝 하브루타)
과학수업은 일반적으로 ‘가설 설정’ 단계가 포함한다. 저학년의 경우에는 간단한 예상 정도의 활동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예상·관찰·설명(Prediction· Observation ·Explanation, POE)학습 모형에서는 이렇게 학습자들이 현상에 대하여 예상하는 단계를 포함한다. 이때 ‘짝 하브루타’를 적용할 수 있다. 예상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므로, 주어진 상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질문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한다. 질문하는 과정은 먼저, 짝과 주어진 현상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하게 한다. 둘째, 실험 예상을 하면서 집중해야 할 변인을 찾도록 한다.
교사는 답을 찾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대답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촉진하여야 한다. 학생들이 현상을 예상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고, 실험을 수정하여 제시할 수 있다. 또한 다른 학생들이 답변을 하게 유도할 수도 있다.
두 번째 사례에서 학생들이 짝 토론을 하면서 과학 탐구문제를 설정할 때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독립·종속변인을 설정할 수 있게 기회를 주었다. 학생들이 실제 도출해야 할 연구 가정은 “물질의 온도가 변화하는 양상은 물질의 처음 온도와 양에 따라 달라진다.”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고온의 물질은 온도가 낮아지고, 저온의 물질은 온도가 높아져서 상온에 이른다. 또한 물질의 질량이 많은 경우에 더 천천히 온도가 변화한다.
질문을 만들고 대답하는 활동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을 위하여 교사가 “왜 온도계가 두 개야?”, “물의 양이 다른 까닭이 뭐지?”와 같은 질문을 예로 들었
다. 다음은 학생들이 주고받은 대화의 내용이다.
앞에서 논의한 것처럼 수업자는 학생들에게 학습문제를 도출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과서의 사진과 제시된 내용을 보면서 낮은 수준의 질문과 고차적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도록 하였다. 학생들은 처음엔 간단한 질문을 만들지만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과정에서 꼬리를 물고 인과적으로 사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학생들 사이에 오갔던 질문과 대답은 결국 실험 설계와 변인 통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실험 오류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보통 과학시간에 실험을 하게 되면 한두 모둠은 오류가 나타나기 마련인데, 짝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실험의 의도와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 모둠 토론(모둠 하브루타)
두 번째 사례에서 실험과 관찰이 진행된 후 실험결과에 대한 ‘결론 도출’ 단계에서 ‘모둠 하브루타’를 적용하였다. 이 단계는 주로 실험결과를 해석하는 토의 및 토론 중심으로 적용될 수 있다. 학습자들은 일반적으로 숫자나 성질로 나타난 실험결과에 대하여 과학이론과 모형을 적용하여 해석하면서 논의과정을 진행한다. 모둠이 토의를 진행할 때 협동학습에서 유래한 전략의 하나인 ‘발언권 얻어 말하기’, ‘역할 분담하기’를 적용하면 무임승차자를 예방할 수 있고 하브루타에 적극 참여하도록 할 수 있다. ‘발언권 얻어 말하기’는 무작위로 발표하지 않고, 한 번에 한 사람씩 순서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역할 분담하기’는 개인의 사회적 역할을 두는 방법을 이용할 수 있다. 여러 역할이 가능하지만 토의를 위해 ‘이끔이’, ‘기록이’, ‘나눔이’, ‘발표자’ 등의 역할을 부여할 수 있다.
라. 쉬우르
쉬우르 단계에서 교사는 학생들이 논의하면서 생긴 의문점에 대답해 줄 수 있다. 또한 학생들 나름대로 형성한 것들, 모형이 될 수도 있고 이론이 될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하여 정리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질문을 하면서 학생들의 사고가 확장될 수 있도록 한다. 교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이론적 틀 안에서 설명하기 보다는 학생들의 생활 속에서 연결할 수 있는 현상을 도입하여 설명하는 것이 훨씬 학습자의 인지가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다음은 두 번째 사례에서 활동한 내용이다.
학생들은 새롭게 발견한 사실을 제시하였다. 찬 물의 온도가 처음 온도에 비하여 2분 후에 온도가 더 내려가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발표내용에 의하면 찬 물의 처음온도는 10℃인데 2분 후에 온도가 7℃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교사는 실험 오류로 상황을 이해하고 싶어 하였고, 시간에 쫓겨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 버렸다. 다음은 쉬우르 중 나타난 대화이다.
수업 시간이 빠듯하고 정리해야 할 내용이 남아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학생들에게 생각해 볼 시간을 줄 순 없었을까? 아마도 필자가 과학교과를 전담하는 상황에서 다른 반과 수업 진도를 맞추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과학교육의 큰 방향이 창의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므로 수업 진행을 유연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수업계획 단계의 상상은 현실의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수정하고 변형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올바르다. 만들어 가는 교육과정이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위 상황에서 사실 적합한 행동은 교사가 학생의 입장이 되어 멈추어 서서 과학자처럼 그 현상을 탐구하는 것이다.
하브루타 수업모형을 적용하는 것을 뛰어 넘어 과학수업을 과학답게 이끄는 데는 과학에 대한 교사의 애정이 필요하다. 질문이 있는 교실을 통하여 학생들이 창의적 인재로 성장하게 하려면, 교사가 먼저 학생으로부터 파생하는 질문을 소중하게 여기고 과학자처럼 탐구하는 민주적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학생들을 정답 찾기로 몰아가거나 교사가 기획한 꽉 짜인 활동들에 가두기만 하면 아이들은 탐구능력을 상실한다.
근본을 생각하고 결핍된 환경을 제공하는 과학 수업
정상과학만 따라하는 과학실험은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키워주기 어렵다. 과학수업에서 실험의 목적이 이미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정답만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실험은 지필평가 선택형 문제를 푸는 것이다. 플로지스톤와 산소의 맞섬, 혹은 입자와 파동의 맞섬이 과학수업에서 살아나야 한다. 혼돈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는 수업환경 안에서 학생들의 질문이 살아난다.
하브루타를 통해 아이들은 말로써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메타인지를 작동하며 집단지성을 형성한다. 질문을 던지고 받는 연쇄반응 속에서 아이들은 과학수업의 목적을 내면화 한다. 실험기구와 텍스트, 사진 속에 품은 의도를 파악하게 되면 변인통제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정답이 유보된 수업 안에서 실험결과를 보며 꼬마 과학자의 이론과 설명 모델이 창조된다.
설진성선생님은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하였다. 초등학교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면서 대학에서 교직 과목을 강의하고, 2015 개정 교육과정 서울시교육청 지침을 개발하며 수년 간 컨설팅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서울휘봉초등학교 수석교사로 활동하며 과학과 아이들의 삶을 연결하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